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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누드패러디는 정말 모욕적인가?
‘패러디’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국회의원 누드패러디로 곤욕을 치렀던 KBS 시사 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밤 12시15분)가 해당코너인 ‘헤딩라인 뉴스’를 폐지키로 하면서 “그때 그때 다른” ‘패러디’의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해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저급 패러디”, “성적 모독”이라고 비난하는 반면,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과 인터넷기자협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은 해당 프로그램의 음란성 시비와 폐지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벌거벗은 성화는 ‘패러디’ 대상이 아니다!?”
문제가 된 작품은 15일 방송된 ‘헤딩라인 뉴스’의 ‘시사미술전’. 지난 14일 한나라당 당직개편에서 일부 반대파 의원들에게 “갈테면 가라”던 전여옥 의원은 유임된 반면, 사표가 수리된 박세일 정책위 의장은 이날 전재희 의원을 찾아 통곡하며 슬픔을 나눴다. 헤딩라인뉴스는 이에 착안해 한나라당 수도권지키기투쟁이 무위로 돌아가던 당시의 상황을 ‘낙원 상실’(낙원 추방)이라는 그림에 빗대 표현했다.
이날 ‘헤딩라인뉴스’는 마사치오의 낙원 상실 외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밀레의 만종, 뭉크의 절규,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고흐의 자화상 등 미술사에서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소재로 활용했다. 한덕수 부총리 임명 과정의 잡음을 ‘천지 창조’에 빗대 ‘총리 창조’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중 문제가 된 것은 박 의원과 전 의원의 얼굴을 합성해 넣은 ‘낙원 상실’이었다. <독립신문>과 <동아일보>는 “ 아래와 가슴 부분만 가린 채 발가벗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누드그림에 두 의원의 얼굴을 합성해 방송했다”며 “‘패러디’라는 이유로 누드그림에 얼굴을 씌워 성적모독, 명예훼손 논란이 일고 있다”고 문제시하는 보도를 했다.
“국회의원은 패러디 대상이 될 수 없나?”
<조선>은 18일자 사설 ‘풍자도 익살도 없는 KBS의 저급 패러디’에서 “패러디는 풍자와 익살을 생명으로 한다. 여기엔 보는 이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헤딩라인 뉴스’는 이런 패러디의 취지와 한참 거리가 멀었다”며 “국민의 대표로서 소신을 갖고 변칙 수도이전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국회의원의 정상적 정치행위를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남녀에 비유하는 설정 자체가 억지”라고 평했다.
사설은 또 “특별법에 맞서는 두 의원을 ‘속이 타고 있다’느니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느니 하며 모독했다. 열흘 넘게 단식한 여성 국회의원 얼굴을 벌거벗은 몸과 합성한 것은 당사자에게 성적 모욕감을 줄 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도 불쾌감을 준다”며 해당 작품을 유치하고 저급한 패러디로 매도했다.
여기에 두 의원이 속한 한나라당도 가세했다. 한나라당은 “공영방송 KBS가 많은 사람들이 잠든 야밤을 틈타 야당 국회의원들의 초상권을 도용해 방송에서 패러디 명목으로 음란한 짓을 한 것은 너무도 상식이하고 경악할 일”이라며 “똑같이 벌거벗고 음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남자와 여자의 누드 그림에 방송사 사장이나 관계자 자신의 부인, 딸, 여성 방송인 자신과 딴 남자의 사진을 합성시켜 시청자 전체가 보게 하고 인터넷상에 무차별적으로 돌아다니도록 할 수 있는지 꼭 묻고 싶다”며 한 술 더 떴다.
결국 18일 정연주 사장은 <한국방송>을 항의방문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정식사과를 하고, 해당 코너 폐지를 약속하며 ‘백기 투항’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시사투나잇>의 보도에 잇단 항의를 하며 취재를 거부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아 왔다.
“성화를 보면서도 음란한 상상을 하는가?”
%%990002%%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시사투나잇에 프로그램을 제작·공급해온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이 반박을 시작했다. 그는 “방송 어디에서도 남녀가 벌거벗고 음란스럽게 뒤엉켜 있지 않았으며, ‘음란한 짓’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날분 방송의 첫 번째 꼭지에서도 한덕수 부총리와 노무현 대통령, 이헌재 전 부총리 등이 똑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며 “마치 한나라당만이 부당한 모욕을 당했다거나 편파적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된 부풀리기”라고 반박했다.
