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야구 관련 선물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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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결단력과 행동력에 경의를 표한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지난 3월부터 이어진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협력 기조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름간 쏟아진 찬사다. 그러나 외교의 장에서, 정확히는 미국과 일본 정상에게 ‘고맙고도 존경받는 존재’가 돼버린 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내 여론은 녹록지 않다. 한-일 관계라는 물컵의 반을 우리가 먼저 채우기 전, 여론 수렴이나 야당과 시민사회를 향한 설명 과정이 생략된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지난 11일 발표된 대한민국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한-일 정상회담 ‘부정평가’는 52%, ‘긍정평가’는 38%였다. 셔틀외교의 복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 파견,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참배, 지방 항공노선 확대 등이 ‘물컵의 남은 반을 채울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 8일 대통령실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 추진해온 가치 중심의 외교가 성과를 얻어가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었고 한-미 핵 방위 공동선언(워싱턴 선언)을 끌어내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자평한 것과도 온도 차가 작지 않다.
설득 작업이 빠진 윤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국민 통합이란 과제를 포기한다는 선언으로도 읽혔다. 용산 대통령실 앞은 하루가 멀다 하고 ‘퍼주기 대일 외교 규탄’이나 ‘한·미·일 삼각 공조 환영’ 같은 엇갈린 손팻말을 든 시민들의 외침으로 뒤덮인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며 최대 성과로 외교 분야를 꼽았다.
윤 대통령은 오는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돼 다시 한번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와 얼굴을 마주한다. G7 참석을 계기로 한국을 찾 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17일 ) ,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21일)와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미국 중심의 서방 체제 밀착도를 높이려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한층 노골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G7의 의제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견제 목적이 담긴 인도·태평양 전략 등이 테이블에 오를 방침이다. 회의 뒤에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별도 문서를 채택한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강력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가치 외교’를 앞세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적에 치중하다 자칫 대중, 대러 정책의 기본 궤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장국인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증이 절실하다. 정부 관련·산하 기관 전문가 중심의 ‘한국 시찰단’이 일본 정부의 명분 쌓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기우로만 치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협력과 경쟁 사이, 49 대 51 사이 어딘가에서 최대치의 국익을 챙겨야 하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윤 대통령이 쉽사리 경로를 바꿀 것 같지 않다. 달콤한 찬사와 환대보다, 실질적 국익을 먼저 챙겨달라는 국민 바람은 윤 대통령에게 닿을 수 있을까.
김미나 정치팀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