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 1월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 출범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진표 국회의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회가 오는 27일부터 2주 동안 19년 만에 전원위원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국회 재적의원(299명) 전원이 회의를 열고 내년 4월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도에 대해 난상 토론을 벌이는 겁니다. 국회는 19년 전인 2004년 12월 ‘국군부대의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을 의결하기 위해 전원위를 소집한 적이 있습니다.
19년 만에 이례적으로 전원위가 소집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시민사회 안팎에서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거대 양당 중심의 극단적 대결 정치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2020년 있었던 21대 총선이 위성정당 사태로 얼룩지면서 표심이 의석수로 반영되는 비율을 일컫는 표의 비례성이 최악 수준을 나타냈습니다. 정당 지지율과 의석 배분이 비례하는지 확인하는 갤러거 지수(0에서 멀어질수록 비례성이 낮아짐)를 보면, 21대 총선은 지역구 선거에서 12.02, 비례대표 선거에서 6.72를 기록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20대 총선(지역구 6.58, 비례 5.61)보다 비례성이 악화한 겁니다. 이후 대결 정치가 팽배하면서 정치 비호감도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국회에는 지난해 9월부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구성돼 있습니다. 이 모임에는 2월 말 현재 재적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143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회에는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공식 기구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도 구성되어 있는데요. 정개특위는 지난 2월 초 워크숍 이후 △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에 두고 선거제도 개편안 도출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위 득표자가 전체 유권자의 20~30% 표만 가져가도 의석을 가져가는 현행 소선거구제에선 나머지 표들이 사표가 되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의 비중을 높여서 사표를 최소화하면 비례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먼저 간략히 제도를 설명해볼까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제도입니다. ‘준’연동형이란 비례대표 의석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 배분한다는 얘기입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서 중선거구제의 경우 2~4명, 대선거구제의 경우 5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이고요. 도농복합이란, 도시 지역과 비도시 지역을 나눠서 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 다른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그 권역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입니다.
<한겨레>가 복수의 정개특위 위원을 취재한 결과, 현재 여야는 정개특위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해보자는 논의 정도만 뜻을 모은 상태입니다. 문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비례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용되려면, 현행 비례대표 의석수(47석, 전체 의석의 15.7%)보다 의석수가 대폭 늘어나야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현행 비례대표 의석수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수도권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므로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권역에 할당되는 의석수가 매우 작아집니다. 비단 지역만이 아닙니다. 계층과 직능, 연령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표성도 약화합니다. 이 때문에 김진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의장 자문위)는 지난달 22일 선거제도 개편안을 제안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금보다 50석 더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 수를 50명 더 늘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여론입니다. 시민들이 국회를 보는 시선이 고깝지 않은 만큼,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강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16일부터 이틀 동안 광주에 사는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 ±3.1%포인트)한 결과를 <한겨레>가 입수해보니, 현재 국회의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예산 총액을 동결하는 것을 전제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30~50명 늘리는 방안에 대해 공감하는지에 관해 묻자 ‘비공감’이라고 답한 이가 47.9%에 달했습니다. ‘공감’이라고 답한 이는 38.8%였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박준 사회조사센터 소장이 한국리서치를 통해 지난해 12월21일부터 올해 1월15일까지 전국 성인 1001명을 대면면접조사(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 ±3.1%포인트)한 결과에서도, 시민들은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정치’를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로 꼽으면서도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행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31.1%)을 가장 많이 제시했습니다. 심지어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전원 지역구로 뽑자는 의견도 27.1%나 됐습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금보다 조금 더 늘리자는 의견은 9.8%에 불과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우선 국회의원들의 낮은 신뢰도가 이유일 겁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특권층으로 꼽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과정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2.8%는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시민들의 문제 의식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첫째, 아이러니하게도 국회의원 의석수가 늘어나야 그만큼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의대 정원 사례를 단순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최근 농산어촌에서의 의사 인력난 등의 문제 때문에 의대 정원, 즉 의사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환자를 치료할 임상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천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4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습니다. OECD 평균은 3.7명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2022년 기준 한국의 의원 1인당 인구수는 17만248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6개 국가 가운데 4번째로 많습니다. 전체 평균은 의원 1인당 10만5294명입니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늘어나야 더 많은 시민들이 더 쉽게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의원 1인당 인구수가 더 적어져야 의원과 시민들의 접점이 더 커질 수 있고, 전체 의원 수가 늘어야 의원들이 가진 특권도 분산될 수 있습니다. 정의당의 한 의원은 “의사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협회만 보더라도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이 특권 확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국민의힘의 청년 정치인인 곽관용 남양주을 당협위원장도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게 세비를 낭비하는 게 아니라 의원 개개인이 가진 특권을 축소하는 것이라는 걸 홍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비례대표 공천 제도를 시민에게 개방하거나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선거제도 개편에 포함하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시민 다수가 비례대표 후보 공천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동안 정당에서 비례대표를 공천할 때 당 대표가 톱다운(하향식)으로 권력 추종자들을 줄 세워놓고 공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민들이 투표를 할 때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명단을 보고 직접 이들에게 투표할 수 있는 개방형 정당명부제를 비례대표제에 일부 혹은 전부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일부 도입하고 있는 덴마크나 스웨덴의 경우 앞서 말씀드린 갤러거 지수가 각각 1.39, 1.75에 불과합니다.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리고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는 이번 달과 다음 달은 ‘친윤’ vs ‘비윤’, ‘친명’ vs ‘비명’으로 나뉘어 누가 충성 경쟁을 잘해서 내년 총선 때 공천을 잘 받을 수 있느냐에만 매몰돼 있는 극단적 양극화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기회가 될 겁니다. 시민들 모두가 국회의원들이 다양한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는 선거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는 두 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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