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3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중심에 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고 24일 귀국해 당당하게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사태 추이를 놓고 긴장해온 민주당으로선 사건의 핵심인물인 송 전 대표가 자진 탈당과 귀국 의사를 밝히자 한시름 놓은 모양새다. 그러나 송 전 대표의 탈당으로 돈봉투 사태의 정치적 책임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몫으로 남겨진 터여서, 수습책을 놓고 향후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2일 프랑스 파리 3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직) 검찰의 소환이 없지만 가능한 빨리 귀국해 조사에 당당하게 응하고,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당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송 전 대표는 24일 오후 3시께 국내 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다.
다만 송 전 대표는 캠프의 총책임자로서 ‘돈봉투 의혹’을 보고받거나 개입한 정황에 대해선 부인했다. ‘돈봉투 의혹을 전혀 몰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고,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보고를 받은 일이 없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렇다. 세번 출마해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에 견줘 앞선 상황에서 금품을 동원할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다. 앞서 <제이티비시>(JTBC)는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캠프 관계자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를 지낸 강래구씨와 나눈 통화 녹음 파일 등을 공개하며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를 인지한 것은 물론 직접 개입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송 전 대표의 회견 뒤 민주당 관계자들에게선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사태가 불거진 뒤 당내에선 ‘송 전 대표가 귀국을 5월로 미루거나, 기자회견에서 회피성 발언을 할 경우 위기를 걷잡을 수 없다’는 긴장감이 컸던 까닭이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표가 송 전 대표의 파리 기자회견을 만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송 전 대표의 즉시 귀국과 자진 탈당 결정을 존중한다. 송 전 대표의 귀국을 계기로 이번 사건의 실체가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신속하고 투명하게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당 관계자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라고 내다보고 있다. 앞서 지난 20일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대국민사과를 결의했지만,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송영길 전 대표 입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내부적으로 함께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한 상황으로 보고 있는가 인식을 공유하고 대책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검찰 수사 때문에 실효성이 적더라도 자체 진상조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당장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의원들을 향한 거취 압박이 커지면서, 2차 위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수사 대상도 아닌 송 전 대표가 자진 탈당한 상황에서, 이 전 부총장과의 통화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의원들을 향한 자진 탈당, 제명 압박도 본격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송 전 대표가 탈당했으니,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의 거취가 다음 쟁점이 될 것”이라며 “당으로선 괴로운 대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라시 형태의 전당대회 돈봉투 명단에 이름이 오른 신정훈 의원은 의혹을 부인하면서 “(의원) 169명 모두가 결백하다면 결백하다는 입장문을, 죄가 있다면 죄를 밝히는 고백문을 발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도부도 수습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일각에선 ‘혁신 조직을 꾸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지도부는 선을 그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밖에서 누굴 모셔와서 조직을 꾸리는 건 장기적인 문제다. 당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개혁안부터 검토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도 “(전당대회 돈봉투 대상이 된) 대의원 제도 폐지를 비롯한 개혁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쇄신 의지를 놓고 비판이 쏟아졌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송 전 대표의 회견을 두고 “‘정치적 책임’을 운운했지만 결국 국민이 아닌 민주당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할 일 다 했다는 듯한 꼬리자르기 탈당뿐이었다”며 “‘몰랐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답변은 이재명 대표의 과거 모습과 데칼코마니”라고 주장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도 “자기 집이 불타고 있는데 민주당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며 “사태를 책임지려는 노력도, 자정하려는 의지도 하나 없이 송 전 대표의 귀국만 목빠지게 기다린 채 손을 놔버렸다”고 비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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