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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손학규 떠난뒤 한나라당 어떻게 변했어요?”

등록 2007-06-21 08:03수정 2007-06-21 08:22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 장철규 기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 장철규 기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한겨레〉인터뷰 전문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천만에요. 내가 영광이죠. 허허허. 잘 좀 부탁합니다.

- 탈당한지 3개월이 되셨죠? 그동안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는지요.

= 소기의 성과가 뭘 얘기 하는지 모르겠는데, 탈당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거고, 그러면서 선진평화연대를 만들어 나가면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상당히 보고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실현해 나가는 단초를 열었다고 나름대로 자부합니다. 엊그제 선평연 뭐였죠? 창립대회? 너무 거창한데, 그 창립대회는 우선 나름대로 참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참석한 구성원들이 여느 정치집회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40대·50대·30대가 가족과 같이 왔고, 추진위원 10만원 내는 분이 3000명, 그 뒤로 계속 늘어 3500명인데, 추진위원 명부를 아주 책자로 만들었습니다. 확실하게, 이것이 그냥 쉬쉬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떳떳하게 이러한 정치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본인들이 다 추진위원 가입서를 쓰고 명부에 다 올린다고 얘기를 했고, 이름 쓰지 말아달라는 분이 한 200분 되고, 또 일반회원이 한 2만명, 만원씩.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반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고 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이렇게 크다, 갈망이 이렇게 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정당으로 가는 겁니까. 어떻게 가는 겁니까. 밖에서는 다들 정당을 만들려는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 정당하면 될 거 같아요? 허허,

- 모르는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 정치적인 모호성도 괜찮죠. 때론 정치적인 모호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니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의, 하나의 시민적인 자발적 운동이라 보면 좋을 거구요. 앞으로 우리 정치 선진과 평화를 추구하는, 또 그것을 희망하는 정치가 어떤 형태로 이뤄지든 간에, 그 정치조직이 어떤 형태로 조직화가 되든 간에,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라 봅니다.

- 고건 전 총리가 작년 하반기부터 새 정치 얘기하면서 정당 전 단계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단체를 만들어 중도 그런 것 표방하면서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닌 것 표방했는데, 결국은 접었습니다. 우리 정치에서 이렇게 양쪽을 아우르는 정치가 성공한 예가 있습니까.

= 양쪽을 아우르는 것 하고 중간에 서겠다는 것 하고는 다르죠. 여하튼 저는 제 얘기만 하겠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봐라 이겁니다. 나는 역사랑 부둥켜 안고 씨름하며 살아왔다고 하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독재시대엔 독재정권과 맞붙어 싸우고, 세계를 봐야 할 때는 세계를 큰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한참 정치적인 변혁·변동기에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와 학생들에게 그냥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뜨거우면서도 차분한 역사의 길을 모색했고, 정치에 들어와서는 꾸준히 개혁에 저를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정치의 길을 모색하고 국민들의 차원에서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좌다 우다 그 한가운데 서 있거나 동·서의 한가운데 서있거나 이런 게 아니라 민주화, 산업화 세력을 같이 끌어안고 좌우를 포용해서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중간을 택하는 것 하고, 중간에 서서 어느 쪽으로 또 쓰러질 수 있는 이런 거 하고, 진실한 국가 이익과 정의를 추구하는 중도의 노선 하고는 다릅니다.

- 준비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미리 하신 것 같은데, 준비된 질문을 하겠습니다. 한겨레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 나는 <한겨레> 독자나 <조선일보> 독자에게나 똑 같은 말을 합니다. 허허허, 그래야지.

