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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N잡’ 뛰며 4년 뒤 기약하는 청년 정치인 “꿈 못 놓는 이유는…”

등록 2023-08-02 05:00수정 2023-08-02 20:43

2023 청년정치보고서② 낙선 후보들, 지금은
‘비수기’에도 생계 유지하며 실력 키울 여건 절실
“유급 사무직원수 제한하는 정당법 고쳐야”
왼쪽부터 청년정치인 김민성(31·민주당), 황시혁(41·국민의힘), 정다은(37·민주당). 본인 제공
왼쪽부터 청년정치인 김민성(31·민주당), 황시혁(41·국민의힘), 정다은(37·민주당). 본인 제공

김민성(31)씨는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천안시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과정에서 전 재산보다 1천만원이나 많은 3600여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득표율이 15%를 넘었다는 점(17.38%)이다. 선거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한 500만원을 뺀, 3100여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선거 후보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의 전액을, 10% 이상~15% 미만 표를 얻으면 선거비용의 절반을 반환받는다.

낙선 뒤 1년여가 지난 현재, 김씨는 3개의 삶을 살고 있다. 정치인, 음식 배달기사, 대리운전 기사로서의 삶이다. 그의 하루는 매일 똑같다. 휴일도 없다. 아침 8시께부터 당원들에게 인사 전화를 돌리고,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5시~7시에는 하루 8~9건의 배달 음식을 나른다. 저녁 8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는 주 수입원인 대리운전을 한다. ‘정치인 김민성’에게 온전히 주어진 시간은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4시간뿐이다. 이 시간에 그는 각종 지역 행사에 참석해 명함을 돌린다.

1인3역…기약 없는 ‘버티기’

그의 직업은 ‘정치인’이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수입이 없다. 그는 “한번 더 선거를 준비할 생각”이라면서도 “그때도 떨어지면 정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안정적인 벌이가 없는 청년 정치인의 일상은 기약 없는 버티기다.

다만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추동하는 힘을 얻는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지난 5월의 일이 대표적이다. 대리운전을 할 때였다. 손님이 그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아는 분이랑 이름이 같네요. 그분은 민주당에서 정치하는 분인데….” 대리운전 서비스를 이용하면 고객에게 대리기사 이름이 공개된다. 얼떨떨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손님이 말했다. “지역구는 다르지만 지지자예요. 결례가 안 된다면, 대리비를 더 드리고 싶어요.” 그러고는 대리비 외에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김씨에게 건넸다. 1천원짜리 11장과 5천원짜리 1장이었다.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테니, 다시 나와서 천안을 바꿔주세요.” 그 말에 김씨는 울음을 삼켰다. 대리기사를 하면서도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결코 접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청년 정치인의 삶은 바쁘고 고단하다. 특히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이 없는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비슷한 처지의 중년 정치인들의 삶도 다르지 않지만, 청년들은 그들에 견줘 경제 활동을 한 시기가 짧아 모아둔 자산이 부족하고, 정치 활동 경험이 적어 당내 기반이나 지역 조직력이 취약해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력이 있는 청년 정치인들은 집에 손을 벌리기도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은 자신의 전부를 걸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한 이들에게는 출마 전보다 훨씬 더 팍팍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호기로운 도전…남은 건 ‘빚’뿐

황시혁(41·개명 전 황규원)씨도 다르지 않다. 그는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전남 목포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황씨는 ‘청년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란 물음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돈”이라고 답했다.

총선에 출마하기 전, 그는 대구시청 앞에서 여행사를 운영했다. 2019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여행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일거리가 없어졌다. 앞날을 고민하던 차에 그는 평소 뜻을 품어온 정치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여행사를 운영하며 번 돈과 광고 프로듀서(PD) 일을 하며 모은 돈 등을 싹싹 긁어 총선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민주당 텃밭인 목포에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당에서 선거비용으로 5천만원을 지원받았지만, 기탁금, 현수막, 공보비, 유세비, 인건비 등으로 1억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썼다. 득표율은 2%였다. 선거비용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빚만 고스란히 남았다.

