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여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우식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국민통합 행보치중 "개혁후퇴" 번질수도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실시한 이기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사태에 대한 문책인사가 또다른 ‘부실 문책’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임이 있는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위원 가운데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의 사표만 수리하기로 하고, 그 윗선인 김우식 비서실장이 유임된 데 따른 것이다. 노 대통령이 김 실장을 유임시키기로 한 것은 종합적인 고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실장 등 인사추천위원 6명이 사의를 표명한 9일 오후부터 10일까지 김 실장이 이 전 부총리 인선과 무관함을 애써 강조하면서 ‘김 실장 구하기’에 나섰다. 김 실장이 이 전 부총리와 ‘40년 지기’이지만, 이를 의식해 인사추천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았고, 연세대 화공과 학과장 재직 때의 이 전 부총리 아들 특례입학과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 인선과 관련해 김 실장에게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종합적 지휘책임 정도”라며 “이를 가지고 문책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중요한 결정은 내가 했다’고 말한 것은 지휘책임은 스스로 지겠다는 뜻”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고, 문책인사를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 인선은 대부분의 하자가 이미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드러나 있었던 만큼 ‘검증’보다는 ‘인사 판단’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정찬용 인사수석이 이 전 부총리 임명에 따른 논란의 와중에 “흠이 있지만 대학교육에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은 단적인 예다. 김 실장과 이해찬 총리 등 정권의 핵심부가 ‘교육 수장’을 인선하면서 얼마나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문책인사를 두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김 실장의 도의적·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문제삼고 나오고, 야당에서 이 총리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고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일리가 있다. 김 실장 유임은 또 집권 3년차를 맞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를 둘러싼 ‘개혁 후퇴’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단 수석부대표가 이날 “김 실장은 노무현 정부 개혁 후퇴의 몸통”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심상치 않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에는 김 실장의 최근 ‘보수 껴안기’ 행보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지난해 말 이른바 ‘조·중·동’ 사주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한편, 올해 초에는 경제단체 인사들과 만나는 등 최근 보수층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노 대통령이 최근 주창하고 있는 ‘선진한국’ 구호 등이 ‘우경화의 길’을 예고하고 있다고 섣불리 판단할 근거는 별로 없다. 현재로서는 김 실장은 노 대통령의 ‘국민통합’ 행보를 위한 ‘보조축’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번 문책인사에서 김 실장이 제외된 데 따른 국민적 비난이 점증하고, 김 실장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이 불거질 경우 그의 최근 행보와 맞물려 노 대통령 집권 3년차의 발목을 잡는 또다른 ‘화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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