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백기철 기자
이기준 교육 부총리의 도덕성 파문은 집권 3년차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주창하고 있는 ‘선진한국’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노 대통령은 최근 선진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 제도, 국민의식이 모두 선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총리 논란이 확산되자 6일 이병완 홍보수석을 통해 “대학은 산업이 돼야 한다. 대학의 선진화를 위해 고심 끝에 이 부총리를 발탁했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교육은 단순히 대학제도를 선진화하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경제, 제도, 국민의식 모두의 저변에 바로 ‘교육’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수장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관장하는 ‘교육가’이자 ‘철학자’다. 비슷한 논란을 빚었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경우가 다르다. 이 부총리 임명은 노 대통령의 선진한국 구호가 자칫 도덕성이나 철학을 도외시한 채 성과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이번 논란은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이 증폭시켰다. 김 실장과 이 부총리의 ‘40년 인연’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비서실장은 인사추천회의 의장으로서 주재만 할 뿐,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궤변에 가까운 말을 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인사추천회의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은 산업”이라는 노 대통령의 설명도 뒤늦은 해명으로 들린다. 청와대 주변에선 전임 안병영 부총리와 청와대·총리실 수뇌와의 불화설도 나온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들이 병역을 기피하거나, 국적을 버리도록 방치한 가장이 교육수장을 맡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글로벌화돼 있지는 않다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또 이런 문제는 친여, 친야로 편가르기할 사안도 아니다. 이번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김우식 비서실장과 이해찬 총리, 정찬용 인사수석 등이 결국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청와대 인사검증체계의 ‘두뇌’에 이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궁극적인 책임은 연일 선진한국을 주창하고 있는 노 대통령에게 있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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