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16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42일 만에 또다시 거부권 카드를 쓴 것이다. 대화와 협치보다는 거대 야당의 입법 드라이브에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맞서는 양상이 되풀이되면서, 정치 실종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간호법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국무회의 종료 뒤, 이를 재가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다시 넘기 위해서는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앞선 양곡관리법처럼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인력 및 간호에 관한 사항을 독자적인 법률로 분리한 간호법은 간호계 숙원사업이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선 기간에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 주는 것이 바로 공정과 상식”이라며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 간호사와 의사·간호조무사 간 갈등, 국민 불안감, 국회의 숙의 부족 등을 이유로 대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안 심의에 앞서 국무회의 머리발언을 통해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윤 대통령의 간호법 재의 요구를 적극 방어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야당을 향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료계를 갈라치기 해서 46만 간호사의 표심을 얻고, 극단적 갈등의 책임은 정부·여당에 떠넘기겠다는 정치적 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때가 지난해 5월17일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는 물론,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만 건의하는 집권 여당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야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다”며 “윤 대통령은 공약 파기 이유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소속 국회의원 전원 명의로 거부권 행사 규탄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대통령의 독선과 협치 거부 선언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했다.
김영경 간호협회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은 약속을 파기했다. 국회를 통해 간호법을 재추진하는 등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간호협회는 파업 등 구체적 행동 방침은 내놓지 않았다.
김미나 임재우 신민정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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