-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서 80년 5월과 87년 6월은 절체절명의 시기인데, 국내에는 안 계셨던 걸로 되어 있습니다. 피했다, 편안한 길을 택했다는 지적과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80년 5월18일에는 제가 여기(국내에) 없었어요, 그러나 79년 10월26일에는 김해 보안대에 갇혀 있었어요. 유신체제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죽는 그때 내가 어디 있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라고 얘기해 주세요, 그리고 80년 봄, 서울의 봄, 그때 우리가 민주화된 걸로 생각했을 때입니다. 그때 나는 70년대 내내 고문과 투옥으로 점철된 시기를 보내고 79년 10월26일 유신체제가 끝나고서 이제 난 세계를 봐야겠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야겠다, 그때 불행하게도 우리 서울의 봄, 서울의 꿈은 5·18(신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어요. 물론 안타까웠죠. 그때 저는 나름대로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제 할 일을 했어요. 87년 6월10일 그때 저는 분명히 영국에 있었어요. 그러나 86년 1월경이라 생각이 되는데 영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전두환 독재체제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귀국했습니다. 기사연(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맡았어요. 기사원 원장을 1년 맡으면서 그 유명한 <기사연 리포트>로 운동권에 유일한 정세분석지를 그때 처음 만들었어요. 권인숙 성고문에 관한 책자를 출판하면서, 물론 전부 압수가 되었습니다만, 그런 억압을 받았습니다. 내가 86년 초에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그 민주화 운동의 그 싱크탱크를 운용하기 위해 들어온 얘기는 왜 안 하느냐 이거예요. 그리고 (참모진에게) 86년 인천 5·3사태는 언젠가? 거기 나가서 최루탄 먹고, 우리 다 그렇게 운동한 사람들이에요. 박사학위 논문, 우리 지도교수가 와서 보고는 ‘이거는 좀 마저 했으면 좋겠다’ 해서 그거 마지막 완성하러 (영국으로) 갔어요. 한마디로 나는 역사 앞에 조금도 부끄럼 없다, 떳떳하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80년 5.18 이후 나름대로 역할을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역할이었습니까.

= 우리 민주화 운동은 해외 민주화운동, 지원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요. 내가 80년 초에 외국으로 나가야겠다, 세계를 봐야겠다 한 것도 70년대 말에 내가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실무 역할을 하면서 국제관계를 내가 맡았어요. 그러니까 70년대 말에, 조금 과장을 하면 내 손을 거치지 않고 밖으로 나간 국내 인권 자료는 거의 없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중요한 자료 같은 것은 번역을 해서 내보냈고, 사진은 보안문제로 필름으로 찍어서 외국으로 가는 사람들, 선교사들 통해 내보내고. 그러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때 볼 수 있었어요. 이제 유신체제가 끝나고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관계다, 세계를 봐야겠다, 그런 생각에서 마침 내가 WCC(세계교회협의회) 장학금을 직접 관할하는 그런 책임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WCC 장학금을 받아가지고 영국으로 갔었고, 5·18이 나면서 해외 네트워크, 일본 유럽 미국 이를테면 미국이면, 노스어메리칸 코얼리션 휴먼 라이츠 인 코리아 이런 것도 있었고, 일본은 ‘긴뀨바이꾸’라고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긴급회의라는 게 있었고. 물론 영국에서 공부하던 위치이긴 했지만 영국 독일 일본 미국 이런 데 연대활동을 통해 5·18 상황을 알리고 또 그 뒤에 대책을 강구하고, 이런 일에도, 그 위치에서나마 최선을 다했습니다.

