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심사위원회 개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책 소통창구인가, 여론몰이 도구인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신설된 정부 소통창구인 ‘국민제안’을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티브이(TV)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을 공론에 부치고, 이곳에서 표출된 여론을 정책 드라이브의 근거로 활용하면서다.
국민제안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신설된 정부 소통창구로, 지난해 12월 국민 소통 기능을 강화한다며 특정 이슈에 국민이 찬반의사와 댓글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국민참여토론’ 코너가 도입됐다. 이해관계자 의견이 엇갈리는 건의사안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제안 심사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해 관계 부처에 합리적 권고안을 전달하겠다는 취지였다.
첫 주제는 ‘도서정가제’였다. 모든 책의 가격 할인 폭을 10% 이내로 제한하는 도서정가제 탓에 소규모 영세서점이 재고 도서를 팔지 못해 부담을 안고 있으니, 소규모 영세서점에 한해 이 제도의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토론 결과 예외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정부가 내건 2차 토론 주제는 ‘티브이(TV)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이었다. 현재 티브이 수신료(월 2500원)를 전기요금에 합산해 징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개선 방식을 물은 것이다. 수신료는 <한국방송>(KBS)의 주요 재원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한국방송>을 ‘편파방송’으로 규정하고 나선 뒤 대통령실은 국민참여토론을 통해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에 나섰다는 점이다. 특히, 공영방송 옥죄기를 이어오는 현 정부 기조를 보면, 더욱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 처분을 재가한 데 이어, 대통령실은 수신료까지 손보겠다고 나섰다. 더욱이 한 위원장 후임으로는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특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변인·홍보수석 등을 거친 인물로, 야당으로부터 ‘엠비(MB) 정부 언론 탄압의 선봉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3월9일부터 한 달간 국민제안 누리집의 찬반 및 댓글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동일인 중복응답(어뷰징) 논란까지 일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런 찬반 및 댓글을 티브이 수신료 분리징수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예고한 세번째 안건은 집시법 개정이다. 지난달 민주노총 건설노조 1박2일 집회 뒤 여당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개정안 추진에 나섰고, 고공농성을 벌인 한국노총 간부가 경찰 진압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꺼내 든 안건이다. 대통령실은 안건 선정 기준을 생활 공감도 △국민적 관심도 △적시성 등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안건을 심사하고 투표결과를 보고받는 9명의 국민제안 심사위 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다수의 연락이 몰려 업무에 방해될까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투표 또한 정부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신료 강제 징수 투표 당시, 여권과 일부 보수 유튜버 등은 국민제안 응답 참여를 독려하고 나선 바 있는데, 이런 일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제안은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특정 정파의 편향적 의견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폐해가 있었다’며 이를 바로 잡겠다고 도입한 제도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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