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무기력 정기국회도 ‘그림자’
한나라 ‘발목잡기’ 시선 부담
한나라 ‘발목잡기’ 시선 부담
8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처리 무산으로 여야 모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또다시 국정 운영 전반에 걸친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타격이 커 보인다. 비록 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아니지만, 헌재소장을 둘러싼 청와대의 해법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나 임기 말에 들어와서 인사권 행사가 야권의 ‘실력행동’에 무기력해진 상황은 앞으로 노 대통령의 정국 운용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는 또 노 대통령의 이른바 ‘코드 인사’에 대한 저항이 거세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 측면도 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지도부의 전략 부재와 앞으로의 대야 관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번 사태로 정기국회 각종 법안의 처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의 한 재선 의원은 “당 지도부가 처음부터 대법원의 의견을 받아서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 임명동의안을 동시에 처리하는 복안을 가지고 시작했어야 한다”며 “청와대의 일방적인 계획을 그대로 추종하다가 결국 무전략의 극치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둔 시점이고, 강재섭-김형오 지도부 체제의 첫 작품이라 강경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전 후보자에 대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까지 이렇게 나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딴죽을 걸었다’는 비판과 ‘국정 발목잡기’라는 지적이 부담이다. 애초 전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둘러싼 절차 논쟁은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선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향한 비판론이 적지 않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전 후보자 임명은 헌법, 국회법, 헌법재판소법 등 세 가지 차원에서 원천적으로 위법”이라며 “여기까지 끌고 온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도부를 겨냥했다.
다만, 한나라당으로선 임명동의안 처리에 일단 제동을 걺으로써 정기국회 초반의 주도권을 확보한 점을 ‘성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임명동의안이 무산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임명 절차부터 정상적으로 다시 거치든지, 아니면 전 후보자가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말해, 이번 사태의 원천적인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태 와중에 ‘캐스팅 보트’로서의 입지를 어느 정도 다졌다. 두 당은 ‘여당 단독처리 반대’ 라는 명분을 내세워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의 경우, 그동안 전 후보자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밝혀왔다는 점에서 ‘여당의 들러리를 서지 않으려다 한나라당에 사실상 동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백기철 황준범 기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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