대리운전을 하는 김민성씨가 지난달 25일 밤 손님을 만나 자동차 키를 받고 있다(왼쪽). 황시혁씨가 라오스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가운데). 정다은씨가 지난해 9월 경주 다함께돌봄센터에서 식생활 교육을 하고 있다(오른쪽). 본인 제공
대리운전을 하는 김민성씨가 지난달 25일 밤 손님을 만나 자동차 키를 받고 있다(왼쪽). 황시혁씨가 라오스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가운데). 정다은씨가 지난해 9월 경주 다함께돌봄센터에서 식생활 교육을 하고 있다(오른쪽). 본인 제공

그는 낙선 뒤에도 약 2년 동안 국민의힘 목포시 당협위원장으로 지역구를 지켰다. 활동비와 현수막 설치비, 교통비 등으로 해마다 1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갔다. 그만큼 빚도 늘어만 갔다. 당 차원의 지원은 없었다. 그나마 매달 들어오는 특허권 사용료를 버팀목 삼아,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했다. 그는 여행지와 여행 날짜를 선정하면 관광지와 숙소, 이동 경로 등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이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다. 성수기·비수기 차이가 큰 여행업 특성상, 가이드 일이 없는 비수기에는 허니문(신혼여행) 상담을 하며 빈 곳간을 채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죠. 청년이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다만 집(가족)에는 좀 미안합니다.” 황씨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현재 대구 지역에서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정치캠퍼스’를 운영하며,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황씨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호남에서 변화를 도모했다면, 정다은(37)씨는 반대의 경우다. 민주당 소속인 정씨는 2020년 총선 당시, 경북 경주에 출마해 떨어졌다. 득표율은 14.72%. 이후 지난 3년 동안 민주당 상근부대변인과 경주지역위원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정치 활동이 벌이가 된 적은 없었다. 생업은 전적으로 남편이 책임졌다.

선거를 치르기까지 어려움도 컸지만, 사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더 큰 고비는 총선이 끝나고 찾아왔다. “선거 때보다 경북도당 경주시 지역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돈을 더 많이 썼어요.” 정당법상 원외 지역위원장은 사무실을 둘 수 없다. 사무실이 있으면 당이나 지방정부 등에 대한 요구사항을 전하기 위해 지역민들이 그를 직접 찾아왔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거꾸로 그가 주민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북도당 차원의 일정까지 소화하면 이동 거리는 한정 없이 늘어났다. “하루는 안동으로, 하루는 경산으로, 또 하루는 포항으로…. 가야 할 곳이 많았죠.” 민주당 상근부대변인까지 맡은 터라, 일주일에 4번씩 서울에도 가야 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교통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당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매달 직책 당비 10만원을 내야 했다. 정씨는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지역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선거 패배의 책임도 있었지만, 주어진 책임만큼의 권한과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점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지역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몸담았던 시민단체 ‘식생활교육 경주네트워크’에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을 상대로 식생활에 대해 강연을 한다. 강연료를 받지만 정기적인 수입원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하는 이유는?

그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때때로 서울로 올라가 ‘정치 스터디’ 모임을 한다. 정치인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며 함께 공부하는 자리다. 청년 정치인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현실 정치의 끈을 끝내 놓지 않는 것은 바로 아이들 때문이다. 처음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다짐대로 초등학생 두 아이가 경주 인근 원전에서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치밖에 해법이 없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하지만 이런 굳건한 믿음에도 때때로 ‘정치 낭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상근부대변인을 할 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별다른 직업도 없는 50대 남성들이 정장을 입고 여의도 카페를 배회하는 모습을 봤을 때였어요. 그들도 한때는 지역위원장이었고, 청와대에서도 일했던 유망한 청년들이었는데, 나이 들어서 유력 정치인들 사이를 오가며 기회를 엿보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죠. 지역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온 것도 그런 모습을 보고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서였어요.”

선거 때만 ‘반짝 청년정치’는 그만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권이 선거철에만 ‘청년 정치’를 반짝 띄울 게 아니라, ‘정치 비수기’에도 청년들이 생계를 유지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선거철이 끝나면 ‘청년 정치’가 ‘청년 방치’로 이어지는 상황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 신인들이 정당 안에서 체계적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는 ‘정당법에 규정된 유급 사무직원 수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당법은 정당이 둘 수 있는 유급 사무직원 수를 중앙당 100명, 시·도당 100명으로 묶어두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수적인 사무직 당직자를 빼고는 정치 신인들에게 제대로 된 직책과 월급을 줄 방법이 제한적이다. 민주당의 한 30대 정치인은 “정치 신인은 당에서 이름뿐인 직책으로 단발성 활동비를 받거나 정책연구소에 편법으로 채용돼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청년들이 진짜 정치를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민성씨는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예산서 보는 법, 법안 초안 작성하는 법 등 실전 기술 교육이 필요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수강비가 수십만원에 달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 정치인들이 교육을 받을 엄두를 못 낸다”며 “기성 정치가 청년 정치인을 향해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육성 프로그램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공직선거 출마를 위해 억단위로 들어가는 선거비용은 청년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인 만큼,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에 청년 우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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