-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대변인,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를 죽 거치셨는데 이제 와서 비한나라당쪽, 이른바 범여권쪽의 러브콜을 받는데 염치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 우리 역사가 그렇게 딱 고정되어 있고, 그냥 그 변하지 않는 그 틀 속에서만 있는 거냐는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역사는 변하고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입장과 자세도 변하고, 이런 건 당연할 겁니다.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라고 하는 자리만 볼 것이 아니고 그 위치에서 내가 어떤 역할과 어떤 자세로 임했는가를 같이 볼 것이냐. 민자당 국회의원이라고 하지만 내가 정치권에 들어온 1993년 3월의 상황을 보십시오. 그때는 YS가 집권해서 초기에 온 나라가 개혁으로 들떠 있을 때였어요. YS에 대한 지지가 95%를 넘었을 때입니다. 광주·호남지역의 지지도도 90%를 넘었다고 기억을 합니다. 우리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개혁이었어요, 청와대 안가 개방, 인왕산 개방, 그 뒤 이어서 금융실명제하고, 하나회 없애고, 그런 개혁의 물결 속에서 내가 그때 선거구호도 ‘개혁 위해 나섰다’ 였어요. 그리고 97년 대선 전후로 민자당의 중심이 민주화 세력, YS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세력으로부터 다시 과거세력으로 돌아갔어요. 그때부터 나는 한나라당에서 개혁세력, 비주류, 한마디로 찬밥신세였어요. 그러니까 어떤 분이 이 근래에 와서 “안에 있었어도 시베리아지만” 그랬어요. 밖에 나가면 더 춥다, 안에 있어서도 시베리아다. 한나라당에서 대북 포용정책,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얘기하고 도지사로서 북에 대해 벼농사 협력사업을 하고, 평양에 가서 모내기하러 갔을 때 한나라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나가라는 얘기를 했을 때 한나라당에서 그때 ‘그런 얘기하면 안된다’는 변론 한 마디 없었어요. 저 개혁과 평화를 얘기하는 손학규가 한나라당의 자산이다, 이런 얘기 한마디 없었어요. 손학규가 떠난 뒤 한나라 당 어떻게 변했어요? 안되겠다, 우리도 대북정책 바꾸고, 안되겠다, 우리도 중도로 가야겠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단물을 빨아먹었다? 물론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 되었고 한나라당 공천으로 도지사 되었어요. 이 비 한나라당, 당시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이 (경기 광명에서) 국회의원 나갔을 때 어떤 누구도 대항해 나가려고 안 했는데 당 지도부에서 ‘아무래도 손 의원이 다시 나가야겠다’ 했고, 그 때는 도지사(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고 비어 있던 자리였어요. 2년 동안 그 지구당이 비어 있었어요. 나보고 나가라 그랬어요. 주변에서는 말렸어요. 소위 ‘그거는 당 지도부가 손에 피 안묻히고 당신 죽이려는 거다’ 했는데 이번에 뻔히 안 될 거 뭣하러 나가느냐, 그래서 나는 ‘이런 어려울 때 나보고 나가라는데 그거를 피하면 내가 정치를 무엇하러 하느냐,’ 그러면서 나갔어요.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내가 경기도지사 잘했다 그럴 수는 없는 거지만, 그러나 경기도지사로서의 업적과 능력에 대한 평가, 이것은 한나라당의 집권능력에 대해 국민들에게 안심을 하고 지지를 몰아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자부를 합니다. 또는 지금 한나라당 밖에, 일단 비한나라당이라 하십시다, 혹은 범여권이라고. 문제는 그 ‘한나라당에서 단물을 빨아먹고’ (말)하는데, 그런 자세로, ‘그런 사람이 염치없이’, 이런 자세로 손학규를 볼 것인지, 그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도움이 되면 그렇게 봐라 이거에요! 아니면 손학규가 살아온 역정과 손학규의 시대정신과 손학규의 능력을 살리려면 다른 시각에서 보고 다른 자세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겁니다. 내가 너무 세게 얘기했나? 하하하.

- 살아온 궤적, 시대정신을 말씀했는데 정치인들은 누구나 과거에 살아온 것에 대해 ‘대표상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와 15년 투쟁해 대통령이 되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뭐 이런 게 있습니다. 지사님은 어떤 겁니까. ‘내가 정치를 93년부터 했는데, 한 단어로, 나는 이거다’ 할 수 있는 것, 국민들이 그걸 바라는 데요.

= 바로 그거예요. 내가 너무 많아서 한 단어로 안 되는 거에요. 민주화, 개혁, 이 나라 경제, 일자리, 민주화에 대한 내 헌신과 기여. 정치권에 들어와서 손학규, 부정적 정치인이었습니까? 깨끗하다, 신사적이다, 합리적이다. 이게 우리 정치의 모습이 그래야 합니다.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행정능력, 특히 경기도지사로서 첨단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뭘를 더 기대합니까?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민주화와 산업화와 선진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냐 이거에요.

- 능력 있는 개혁 지도자라는 말씀입니까.

= 그렇게 내가 내입으로는 얘기 못하지만.