최씨는 널리 알려지고 권위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인식되는 작품에 현실 속 인물의 얼굴을 합성해넣는 것은 기초적인 패러디기법 중의 하나”라며 “맥락도 없이 ‘누드 그림’이라는 단 한 단어로 음란 저질로 매도당한다거나 마치 한나라당 의원들만 부당한 창피를 당한 듯이, 여자라서 성적 모욕을 당한 듯이 몰고 가는 방식은 곤란하며, 악의적 근거에 의해 헤딩라인뉴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성화 패러디’를 음란한 것으로 모는 것이 진짜 음란”
한국인터넷기자협회(회장 윤원석)도 18일 성명을 내어 “세상 어느 누구가 성화를 보고 ‘음란하다’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인가”라며 “미디어몹이 소재로 사용한 작품을 보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처럼 ‘벌거벗고 음란스럽게 뒤엉켜 있는 남자와 여자의 누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고 한나라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협회는 “흔하디 흔한 단순한 패러디에 불과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이 발끈하는 이유가 뭐냐”며 “정작 음란한 것은 ‘성화를 패러디한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화 패러디를 보고 음란한 짓’이라고 여기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꼬집었다.
패러디 잣대, “그때 그때 달라요”
때문에 대통령과 정당 대표, 국회의원까지 발가벗기는 패러디의 잣대와 허용범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이 등장하는 패러디에 대해서 명예훼손 논란이 빈발하는 것과 관련해 언론의 이중잣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내현 편집장은 “패러디는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시청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해당 방송의 경우 시청자나 여론이 아닌, 패러디의 대상이 된 한나라당쪽의 이의제기가 공론화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공식화되어 버린 것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얀쪽배’로 활동중인 패러디작가 신상민씨는 “과거 한나라당과 시사투나잇(한국방송)과의 관계를 볼 때 꼬투리 잡아 공격했다는 느낌”이라며 “본인 스스로가 희화화되고, 희화화할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부담을 느껴 반박논리로 비겁하게 패러디에 대해서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7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영화 <해피엔드>의 포스터에 박근혜 대표의 얼굴이 합성된 패러디가 등장했을 때는 ‘성적모독’ 비난이 일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개만도 못한 X’으로 표현하고, 노 대통령의 혀를 피 묻은 칼로 묘사하거나 김일성 동상에 노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에 대해서는 표현 수준의 저질 여부논란이 일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 ‘극단 여의도’가 공연한 정치풍자극 ‘환생경제’에서는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X”, “육XX X” 등의 비속어가 남발했지만 ‘풍자’, ‘패러디’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헤딩라인뉴스’ 폐지는 “오버액션”
해당코너를 없애기로 방침을 정한 <한국방송>의 성급한 결정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내현 편집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번 방송을 저질, 음란물로 몰아가고 있다. 한나라 내분수습용 희생양 아닌가 싶다”며 “영국 BBC에서는 정치인의 머리를 톱으로 썰었더니 그 안에서 싹이 돋아나는 장면의 패러디도 내 보냈다. KBS도 이 정도의 패러디는 허용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민언련도 19일 “‘헤딩라인뉴스’가 비록 명화를 패러디했다 하더라도 패러디 대상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누드’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신중치 못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시사투나잇> 제작진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해당 의원들에게 사과하고 보다 수준높은 패러디를 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며, 이번 논란으로 ‘헤딩라인뉴스’를 폐지한다거나 <시사투나잇> 전체를 ‘문제 프로그램’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논평했다.
민언련은 “그 동안 ‘헤딩라인뉴스’는 패러디라는 형식을 빌어 각종 시사문제를 ‘촌철살인’으로 풍자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패러디’라는 새로운 형식이 방송 프로그램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는 비판과 그에 따른 개선이 필요한 것이지, 섣부른 ‘폐지’가 해답은 아니다”며 “오히려 이와 같은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우리는 확산되고 있는 패러디 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수준’을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정 사장이 제작진과 논의도 없이 사실상 해당 꼭지의 ‘폐지의사’를 내비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얀쪽배’ 신상민씨도 “예술의 한 장르로 제도권에 진입하기 시작한 ‘패러디’ 프로그램이 논란이 됐다고 해서 폐지하는 것은 무책임한 해결방법이며, 시청자들이 누려야 할 볼 권리와 알 권리를 침해하는 직권남용”이라며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당사자간 충분한 합의와 의견조율을 거쳐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패러디의 허용범위는 얼마나?
신상민씨는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패러디에 대해서도 다른 문화예술에 대해 허용되는 표현·창작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림, 조각, 영화, 사진에서의 누드나 베드신은 예술로 인정받으며,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며 “유독 패러디만 문제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패러디도 문화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다른 예술분야에 허용되는 보편적인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며 “유명 정치인의 얼굴을 쓰기 때문에 ‘신체의 몇 % 이상 노출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고 쓴소리했다.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장유식 변호사는 “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경우 인격권 침해를 일반인과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하며, 보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처럼 명화를 활용한 패러디가 지나쳤다고 볼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공인의 풍자와 해학을 담는 패러디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큰 문제는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투나잇> ‘헤딩라인뉴스’의 경우 실험적 코너로 논란이 많았지만, 초기단계에서 정착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진통이었다”며 “해당 코너가 폐지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익대 방석호 교수는 “누드 패러디의 경우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 만큼 단순한 의사 표현의 자유로 보기 힘들다”며 “명예훼손 소송도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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