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숨통 끊나’…총선 보수결집 의도 의구심
개성공단사업을 지원하는 법정기구인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재단)을 해산하겠다는 정부의 4일 발표는 예상 밖의 돌출 결정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는 대북지원부가 아니다’라며 통일부 장·차관을 ‘비통일부 출신’으로 교체하고 통일부의 회담·교류협력 관련 조직을 통폐합 형식으로 사실상 없애기로 했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다.
결행 시점을 저울질하던 정부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지난달 30일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 규정하며 강경한 대남 기조를 밝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단 해산 결정을 발표했다. 이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악화하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정부가 정세 관리보다 ‘강 대 강’ 맞대응 쪽으로 대응 방향을 잡았음을 방증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4일 기자들한테 “재단 해산 문제를 공단 폐쇄·폐지와 직접 연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부의 재단 해산 결정은 2016년 2월 이후 장기 중단 상태인 개성공단사업의 마지막 숨통을 죄는 행위다.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 의지를 강조하고자 했다면 해산이 아닌 재단 규모 대폭 축소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재단 해산 뒤 5명 이내 청산법인 전환”이라는 강수를 뒀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에도 개성공단사업 재개는 명시돼 있지 않다.
정부의 재단 해산 결정은 개성공단 장기 중단에 따른 보상을 요구해온 입주기업들과 정부 사이에, 그리고 북쪽의 개성공단 무단가동을 둘러싼 남·북 당국 사이의 잠재된 법적 분쟁과 관련해 복잡한 문제를 낳을 우려가 있다. 재단은 ‘개성공업지구지원에관한법률’(개성공업지구법)에 따라 설립된 법정 기구로, 북쪽 영토인 개성공단에 있는 남쪽 입주기업 공장·설비의 재산권 등기를 북쪽 당국에 하는 업무를 대행해왔다. 정부는 이 업무를 통일부 소속 공공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 위탁하겠다는 방침인데, 협회는 개성공단 설치·운영과 관련해 남북 당국이 합의·정비해온 법·제도에 직접 포함된 기관이 아니어서 남북 당국 사이에 논란이 일 수 있다.
이렇듯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재산권에 중대 영향을 끼칠 재단의 해산 결정과 관련해 정부는 사전에 공단 입주기업과 상의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한테 “재단 해산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며 “입주기업들과 15~16일께 만나 설명을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기구를 축소하는 수준도 아니고, 아예 재단을 해산한다는 건 기업들에 대한 보상 책임도 지지 않던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단 해산은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대북 퍼주기로 여겨온 윤석열 정부 기본인식의 연장이자, 4월 총선을 앞두고 강경 보수세력을 결집하려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깔린 결정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nomad@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