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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오직 이재명 지키기, 민주당은 그게 전부인가

등록 2023-03-26 07:30수정 2023-03-26 15:29

[한겨레S] 성한용 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7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기소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법적 책임은 재판으로 가려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책임은 검찰의 추가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도중에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 “총선에서 지면 내 정치도 끝난다. 승리를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한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고 지도부를 새로 꾸리기만 하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정치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민주당의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아닙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퇴 여부에 모두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진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대선 이전부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짚어가며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둑으로 치면 세밀한 복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권자 연령대에 따라 투표 성향이 확연히 엇갈리는 현상을 세대투표라고 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세대투표가 처음 나타난 것은 노무현·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2002년이었습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은 노무현 후보를 많이 찍었습니다. 50대와 60대 유권자들은 이회창 후보를 많이 찍었습니다. 40대 유권자들은 두 후보를 비슷하게 찍었습니다.

20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20대는 40대가 됐습니다. 당시 30대는 50대가 됐습니다. 지난해 3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40대와 50대는 이재명 후보를 훨씬 많이 찍었습니다. 그러나 30대는 윤석열 후보를 조금 더 많이 찍었습니다. 20대는 이재명 후보를 조금 더 많이 찍었지만, 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젊은 세대 확보 싸움에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에 밀렸고, 그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입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외면하는 조짐은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오세훈 후보와 박영선 후보가 맞붙은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 결과 박영선 후보는 40대에서만 이겼고, 모든 연령층에서 패배했습니다. 박형준 후보와 김영춘 후보가 겨룬 부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은 왜 민주당을 외면했을까요? 2019년 조국 사태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조국 사태는 20대와 30대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을 ‘내로남불 기득권 세력’으로 각인시켰습니다. 2030은 분노했습니다. 2020년 4·15 총선에서는 코로나 사태에 파묻혔습니다. 그러나 2021년 엘에이치(LH) 사태를 계기로 다시 터져 나와 민주당에 치명타를 가한 것입니다.

민주당의 약점을 국민의힘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2021년 6월11일 전당대회에서 1985년생 이준석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30 유권자, 특히 남성들의 표심이 국민의힘으로 급속히 쏠렸습니다. 2022년 3·9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와 30대에서 젠더 격차가 뚜렷합니다. 결국 민주당은 ‘세대 전쟁’과 ‘젠더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래서 5년 만에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됐습니다.

여권 지지 이탈층, 민주당 지지 유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 패배 뒤 민주당 안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습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로고침위원회를 만들어 반성문을 썼습니다. 변화한 유권자 지형을 대규모 온라인 조사로 살폈습니다. 2030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외면한 이유를 심층면접으로 분석했습니다.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보고서도 냈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민주당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28일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섰지만, 민주당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맞서 열심히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대선 연장전입니다.

최근 20대와 30대 유권자들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 철회와 국민의힘 이탈이 화제에 오르고 있습니다. 24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 평가는 긍정 34%, 부정 58%였습니다. 연령별로는 18~29살 긍정 24%, 부정 60%, 30대 긍정 23%, 부정 69%입니다. 40대는 긍정 19%, 부정 80%, 50대는 긍정 34%, 부정 61%입니다. 60대와 70대 이상은 긍정이 더 많습니다. 2030 유권자들의 국민의힘 지지율도 함께 하락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34%였는데, 18~29살은 22%, 30대는 25%였습니다. 지난해 대선 2030 표심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조선일보>가 이런 현상을 3월20일치 정치면에 “여 지지율 34%인데 20대는 13%… 당내 위기감 커져”라는 제목으로 소개했습니다. 3월21일치에 사설까지 썼습니다. “청년 지지율 추락 ‘도로 청년 외면 당’된 국민의힘”이라는 제목입니다. 걱정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서 떨어져 나온 2030 유권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24일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8~29살 응답자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22%, 민주당 25%, 정의당 7%, 기타 및 무당층 46%였습니다. 30대는 국민의힘 25%, 민주당 40%, 정의당 4%, 기타 및 무당층 32%였습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실히 기타 및 무당층이 많습니다. 기타 및 무당층이 40대는 29%, 50대는 20%, 60대는 17%, 70대 이상은 11%입니다.

바닥 민심에 밝은 민주당 수도권 국회의원 몇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2030 유권자들이 여당에서 이탈했지만,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고 무당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론조사 수치와 일치하는 분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2030 유권자들의 이탈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엠제트(MZ) 세대의 눈치를 보며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뒤집고, ‘1000원 아침밥’ 사업을 확대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재명 지키기’에 밀려 새 비전 실종

민주당은 2030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을 별로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몰라서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2일 나온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의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보고서는 민주당이 재집권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가치 지향에 따라 6개 유권자 그룹을 구분했습니다. 평등·평화 그룹(37.7%), 자유·능력주의 그룹(21.5%),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 우선 그룹(6.4%), 개혁 우선 그룹(6.3%)이었습니다. 민주당의 이른바 ‘전통적인’ 지지층은 평등·평화 그룹과 개혁 우선 그룹입니다.

위원회는 민주당이 지지층에 전통적 진보 가치뿐 아니라 환경, 혁신성장 같은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고, 특정한 정치개혁 이슈에 대한 과격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국민의힘 지지층인 능력주의 보수 그룹과 가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이를 통해 친환경·신성장 그룹과 반권위·포퓰리즘 그룹, 민생 우선 그룹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이러한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위원회의 제안대로 가치와 정책을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건의가 몇차례 있었지만, 이재명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검찰의 공세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다른 전선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고 합니다. 이재명 대표를 지키느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새로고침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온라인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 제고를 위해 시급한 과제를 물었더니 ‘윤석열 정부 견제’는 8순위에 불과했다”며 “민주당 자신의 신뢰를 높이지 못하면 지지도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지층 확장 위한 의제 제시해야”

새로고침위원회를 만들었던 우상호 전 비대위원장에게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재명 대표 거취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다. 검찰 수사는 그것대로 강하게 대응하면 된다.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고 지지층을 확장하려면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당 지도부의 관심과 역량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저는 우상호 전 위원장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결국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작위가 아니라 작위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사이익에 안주하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다음날인 3월9일치 <경향신문>에 ‘이제 시선은 민주당의 혁신으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성찰과 혁신, 가치와 신뢰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민주당의 역동성이 살아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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