- ‘정통성과 능력을 다 갖춘 지도자’라고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 우리시대의 요구입니다. 개혁이 필요하고 그것을 추진해 나가고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 얼마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만나셨는데, 보기가 좋았습니다.

= 나도 좋았습니다.

­ 김 전 의장이 손 지사를 지지하리라 봅니까.

= 김 전 의장의 위치가 있는데 내가 그 얘길 그렇게 해서야 되나. 김 전 의장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이 근래 정치적인 행위 중에서 살신성인이란 말을 한 틈의 가감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이번 김 전 의장의 결심이었어요.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바쳐왔고 우리나라 정치의 도덕성의 표상, 현실정치에서 표를 만드는 데는 아직 미진했을지 모르지만, 폭넓은 경험과 커다란 덕으로 높은 경륜을 쌓았고, 나는 실제로 정치인으로서 특히 개인적인 오랜 벗으로서 이번에 그것이 꽃피우지 못하게 된 이런 것은 정말로 안타깝게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 김 전 의장은 던짐으로 해서 더 많은 존경과 더 큰 정치적인 능력을 얻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 대놓고 얘기는 못하지만 ‘친구야 내가 밀어줄께’ 그런 얘기는 안하던가요?

= 우리 인터뷰 좀 고상하게 합시다. 하하하하.

- 저희가 듣기로는 김 전 의장께서 더 늦기 전에 손해를 보는 모양새라도 빨리 뛰어드는 게 지지자들, 비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데 유리할거라는 얘기를 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만.

= 우리 둘만 얘기했는데 뭐, 전해지지가 않죠. 우리 둘만 얘기했으니까.

- 그런 말씀을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겠지만….

= 내가 금방 김 전 의장에 대해 얘기한 것은, 그런 위치에 대해 김 전 의장이 정말 나라정치를 김 전 의장의 표현대로 민주개혁세력, 평화세력, 이러한 세력이 앞으로 중요한, 정말로 중요한 5년을 책임지기 위해서 그 바탕을 깔겠다고 하는 그 충정은 누구도 거역하지 못할 겁니다. 또 저는 특히 김 전 의장에 대한 개인적인 우정과 신뢰를 깊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충정을 같이 갖고, 같이 뒷받침하고,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서로 해야 될 걸로 생각합니다. 그런 정도로 말씀 드리는 게 이 시점에서는 좋을 것 같습니다.

- 김 전 의장이 대선주자연석회의 등 여러 구상하는 틀이 있어 보입니다. 김 전 의장으로 대표되는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 연석회의에 합류를 요청을 받으신 건데요, 합류의사는 어떻습니까.

= 좀 아까 한 얘기로 대신하지요.

- 대통합을 말씀하셨습니다.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말씀도 있었고요. 통합의 대상과 범주, 원칙은 어떤 것입니까.

