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총리가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용산 재개발지역 주민 사망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 총리 “불법 폭력행위 용납못해” 책임 떠넘기기
청와대 “과격시위 악순환 끊어야” 발언취소 소동
청와대 “과격시위 악순환 끊어야” 발언취소 소동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20일 한승수 총리가 낭독한 정부 발표문에는 ‘반성’보다는 점거농성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총리로서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지만, 발표문 곳곳에서 사고의 원인이 점거농성에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고 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이번 일이 발생한 원인과 경위를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강조한 뒤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처할 것”이라며 “불법폭력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에이포 용지 한 장 크기의 발표문에 ‘불법 점거농성’ 또는 ‘불법 점거’ ‘불법 폭력행위’ 등의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했고, ‘법과 원칙’ 또는 ‘법과 질서’ 등의 용어도 잇따랐다.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직자는 “총리실이 경찰의 강제해산에 따른 부작용을 감추기 위해 점거농성의 불법성만 부각시키려 한 것 같다”며 “한 총리의 이런 발언은 오히려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도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가, 황급히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사고를 보면 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됐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치 이번 사태를 과격시위 탓으로만 돌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논란이 일자 곽경수 춘추관장은 40분 뒤 기자실을 찾아와 “아까 그 관계자의 발언은 개인 의견으로 정리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청와대는 “경위야 어찌됐든 이번 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빚어진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입장을 정리해 내놨다.
두 장면은 청와대와 정부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 상황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잘 보여줬다.
최익림 황준범 기자 choi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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