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대규모 민간인 공격’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동안 정부가 공식적으로 고수해온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에서 선회할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일정 부분 전쟁 개입’이라고 즉각 경고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19일 보도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질문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 고집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적 침략을 받은 나라에 대해서 그것을 지켜주고 원상회복을 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전쟁 당사국과 우리나라와의 다양한 관계들을 고려해, 그리고 전황 등을 고려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인터뷰는 오는 26일 미국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뤄졌다. <로이터>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 의사를 밝힌 것은 1년여 만에 처음”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한국은) 러시아에서 운영 중인 자국 기업들과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고려해 러시아와 대립하는 것을 피하는 입장이었다”고 짚었다. 그간 미국 등 서방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요청해왔지만, 정부는 방탄헬멧, 전투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차원의 군수품 지원에만 한정했다. 한국이 미국에 수출 또는 대여 계약을 한 155㎜ 포탄이 우크라이나로 ‘우회 지원’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도 정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라는 입장에 변함없다고 밝혀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현시점에서 정부 원칙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며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제가 있는 답변”이라고 논란을 진화하려 했다.
야권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분쟁 지역에 대한 군사 지원은 국익을 해치는 행위이고 결단코 해선 안 될 일”이라며 “대한민국 국익에 심대한 위해를 가하는 이번 결정에 대해 대통령의 재고를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전쟁에 일정 부분 개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에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크렘린궁 대변인의 언급은 가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고자 한다”며 “윤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한-러 관계를 고려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강도를 높여가는 북한의 핵·미사일 무력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억제도 있지만, 초고성능, 고위력 무기들을 개발해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계획 그룹’ 아시아판 구상과 관련한 질문에는 “나토 이상의 강력한 대응이 준비돼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한·미·일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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