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이명박 정책 사례
[뉴스분석] 실적·속도 급급, 군림하는 ‘실용주의’
통신비 · 신용사면 인기 노렸다가 슬그머니 후퇴
‘작은 정부’ 방향도 흔들…청와대 장악력은 높여 8일 부처별 업무보고 일정을 마무리한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을 종합해보면, 이명박 경제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 원칙과는 어긋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시장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 원리만으로 풀 수 없는 여러 과제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통신비 인하와 신용불량자 대사면과 관련된 혼선을 들 수 있다. 인수위는 지난 12월29일 이 당선인의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정권 출범 이전이라도 밀어붙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가 다음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또 지난 3일엔 장수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 소외자의 채무 탕감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10조원의 공적자금 규모까지 언급했지만, 다음날 같은 경제1분과의 강만수 간사가 “원금 탕감 없이 이자 재조정과 연체기록 삭제로 재정투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라며 해명했다. 둘 다 이 당선인이 강조하는 시장 자율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는 논란을 불렀다. 정부조직 개편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작은 정부’를 내세워 행정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가 ‘기능 조정’으로 일정부분 물러앉았을 뿐 아니라, 특히 청와대의 국정 장악 기능은 오히려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전문가들은 인수위의 ‘실용주의’ 행보는 정작 ‘시장주의’와 ‘작은 정부’ 원칙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단기 성과와 실용 위주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가깝다”며 “사안별로 정부의 개입은 좀더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다듬는 데 참여했던 한 인사는 “시장주의에 지나친 실적주의가 덧붙여지다 보니 사안별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좌충우돌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뚜렷이 나눠 시장과 정부 역할을 좀더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정부’ 역시 허울뿐인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은 재정 자원을 사용하는 측면뿐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 두 가지를 동시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씀씀이를 조금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재벌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한 예에서 보듯, 시장 메커니즘에 주는 영향력은 예전보다 더 늘리는 ‘큰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책의 밑바탕엔 여전히 ‘시장 우선주의’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김 교수는 “신용 대사면 정책만 놓고 봐도 결국엔 부실채권을 쥐고 있던 금융기관의 장부를 깨끗하게 해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시장과 기업에 유리한 정책 기조에서 근본적으로 결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통신비 · 신용사면 인기 노렸다가 슬그머니 후퇴
‘작은 정부’ 방향도 흔들…청와대 장악력은 높여 8일 부처별 업무보고 일정을 마무리한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을 종합해보면, 이명박 경제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 원칙과는 어긋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시장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 원리만으로 풀 수 없는 여러 과제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통신비 인하와 신용불량자 대사면과 관련된 혼선을 들 수 있다. 인수위는 지난 12월29일 이 당선인의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정권 출범 이전이라도 밀어붙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가 다음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또 지난 3일엔 장수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 소외자의 채무 탕감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10조원의 공적자금 규모까지 언급했지만, 다음날 같은 경제1분과의 강만수 간사가 “원금 탕감 없이 이자 재조정과 연체기록 삭제로 재정투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라며 해명했다. 둘 다 이 당선인이 강조하는 시장 자율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는 논란을 불렀다. 정부조직 개편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작은 정부’를 내세워 행정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가 ‘기능 조정’으로 일정부분 물러앉았을 뿐 아니라, 특히 청와대의 국정 장악 기능은 오히려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전문가들은 인수위의 ‘실용주의’ 행보는 정작 ‘시장주의’와 ‘작은 정부’ 원칙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단기 성과와 실용 위주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가깝다”며 “사안별로 정부의 개입은 좀더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다듬는 데 참여했던 한 인사는 “시장주의에 지나친 실적주의가 덧붙여지다 보니 사안별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좌충우돌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뚜렷이 나눠 시장과 정부 역할을 좀더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정부’ 역시 허울뿐인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은 재정 자원을 사용하는 측면뿐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 두 가지를 동시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며, “새 정부가 씀씀이를 조금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재벌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라고 한 예에서 보듯, 시장 메커니즘에 주는 영향력은 예전보다 더 늘리는 ‘큰 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책의 밑바탕엔 여전히 ‘시장 우선주의’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김 교수는 “신용 대사면 정책만 놓고 봐도 결국엔 부실채권을 쥐고 있던 금융기관의 장부를 깨끗하게 해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시장과 기업에 유리한 정책 기조에서 근본적으로 결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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