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2021년 8월15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임시 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장을 지내기도 한 박종선 육사 총동창회장이 광복 전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한 백선엽 장군을 두고 “예수도 회개하면 봐준다”고 했다. 반면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을 두고는 “마지막 행적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며 육사 교내 흉상 철거를 재차 요구했다.
박 회장은 31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와 “홍범도 장군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거나 독립군으로서 활동한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육사 교내 흉상은 역사적·학술적으로 논란이 없는 분들을 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29일 육사 총동창회는 입장문을 내어 “6·25 전쟁을 일으키고 사주한 북한군, 중공군, 소련군 등에 종사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 인물의 흉상에 육사 생도들이 거수경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촉구했는데, 박 회장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2012년 6월8일 서울시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참석한 전두환씨가 가족과 측근들을 대동하고 육사생도들의 사열을 받고 있다. 방송 화면 갈무리
그러면서 박 회장은 “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마지막 행적이 공산주의자로서 전향도 안 했다. 그러나 백선엽 장군은 이십대 초반 일본군 장교를 몇 년 했다지만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을 창설하는데 아주 혁혁한 일을 했고 6·25 전쟁에서도 나라를 구했다. 예수도 회개하면 봐준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은 사람, 나라에 끼친 공적이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육사 교장 재임 중인던 지난 2012년 6월8일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참가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전씨가 화랑의식(퍼레이드)을 펼치는 육사 생도들의 경례를 받고 거수경례로 답하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됐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은 “박종선 육군사관학교장을 즉각 해임하라”는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2020년 7월15일 오전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영정이 장군 3묘역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25일 육사는 교내에 세워진 독립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하고 이를 독립기념관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독립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는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설치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공교롭게 지난달에 문재인 정부 때 육사 누리집에서 삭제됐던 백선엽 장군 웹툰이 다시 올라온 사실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백선엽 장군은 21살 때인 1941년 일제의 영향 아래 있던 만주국 군대인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고, 1943~1945년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설립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회고록 ‘군과 나’ 일본어판에서
“주의주장이 다르다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었다”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국가보훈부는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 백선엽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적은 문구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삭제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