= 국민 대통합을 얘기했습니다. 지금 범여권 대통합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특정의 통합 원칙과 통합 틀을 얘기하는 고유명사화 되어 있는 이런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다가 염려하는 것이고, 지금 범여권의 많은 생각있는 정치인들이 같이 염려하는 바가 이 통합이라고 하는 것이 기존 여권의 단순한 복원 역할이면 안되겠다, 그렇게 비쳐져서는 안되겠다, 그렇게 해서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감동 줄 수 없다, 이런 겁니다. 그렇게 해서 궁여지책이랄까, 우선 시민사회의 정당 창당과 결합을 해서 만들어 보자는 구상도 있고,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거기서 판을 만들어 놓고 이쪽으로 합류를 하자, 그런 구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 국민들에게 ‘야! 맞다! 저게 대통합이다’ 이렇게 보여지는가 하는 건 별개 문제이고, 또 그런데 대한 염려가 있어서 다른 틀은 없나 하고 모색도 하고, 하여튼 그런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어려움은 지금 구여권의 복원으로, 구여권의 재구성만 가지고는 국민들에게 ‘야, 이제 되었다! 이정도면 우리가 나라를 맡길 수 있고 정권을 만들 수 있겠다’ 하는 희망과 자신을 줄 수 있겠느냐는 거죠. 중요한 것은 세력도 세력이지만 국민들에게 새로운 비전, 동력 이걸 줄 수 있느냐, 내 문제의식이 그거예요. 지금 범여권에 참여하는냐 안하느냐는 것도 국민의 에너지를 크게 엮을 수 있는 그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 그러니까 선진평화연대도 그런 힘 그런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입니다. 왜 선진이냐? 민주화, 산업화를 함께 통합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진국가가 단순히 GDP 몇 만불, 세계 몇 위 이런 게 아니라 선진문명국가, 선진사회, 인간과 생명이 존중받는 진정한 선진사회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테면 평화, 일차적으로 한반도 평화,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도 냉전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 벌써 한나라당 토론회에서도 그런 시각이 나오지 않습니까? 북한과 미국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그런, 앞으로 전개될 한반도 평화체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도 없고, 또 평화체제가 온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하나의 주체가 될 수도 없는 겁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반도 평화가 되는데 우리 한국, 남한은 들러리만 서고 실제로는 소외되고, 통일을 향한 평화가 아닌 분단고착화가 되는 평화가 될 위기의식이 있는 겁니다. 이런 역사의식을 제대로 담지할 수 있는 그런 정치세력을 어떻게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거죠. 어쨋거나 열린우리당 지난 4년 열심히 일하고, 노무현 대통령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은 떠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나 4·25 재·보궐선거 때 후보도 제대로 못 내고, 지금은 열린우리당 와해 내지는 해체 그런 상황으로 갔고, 현실은 현실대로 있는 그대로 인식을 해야죠. 잘못된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국민들 손 안에 뭐 갖다 줄 수 있는 개혁, 진보를 하되 정말 역사를 향해 앞으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진보가 되어야 겠죠. 그리고 구호와 이념에 그친 개혁과 진보 민주세력, 사회적인 불신과 폄하발언, 민주주의 자체가 능력이 없는 것, 민주세력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에요. 그런데 그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다른 한편 한나라당은 어때요. 지금 양대 후보의 지지도가 70% 가까이 되지만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았습니까. 저런 식의 옛날 정치, 아직까지도 공천헌금이 왔다갔다 하고, 아직까지도 남북관계를 상호주의를 가지고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얘기하는 그걸 어떻게 엮어내느냐가 우리 과제이고, 그 시도를 그 노력을 선평련이 하는 것이고. 나는 선평련이 모든 것이다,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한알의 밀알’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알의 받침돌이 되겠다, 여기서부터 희망을 주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으면 내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국민을 다 같이 안고, 나는 지금 거 국민대통합 과정에서 앞으로 당장은 어려울 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나라당 안에 있는 사람들도, 또는 정치권에 손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 앞으로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고 끌고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국익을 우선하고 세계 추세를 제대로 담지할 수 있는 정치적인 힘, 새로운 중심을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국민대통합이 범여권 대통합과 다르다는 것이고, 상당히 큰 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 그런 것이 없었다면 제가 선진평화연대라는 새로운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겠죠. 기존 범여권에 들어가서, 거기서 한 지분을 차지하려고 했겠죠. 말마따나 ‘무임승차’ 하고. 그런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거죠.

