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감사원장이 감사원이 폐기한 ‘쌀 직불금 부당 수령자 명단’을 복구 방침을 발표한 22일 오후 서울 삼청동 감사원 건물이 승용차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감사원이 (쌀직불금 감사결과 은폐) 의혹으로 신뢰를 못받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9월8일 취임한 김황식 감사원장이 부임한 지 50일도 안돼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날 오후 긴급히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다.
김 원장은 이날 쌀 직불금 부당수령 추정자 17만명의 명단 파기와 감사 결과 비공개 과정, 감사위원회의 결정 이전에 청와대에 감사 결과가 사전 보고된 과정 등의 경위를 파악해 책임을 물을 사람에게는 모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전에 관례로 묵인됐던 청와대로부터의 정책점검 감사 요청 등도 국민들에게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만큼, 앞으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제도화해서 처리하겠다는 개선책을 내놨다. 감사원이 스스로 삭제한 직불금 부당수령 추정자 현황자료를 복구하겠다는 말도 전날에 이어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날 김 원장이 내놓은 감사원 위상복원 대책들은, 안이한 현실인식이 묻어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우선 김 원장은 사전 조율 의혹을 받고있는 ‘청와대 정책점검 요청’에 대해 “청와대로부터의 정책점검 요청은 2007년 초반에 한시적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며, 쌀 직불금 감사 요청도 그 일환”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정책점검 협조도 없었고 이뤄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감사원이 실시한 △공기업 경영감사 △<한국방송> 특별감사,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사업 경제효과가 3배 이상 부풀려졌다’는 내부 보고서 외부 유출 사건 등은 이번 쌀 직불금 부당수령 파장 이상의 정치적 민감성을 띤 사안들이다. 청와대 의중에 따라 이뤄진 ‘정치 감사’ ‘표적 감사’라는 비판이 무성한데도 외면하고 넘어가려는 것이다.
청와대의 정책감사 요청에 대한 대책안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만큼, 투명하게 공론화하겠다”는 말로 넘어갔다. 청와대와 물밑에서 주고받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 외에는 향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하겠다는 알맹이가 없었다.
감사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향후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원장은 “소속을 지금같이 행정부로 할 것이냐 아니면 국회로 할 것이냐 하는 부분은 헌법개정 사항으로, 개헌에 대비해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자료를 축적하고 검토하고 있다”며 “개헌 전이라도 감사원법에 반영해 조직과 인사 등에 있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을 언급하긴 했으나, 감사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에 대한 적극적 의지는 별로 엿보이지 않았다.
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