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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자본확충펀드’ 내달 설립
정부가 결국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자본확충 펀드’ 20조원을 통해 일단 은행을 튼튼하게 만든 뒤 은행의 실물지원 기능 회복과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다. 하지만 나랏돈으로 지원을 하면서 은행의 기존 주주와 경영진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지 않아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실물지원·기업 구조조정 ‘두 토끼 잡기’ 노려
공적자금 아니라지만 한은 발권력 동원 지원 ■ 은행 자금투입은 다목적 포석 국내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위험수위(감독기준 8%)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미리 구체적인 자본확충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은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내년에 경기침체가 심각해져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자기자본 비율이 급속히 떨어질 것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은행이 이미 ‘망가진’ 다음에 돈을 넣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두번째, 은행에 돈을 미리 두둑이 채워넣어 놓아야 은행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기업대출과 서민대출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야단’을 쳐도 은행들이 꼼짝 않는 근본적인 이유, 즉 ‘내코가 석 자’인 상황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세번째, 정부는 내년부터 기업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퇴출이 이뤄지면, 은행이 해당 기업에 빌려준 대출이 부실화함을 뜻해 은행 또한 같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조원이면 국내 은행들을 튼튼하게 유지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조원을 모두 투입하면 지난 9월 말 현재 10.86%인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이 2.6%포인트 상승한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12월말 기준 기본자본 비율 9%(정부 가이드라인)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돈 중 은행들이 자구노력을 해도 부족한 액수는 6조~7조원 정도”라며 “선제적이고 충분히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20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부실이 발생해 건전성이 위험해질 때마다 추가로 집어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나랏돈으로 지원하면서 책임 안 물어 금융위는 이번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적자금’이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은행에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배당이나 이자를 받고 주식이나 채권을 사주는 ‘시장원리’에 따른 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특별융자로 10조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2조원을 투자하는데다, 일반 기관투자자 몫 8조원도 사실상 정부(신용보증기금)가 지급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실제론 100% 나랏돈으로 은행을 지원한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은행 처지에서는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명백한 ‘특혜’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그런데도 은행 쪽에 자구노력이나 책임은 거의 요구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원활한 대출과 인수·합병 자제 외에는 요구한 게 없다. 국회 의결 절차를 거치고, 엄격한 자구 방안을 조건으로 달아야 하는 정식 ‘공적자금’ 투입 방안을 피하고, 손쉬운 한은 발권력에 기댔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시중은행장들은 이날 오후 긴급 간담회를 연 뒤 “정부 방안을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이번 조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백업 장치’이지 당장 은행 경영이 악화돼 정부가 긴급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영권 간섭에 미리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공적자금 아니라지만 한은 발권력 동원 지원 ■ 은행 자금투입은 다목적 포석 국내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위험수위(감독기준 8%)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미리 구체적인 자본확충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은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내년에 경기침체가 심각해져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자기자본 비율이 급속히 떨어질 것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은행이 이미 ‘망가진’ 다음에 돈을 넣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두번째, 은행에 돈을 미리 두둑이 채워넣어 놓아야 은행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기업대출과 서민대출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야단’을 쳐도 은행들이 꼼짝 않는 근본적인 이유, 즉 ‘내코가 석 자’인 상황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세번째, 정부는 내년부터 기업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퇴출이 이뤄지면, 은행이 해당 기업에 빌려준 대출이 부실화함을 뜻해 은행 또한 같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조원이면 국내 은행들을 튼튼하게 유지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조원을 모두 투입하면 지난 9월 말 현재 10.86%인 은행들의 자기자본 비율이 2.6%포인트 상승한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12월말 기준 기본자본 비율 9%(정부 가이드라인)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돈 중 은행들이 자구노력을 해도 부족한 액수는 6조~7조원 정도”라며 “선제적이고 충분히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20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부실이 발생해 건전성이 위험해질 때마다 추가로 집어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나랏돈으로 지원하면서 책임 안 물어 금융위는 이번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적자금’이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은행에 그냥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배당이나 이자를 받고 주식이나 채권을 사주는 ‘시장원리’에 따른 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특별융자로 10조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2조원을 투자하는데다, 일반 기관투자자 몫 8조원도 사실상 정부(신용보증기금)가 지급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실제론 100% 나랏돈으로 은행을 지원한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은행 처지에서는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명백한 ‘특혜’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그런데도 은행 쪽에 자구노력이나 책임은 거의 요구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원활한 대출과 인수·합병 자제 외에는 요구한 게 없다. 국회 의결 절차를 거치고, 엄격한 자구 방안을 조건으로 달아야 하는 정식 ‘공적자금’ 투입 방안을 피하고, 손쉬운 한은 발권력에 기댔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시중은행장들은 이날 오후 긴급 간담회를 연 뒤 “정부 방안을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이번 조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백업 장치’이지 당장 은행 경영이 악화돼 정부가 긴급지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영권 간섭에 미리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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