- 그런 큰 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중간에 제 정파와 협력을 하거나 같이 하거나 그런 같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파라는 것은 3~4가지 정도가 되어 있는데 열린우리당, 민주당, 제3신당, 시민사회, 어떻든 간에 기존의 정치세력을 아우르고 가야 하는데 기존 정치세력 놓고 그분들을 같이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정치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융화동진의 큰 틀로 가자는 게, 이런 것이 커다란 정신인데, 융화동진이라는 것이 하나로 녹여서 화합해서 조화를 이뤄서 함께 가자, 물론 그러면 그럼 뭐, 무슨, 모든, 아무거나 다 좋다는 얘기냐. 그런데 거기에는 뜻이 담고 있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정신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이 사람은 되느냐 아니냐, 이 사람은 융화동진에 들어가느냐 아니냐, 이거는 정말 융화동진의 정신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새로운 정치의 길, 융화동진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의 길을 찾는 거죠. 옛날 정치를 그대로 복원하는 그런 융화동진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집회 하나라도 내용을 새롭게 하고, 사람 하나라도 내용을 새롭게 하고. 그러나 과거의 제정파, 과거 인물, 이거는 아니라는 얘기냐? 근데 보세요. 우리가 환골탈태라는 말을 씁니다. 한번 다른 생각, 다른 길에 있었으면 영원히 다른 길이냐, 새로운 길에 같이 갈 수 있는 그런 정신과 자세로 재무장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과거의 것을 그대로 틀어쥐고 앉아서 대통합이라는 명목과 명분하에 둥지를 트는 것, 이것이 융화동진에 같이 포함되느냐? 그러니까 이거는 말로 일일이 따지고 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새로운 정치와 융화동진은 같이 가는 거라고 봅니다.

- 비한나라당 쪽 범여권쪽에서 그쪽의 대통합의 현재 메인 이슈는 쉽게 말해서 이 정권의 실패에 책임이 있는 정권, 친노그룹, 무능한 좌파를 같이 가느냐 배제하느냐가 현실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코멘트를 부탁합니다.

= 그런 것들이 자꾸 논쟁이 되는 것은, 우리 저 과거 운동권에 가장 큰 폐해 중 하나가 너무 논쟁을 하잖아요? 우리가 큰 틀과 큰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한미FTA 그 개별적 조항이나 개별적인 케이스 하나의 경우 나도 ‘이건 아니다’ ‘이건 좀 부족하다’ ‘이건 왜 이러냐’, 이를테면 스크린쿼터 같은 거, 한국 영화산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그걸 왜 먼저 주고서 얘기하느냐. 각기 달라서, 다른 건 좋아도 이것 때문에 반대하는 그런 경우도 생길 겁니다. 이익단체는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나라를 크게 운용할 사람은 큰 숲을 보고 큰 틀을 봐야지 이럴 수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 차원에서 지금 그걸 일률적으로 어떠어떠한 사람 같이 가느냐 배제하느냐 그걸 딱 양도절단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금 이 국면에서 분명한 길이냐. 정치에서 금도라고 하는 것은 내용이 있어도 얘기를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는 거라고 봅니다.

- 무능한 좌파, 정권의 책임자들이 환골탈태를 해서 기득권 버리고 참여하면 국민대통합에 함께 갈 수 있다고 보는 겁니까.

= 제가 그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고 봅니다.

-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 선진평화로 일단은 집약을 한다고, 저는 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선진국, 선진문명국 만들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이건데, 더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그건 미래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미래지향적, 선진사회 지향이라고 하는 미래.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과거회귀적인 지금 선진국으로 우리가 어떻게 만들 것이냐, 선진산업 선진기술로 만들어야죠. 그런데 그걸 과거시대, 개발연대식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선진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인간이 존중 되고 생명이 존중되는, 환경이 중시되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개발 논리에서 생명과 환경이 무시되는 이런 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에요. 이제 와서 지금 한반도 평화가 오는데 자꾸 과거의 냉전적 사고방식 이런 거, ‘북한에서 뭔가 내놔야 우리도 주지’ 이런 식의 과거식·냉전식의 사고방식, 그거 역시 이번 대선의 중요한, 그러니까 지금 시대정신을 여러가지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하나로 종합을 해서 얘기하자면 과거와 미래사회다, 그렇게 보는 거죠.

- 선진화를 말씀했는데, 우리나라의 선진화라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가장 가까운 모델을 무엇으로 보는지, 어떤 모델을 그리고 있습니까.

