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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보수언론·재계도 우려하는 ‘반국익 가치외교’ 위험한 질주

등록 2023-08-27 07:30수정 2023-08-27 09:21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95

“중국, 경제·안보적 여전히 중요…
큰 시장 포기하면 회복력도 없어”
윤 대통령, 외교·안보 식견 ‘부족’
보수세력 ‘진심 어린 충고’ 들어야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정상은 이날 정상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정상은 이날 정상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시작됐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습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겠다고 선서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책무와 의무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 미·일에 ‘선물 보따리’

대한민국 대통령의 최고 규범은 대한민국의 국익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국익외교’가 아니라 ‘가치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독재자 이승만·박정희 대통령도 윤 대통령처럼 가치외교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한반도 역내 공조에 머물렀던 한·미·일 협력은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의 자유, 평화, 번영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범지역 협력체로 진화할 것이다.”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은 한반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국제사회의 안보를 구축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한·미·일이 ‘가치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한·미·일 협력의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게임 체인저가 될 핵심 신흥기술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경쟁 기업의 불법적인 기술 탈취 시도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미·일 3국의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 증진은 대한민국의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양질의 고소득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가치외교가 안보는 물론이고 기업, 일자리 등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얘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윤 대통령의 기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 외교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뉴욕타임스의 평가가 가장 압축적입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가장 얻은 게 많고, 일본도 잃은 건 없고 많은 걸 얻었다. 반면 한국은 준 건 많은데 얻은 게 별로 없는데다 상당한 안보 위험을 떠안게 됐다”고 정리했습니다.

김상근 목사 등 원로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력은 사라지고 전쟁의 위협이 횡행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과 이인영 평화안보대책위원회 위원장 주최로 ‘한·미·일 정상회담 평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가 외교 분야에 대한 총평을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축으로서 한·미·일의 협력을 제도화, 영구화하려는 미국 주류 외교 엘리트로 구성된 바이든 정부 외교팀의 야심 찬, 역사적 시도다.”

“중국 견제가 핵심인 ‘팀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윤석열 정부가 적극 수용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의 군사적, 이념적 진영화는 심화할 것이다.”

“남북, 또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군사적 대립 구도가 분명해지고 여기에 한·중의 경제적 갈등이 더해진다면 한국 외교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질 것이다.”

“중국 적대 아니야” 언론에 흘리기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도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지난 21일치 신문에 “공급망·기술 협력 ‘3각 연대’…리스크 줄이고 기회 키워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한 차원 높아진 경제 협력의 기대 효과가 큰 만큼 리스크도 적잖다. 한미일 정상회의 결과에 노골적으로 반발한 중국은 특히 한국을 겨냥해 ‘진흙탕에 발을 담그는 것’, ‘미국 패권의 바둑돌이 되면 안 된다’ 등의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3국이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명기한 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공동 대응 수위를 높이게 될 경우 러시아와의 갈등 또한 피해 가기 어렵다. 이들 국가의 경제 보복, 통상 마찰 등은 한국에 더 타격이 될 수 있다.”

조선일보는 21일치 신문에 “한·미·일 첨단 혁신 공조, 저성장 늪에서 재도약 기회 될 수 있다”, “한·미·일 체제 작동하려면 한미 동맹이 미일 수준으로 격상돼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22일치 신문에는 “중·러와 정상적 관계 관리할 지혜가 과제로 남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국이 가진 경제·안보적 위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한때 우리 수출의 25%를 차지한 최대 교역국이다. 이 사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 단순히 김정은 정권을 지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북에 첨단 무기를 제공해 우리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다. 중·러 견제를 명시한 한·미·일 연대는 우리 외교의 큰 기회인 동시에 부담이다.”

중앙일보도 21일치 신문에 “한·미·일 전방위 협력 질적 도약…과제도 만만찮다”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습니다. 22일치에는 “캠프 데이비드 합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론과 국민의 지지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대외 관계 문건이나 약속은 시한부 또는 반쪽짜리가 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파트너로 규정했다. 일본을 파트너로 여기는 정부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압도적인 힘으로 북한의 위협을 차단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18일 합의의 지속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선 면밀한 후속 조처와 함께 국민 동의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다.”

어떻습니까? 보수 성향 신문들의 우려는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특히 한·미·일 협력에 모든 것을 거는 외골수 노선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도 이런 여론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8월21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한·미·일은 중국을 배제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회의를 한 것이 아니다. 중국을 적대시하려는 의도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발언은 23일 아침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내용이 왜 윤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나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의 브리핑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었거나,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일부러 숨겼다고 봐야 합니다. 전자라면 한심한 것이고, 후자라면 비겁한 것입니다.

17년 전 디제이의 지혜

윤 대통령의 위험한 질주는 앞으로도 이른바 보수 세력 내부의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특히 경제 현실에 민감한 재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미-중 갈등 사이에 낀 한국 기업 전략에 대해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시장을 다 잃고 갑자기 대체 시장을 찾아내긴 어렵다”며 “중국이란 큰 시장을 포기한다? 그래선 우리에겐 회복력이 없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최 회장뿐만이 아닙니다. 재계에서는 대체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대 북·중·러’ 외교 노선을 근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입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6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보전략서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6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보전략서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마무리하겠습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안목을 갖췄던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뒤 2006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는 제2차 냉전시대를 지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1차 냉전이 미-소 대립이었다면 2차 냉전은 미·일 대 중·러인데, 그 사이에 한국이 1차 냉전 때와 같이 주무대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 또 한번 우리가 시련 속에 있지 않나 걱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무려 17년 전에 이런 전망을 한 김대중 대통령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를 한 사람입니다. 외교·안보에 대한 식견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휘둘리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전면적인 외교·안보 노선 수정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선 위험한 질주를 잠시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학자로서 이상론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보다는, 외교부 ‘커리어’들의 집단지성을 대표하는 조태용 안보실장과 민심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 출신 박진 외교부 장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보수 신문 논객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치보다는 국익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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