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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공직자 검증, 국민 잣대는 ‘촘촘’ 윤리 규정은 ‘숭숭’

등록 2005-05-17 18:49

공직자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일반 국민들의 잣대가 갈수록 더 엄격해지고 있는데도, 감시 장치와 윤리 규정 등 정부 차원의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국민들은 공직자의 부동산 과다 보유 자체만을 문제삼았다. 공직자라도 상속 등을 통해 많은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다는 고려는 이른바 ‘국민정서’에 파묻혔다.

하지만 2005년 3월 이헌재 전 부총리 ‘낙마’에서 보듯, 최근의 시각은 취득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따지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 전 부총리는 90억원대의 재산가여서가 아니라, ‘부인 이름’으로 위장전입해 땅을 불법 취득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20~30년 전만 해도 일종의 ‘관행’이었던 위장전입이나 미등기전매가, 지금은 고위 공직 사퇴 여부를 결정짓는 판단 기준이 된 것이다.

공무상 마일리지 규정없어 ‘쓱싹’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 같다. 공무원들이 공무 출장을 통해 얻게 되는 ‘항공사 마일리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공무원 마일리지 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을 보면, 2003년 한해 50개 정부기관의 출장 자료를 집계한 결과 항공운임 370억원의 15.1%에 이르는 56억259만원이 마일리지로 적립됐다. 운임의 3%를 보너스로 받는 철도 마일리지, 법인용 신용카드를 통해 얻게 되는 마일리지도 고스란히 공무원들 개인 지갑으로 들어갔다.

재산변동 불법성 감시장치 없어

박 의원은 “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산하 공기업 등을 포함하면 공무원 마일리지는 연 100억원이 넘지만 정부는 현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공무로 생긴 고객 우대 마일리지는 엄연한 정부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이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여행지침에 따라 공무 출장자가 지급받은 상용고객 우대 마일리지는 정부의 자산으로 관리한다. 지난 2002년 독일에선 총선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마일리지 스캔들’을 겪었다. 공무로 누적된 항공사 보너스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언론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를 어떻게 관리한다는 규정이 없다. 앞으로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이 강화되면 논란이 일 수 있는 문제다. 행정자치부의 한 공무원은 “출장 중에 쌓이는 마일리지를 반환하려 해도, 반환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공무원에 대한 사회의 도덕성 잣대는 더욱 엄격해지는데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향응·판공비 처리 관행대로

공직자의 재산 변동 내역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지난 2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1급 이상 공무원 재산 공개에선 재산 증감만 나와 있을 뿐 재산 총액이 없었다. 행정자치부 출입 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재산총액 기준으로 상위 10명을 뽑아달라고 요구했고 행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헌재 부총리의 재산 총액이 6년 만에 61억원이 넘게 늘어난 것이 확인됐고,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 추적으로 이 부총리의 부동산 불법 투기 의혹이 드러났다.

공무원 윤리 관련 규정도 여전히 미흡하다. 2003년 ‘공무원의 청렴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에선 업무 관련자로부터 3만원이 넘는 식사 대접이나 교통·통신 등의 편의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경조사비도 5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업자들이 인허가 부처 공무원을 데리고 향응을 베푸는 ‘접대 골프’는 사라지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따라다니며 관용카드로 사적인 음식값 등을 계산하거나, 개인적인 축의금과 부의금도 판공비로 처리하는 관행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관용차와 관용헬기를 개인용도로 쓰는 공무원들도 여전히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백악관 면담 ‘피의자 신문’ 처럼

사전검증 미국선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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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된 지 1주일만에 물러난 버나드 케릭 전 뉴욕경찰청장의 사례는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해 엄격한 미국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케릭 ‘낙마’의 공식 사유는 불법 이민자를 유모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검증 과정에서 그의 과거 부패 사례가 속속 드러난 게 더 컸다. 그는 시 교정국장 시절, 폭력조직과 연계된 회사에 하수도 설비 계약이 넘어가도록 도와주고 금품을 받았다.

케릭 낙마를 계기로 백악관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의 고위 공직자 검증 장치는 작동하고 있다. 1989년 이후 상원 인준투표에서 탈락한 장관급 공직자는 한 명도 없다. 대통령의 지명발표 때 이미 문제가 걸러지고, 여기서 걸러지지 않은 건 케릭처럼 상원 청문회 때까지 다시 철저히 점검받는다.

FBI서 과거 뒷조사 꼼꼼히
수락 순간 사생활 만천하
재산 윤리위에 추가 보고
직위와 이해충돌 사전방지

고위 공직자 사전 검증은 우선 백악관 인사책임자가 직접 후보자를 만나 면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말이 면담이지 ‘피의자 신문’에 가깝다. 면담 마지막엔 “당신이 뭔가를 숨기고 우리가 그걸 찾아내면 당신은 ‘아웃’이다”라는 경고가 가해진다. 백악관의 의회 연락사무소에선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의회 쪽 의견을 들어 인사국에 전달한다.

후보자 검증의 핵심은 연방수사국(FBI)의 철저한 뒷조사와, 정부 윤리위원회의 별도 조사다. 후보자가 제출한 경력, 세금납부, 재정상태 서류를 토대로 연방수사국 요원이 대규모로 투입돼 몇주간 후보자를 뒤진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여부, 여자 관계도 조사대상에 오른다. 후보자가 작성하는 10종의 서류는 너무 복잡해, 후보자들은 보통 세무사와 고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연방수사국의 두꺼운 조사보고서는 나중에 인준청문회를 위해 상원의원들에게도 전달된다. 고위공직 후보에 나서는 순간 사생활은 사라지는 셈이다.

특히 후보자는 재정상황과 관련해 정부 윤리위원회 관계자와 반드시 면담을 해야 한다. 1978년 설립된 정부 윤리위원회는 각 부처 윤리위원회를 총괄하며, 고위공직자의 직위와 재정적 이해와의 충돌을 감시한다. 정부 윤리위에 재정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공직자는 상원 인준을 받는 1000여명이다. 그외 1만9천여명의 공직자가 각 부처 윤리위에 매년 재정상황을 보고하고, 이해충돌 여부를 감사받는다.

공직 후보자와 면담한 자리에서 윤리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재산 중 이 부분은 당신 직위와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은 ‘블라인드 트러스트’(백지위임신탁:공직자가 재임기간 동안 재산을 제3자에 맡기고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로 하라. 이런저런 부동산은 즉시 팔아버려라.” 후보자는 이 충고를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이름은 인선 대상에서 지워진다.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사생활이 언론에 공개되는 게 두렵다면, 역시 공직을 맡지 않는 게 낫다. 2000년 <대통령 임명직 후보자의 생존비결>이란 책을 펴낸 폴 라이트 뉴욕대 교수는 한 고위공직 후보자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19살 때 개인수표를 부정발급한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데 이걸 털어놓어야 하느냐.” 라이트 교수는 “그런 전력이 공개돼 논란이 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공직을 포기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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