= 모델, 글쎄 뭐 정치학적으로 본다면 그 모델들은 소위 그 전 세계가 하나로 가는 컨버젼스, 컨버전스가 어떤 시대적인 특징을 얘기할 거에요, 융합이라고 하는. 우리 디지털 컨버전스를 얘기하는 겁니다. 기계도 여러가지로 합쳐지는, 핸드폰이라 하면 요새 전화기 TV 카메라 기능을 가지고, 더 나가서 집안 생활하고도 연결이 되고, 인체 메디컬 의료하고도 연결되는, 전부 하나로 융합되는 이런 기술도 그렇고 산업도 그렇고. 지금 자동차 산업을 기계산업이라 할 것이냐 전자산업이라 할지. 과거에는 자동차 회사에 기계공학과 출신이 많이 들어 갔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전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에요. 비용으로는 전자쪽이 더 크게 들어갈 겁니다. 우리 사회도 그렇거든요, 음식도 퓨전음식이 있고, 이데올로기도, 소위 자본주의 사회주의 굳이 그걸 가르는 게 의미가 없는 거죠. 그 안에 복지국가를 깔고. 그래서 그것을 한 모델로 삼으려면 우리 스스로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거에요. 분명 미국은 아닐 거에요. 미국은 자유주의 경제가, 우리가 얘기하는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경제적인 양극화도 심해지지만 사회적인 분화도 내부적으로 상당히 커지고 있다고 봅니다. 유럽 모델에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영향이 강하게 미쳐서, 자본주의지만 복지국가로 사회민주주의로 이렇게 커왔죠, 거기에 북유럽 같으면 독일이나 이런 데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정치에 상당히 일찍부터 포함이 되었어요. 저는 그런 것들을 더 크게 아우르는 국가적인 모델도 더 크게, 그래서 내가 얘기 하는 선진국가라고 하는 것은 선진사회 경제발전이라 하는 것, 분명히 이거 하나의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등한시 해온 인간과 생명과 복지와 문화, 문화는 사회의 동력, 삶의 기본조건이 될 겁니다. 내가 기존의, 21세기 가장 대표적인 창조에, 나는 창조·개방·융합·통합이라고 봅니다. 근데 그건 왜냐? 디지털 글러벌 네트워크 사회이니까, 글로벌 사회 통합, 네트워크 사회통합, 그런데 그 중에서 선도하는 것이 창조다, 우리시대 화두는 혁신입니다. 우리사회는 어디를 가나 혁신입니다. 공장에서도 기술 혁신, 행정에서도 기술 혁신, 이노베이션이, 뭐 신간서적의 모든 기본이 혁신입니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서도 새로운 정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구두선 같이 들릴 지 모르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계속 반복해서 가야 합니다. 우리 정치의 기본정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북한 문제인데, 핵 폐기해야 식량 지원을 해주는 거냐, 아니면 인도적으로 해야 하냐 논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지난 번에 쌀을 주기로 했다가 중단했는데, 저는 그걸 조금 안타깝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BDA문제로 중단된 건 사실인데. 근데 쌀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이미 내용적으로 핵 해결 기미가 이미 보여지고 있었거든요. 핵실험을 했다, 그럴 때는 매를 들거나 최소한도 매를 드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거는 분명합니다. 내가 일관되게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 지지해온 사람이지만 북한 핵실험을 그냥 오냐오냐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북한에서는 그런 내 입장을 알고 지난 번에 초청을 한 거였어요. 원칙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는 2·13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BDA문제에서 걸린 거고 그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어요.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거에요. 물론 미국의 매파들은 ‘우리가 돈 찾아가라 그랬으면 되었지’ 그렇게 얘기했지만 그러나 미국사람들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500만불이란 걸 어떻게 보따리로 싸가지고 갑니까? 북이 원하는 건 국제적인 금융결제 시스템을 다시 열어달라는 거였고, 미국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북에 대해서 추가적인 제제를 안한 겁니다. 또 북은 북대로 미국은 이걸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본 겁니다. 다만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가지고 중국이 이걸 딱 틀어쥐고 있어서 안되었는데 이번에 푸틴이 나타나서 러시아를 경유해서. 근데 그런 것들이 보이고 있는데 단지 국내여론을 의식해서 쌀 지원을 중단했다 그건 좀 단견이었다고 생각해요.

- 국민여론도 여론이지만 정부쪽에서는 미국 쪽의 요청이라고 합니다.

