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실에서 만난 임명준 사무총장(가운데)과 다큐멘터리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조은성 제작자(왼쪽), 지구촌동포연대 최상구 사무국장(오른쪽). 다큐멘터리 ‘차별’ 김지운 감독은 화상회의 줌(Zoom)을 통해 만났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고교 무상화 배제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차별’을 만든 김지운 감독은 지난달 22일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에서 공문 한통을 받았다. 공문에는 “‘차별’ 제작 과정에서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학교 인사를 접촉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것은 4년 전이다. 김 감독은 11일 한겨레에 “2015년에도 재일조선인 관련 작품을 만들었지만, 통일부에서 연락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대북 강경파인 김영호 장관 취임 뒤 통일부가 남북 민간 교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도 지난달 통일부로부터 “조선학교 교원 등 조총련 관계자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배우 권해효씨가 대표로 있는 이 단체는 2011년부터 조선학교를 지원해왔다. 권씨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바 있다. 몽당연필의 김명준 사무총장은 지난 5일 한겨레에 “통일부 직원이 단체 홈페이지에서 봤다며 2019년 조선학교 청년 교류 활동까지 문제삼았다”며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통일부는 남북 교류를 보장하는 부처란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 통일부는) 과거 행적까지 파헤쳐 시민단체를 겁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몽당연필은 올해 계획한 조선학교 방문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북한 주민’과 접촉하려면 접촉 대상의 상세한 인적사항을 적는 사전 접촉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만날 사람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렵거나 예상치 못한 접촉이 이뤄지면 사후신고도 가능하다. 그러나 통일부는 ‘사전 신고’를 강조하며 위반 사례를 찾아내고, 사후 신고도 거부하고 있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교류협력을 축소시키며 (사건을) 건건이 단속하진 않았다. 정부 정책과 다른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와 개인을 길들이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제작자 조은성씨 역시 통일부로부터 제작 과정에서 총련 관계자 접촉 경위서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조씨는 “창작자의 표현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은 문제다. 재일동포 관련 콘텐츠는 만들기 전부터 부담을 느끼게 됐다. 검열의 시대로 회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민애 변호사는 “통일부가 사후적으로 접촉을 제재하는 건 남북 교류를 촉진하자는 남북교류협력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재량권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북한주민접촉신고 제도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례도 나왔다.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생인 우준하씨 등 연구자 3명은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고 배봉기(1914~1991) 할머니의 삶을 연구하면서 그의 사연을 알린 총련 활동가를 만나겠다며 지난 8월과 9월 두 차례 접촉 신청 서류를 통일부에 냈다. 그러나 통일부는 “현 남북 관계 상황”을 내세우며 불허한다는 응답을 보냈다.
통일부 관계자는 “과거 북한주민 접촉과 관련한 교류협력법의 적용이 느슨하게 운용된 측면이 있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교류협력 질서·체계를 확립해 나간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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