= 뭐 그런 게 있을 수 있겠죠. 대북관계에서 한미공조는 아주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우리는 미국 입장을 존중해야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강하게 설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국제적 관계라고 봅니다. 내가 남북 정상회담 찬성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한반도 관계에 대해서 독불장군처럼 미국 배제하고 우리끼리 해도 된다 이건 아니죠. 이게 이 정부 초기의 실수죠.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비위만 맞추는 정치도 안 된다, 그것을 적절하게 조화를 해 나가는, 남북관계하고 6자 회담 이런 것들은 앞서거니 뒷 서기니 할 수 있는, 앞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뒤로 좀 물러서고. 나는 김 전대통령을 지난 번 만났을 때 인상 깊었어요. 6·15남북 공동선언에 대해서 진행을 할 때 임동원 장관에게 ‘남·북 사이에 오가는 대화나 행위는 우리 숨소리 까지도 미국에 열어줘라,’ 한 겁니다. 한미공조를 중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서도 우리 역할을 적극적으로 한 겁니다. 공조란 것이 죽어서 따라다니는 게 아니란 거죠.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인 것으로 이용하려 하지 말고 진지하게 남북 평화를 이루는 데 벽돌 하나라도 더 쌓겠다는 이러한 겸허한 자세만 있다면, 그리고 진지한 자세만 있다면. 왜? 이 정권이 1년 남았다고, 지금 7~8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당이 다른 입장에 있었지만, 남북정상회담 해라, 그때는 북핵문제 걸려 있었을 땐인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정상회담해라 했습니다. 다만 콘텐츠를 가지고 해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국제 관계 특히 한·미공조는 튼튼히 유지해라, 그겁니다. 이건 정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족의 문제입니다.

- 교육관계, 내신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소위 ‘삼불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나는 교육문제를 삼불정책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로 접근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생각해요. 어떻게 교육을 삼불정책으로 기다 아니다 할 수 있어요? 이건 정말 아까 한미FTA 얘기했지만, FTA라고 하는 것은 한미관계이기 때문에 중간에 개별적인 사안에 불만이나 부족한 게 있어도 전체를 할거냐 말거냐로 가는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삼불정책이라 하는 것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다른 것이고, 그리고 그 안에도 이를테면 대입 본고사 찬성하느냐 마느냐 그런 식의 가부논쟁이 될 성질이 아니에요. 본고사 하고 본고사 아닌 것하고 같이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여하튼 교육정책을 이데올로기로 치환시켜서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데는, 저는 반대입니다. 앞으로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사구시 정신으로 하나하나 접근해야 합니다. 한가지 말씀 드릴 것은 앞으로 우리는 대학입시 제도가 교육문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고, ‘입시제도’란 말은 ‘대학입학 전형’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좀더 다양한 접근, 다양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 끝으로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 3권을 추천하신다면.

= 그런 것 별로 의미가 있을까. 나는 정치인들한테 굳이 그런 질문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오히려 교수들이든지, 그런 전문가들한테…. 나는 사실 그런 거에 대해서 어차피 앞으로 계속 나오기는 하겠지만 존경하는 누구 누구, 가장 감명 깊었던 책, 물론 그게 무슨 안되는 얘긴 아닌데, 이를테면 내가 이 <새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얼마 전부터 얘길 했더니 그래서 그랬는지 서언문화재단에서 다시 인쇄를 시작했어요.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1960년대 책이에요, 덴마크 개척에 대한 달가스 책인데, 이거 읽고 농과대를 가려했어요. 우리나라 농업국가, 우리는 역시 공업국가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을 바꿔 먹고 공부를 하다보니까 물리·화학 이런 게 영 안돼요. 그래서 나는 과학 쪽은 안되겠다 해서 문과로 갔는데 그런 것은 있을 수 있긴 한데, 근데 지금 내가 솔직히 깊게 책을 못봐요. 이런 얘기 하면 안되잖아. 그런 사람한테 무슨 책을 권할래, 하면 난 거짓말을 해야 하거든. 대강 앱스트랙트나, 책은 많죠. 다 읽지도 못하고 한줄 얘기하면 안 되잖아요? 정리/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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