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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인터뷰] 책방 여는 문재인 전 대통령 3시간 ‘종이책 예찬’

등록 2023-01-15 20:33수정 2023-01-16 17:10

[문재인 전 대통령 인터뷰 ③]
“책의 힘을 믿습니다, 책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습니다
모바일이 대신할 수 없는 종이책의 고유한 기능을 믿습니다”
평산마을 사저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보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평산마을 사저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보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47년째 출판 외길을 걸어온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지난 연말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오로지 ‘책’을 주제로 한 3시간의 인터뷰를 3회로 나눠 싣는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임기를 마치고 귀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참여정부 마치고도 부산으로 돌아왔지요. 부산 출신 장관들도 참 많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역 간의 불균형,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의 피폐는 결국 사람과 돈의 문제지요. 지방의 인재들이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고향을 위해 활동해주면 좋을 텐데 서울에 계속 눌러앉아요. 고위공직자들이 퇴임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것만으로도 지역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운동과 연계해서 활동하거나 지역의 일들을 후원하고 참여하면 좋겠지만, 단순히 돌아오기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했으니, 서울에 있었다면 로펌의 고문이나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저는 당연히 부산이나 경남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퇴임하고도 고향인 부산·경남으로 돌아오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대학교수나 지식인들도 정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봉사하면 참 좋겠지요. 조선시대에도 중앙에서 벼슬을 하던 선비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학문을 하거나 제자들을 키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양산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저희 부모님 묘소가 양산에 있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 양산의 매곡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거기서 지역 생활을 시작했고, 퇴임 후 다시 양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고향으로 돌아가셨지요.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지역 균형발전은 국정의 큰 과제지요. 개인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김언호 한길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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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한쪽에 농산물 코너도!

―저는 1980년대에 독자들과 저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기행을 50여회 진행했습니다. 강의와 토론을 통해 민족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숙박을 서원이나 사찰에서 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서원이나 사찰은 교육공간, 수련공간이었지요. 학문과 사상을 함께 펼칠 수 있는 유토피아가 곳곳에 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평산마을도 아름답습니다. 이 마을에 책방을 준비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퇴임 대통령이 고향 마을에 책방을 구상하시다니, 세계인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저에겐 한국사회에 새로운 정신을 일깨우는 경이로운 일대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지방에도 의미 있는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평산마을에 작은 책방을 열어 여러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서점운동이 일어나고 있지요. 충북 괴산과 전남 곡성, 제주도의 올레길에 서점들이 문 열어 지역의 이런저런 문화운동과 연대하고도 있지요. 지역 서점끼리 연대하여 책 읽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강좌도 하고 저자와의 대화도 하고요.”

―지금 준비하시는 책방은 재임 시절에 구상하셨습니까?

“미리 구상한 것은 아닙니다. 이 마을의 작은 주택을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오픈하려고 합니다. 아직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조용하게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아직까지는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제가 이 평산마을에 도움을 줄 만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평산마을은 보시다시피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인데, 제가 여기로 사저를 정하면서 시위로 인한 소음에 욕설과 저주하는 언어들이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뒤덮어버렸습니다. 주민들이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고 있습니다. 너무 시끄러워 농사일도 못 하겠다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식당이나 카페, 가게를 하는 분들이 피해를 입는 걸 보면서, 제가 도움을 드릴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마을책방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평산마을을 비롯해서 인근 마을주민들이 언제든지 책방에 와서 책 읽고, 차도 마시고, 또 소통하는 사랑방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책도 구입하고 이웃의 공간들과 연계하는 작은 사업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지역의 카페와 식당도 이용하게 될 것이고요. 한편으로 이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코너를 둔다면 마을주민들의 소득에도 다소 도움이 될 테고요. 그런 마음으로 구상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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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연대하는 여러 프로그램들

―정말 유쾌한 발상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겠습니다. 우선 ‘작은 책방’이어서 좋습니다. 저는 1980년대에 인도 출신 경제학자 슈마허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책 제목도 좋아하고 그 내용도 좋아합니다만, 평산마을 책방은 작지만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의 힘을 믿습니다. 책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모바일에 집중하면서 책과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책의 가치, 책의 힘은 영원할 것입니다. 모바일이 대신할 수 없는 종이책의 고유한 기능을 믿습니다.”

―중국의 난징에 셴펑(先鋒)서점이 있습니다. 군용 지하 벙커에 들어선 서점인데, 난징의 문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 서점을 창립해 이끌고 있는 서점인 첸샤오화(錢小華)는 2018년 6월 저장성(浙江省) 쑹양현(松陽縣) 천자푸촌(陳家鋪村)에 셴펑서점의 지점 ‘평민서국’을 열었습니다. 해발 900m에 자리 잡고 있는 600년 고촌의 마을회관을 책방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중국 전역에서 찾아옵니다. 평민서국이 들어서면서 천자푸촌은 문화예술마을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준비하시는 책방이 평민서국처럼 되겠다 싶습니다.

“책방을 하게 되면, 지역의 여러분들과 손잡고 펼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구상해보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펼치는 학생들의 책 동아리와 연계되는 프로그램도 할 수 있겠지요. 바로 옆에 통도사가 있지 않습니까. 본사도 아름답지만 열일곱개의 암자도 아름답습니다. 통도사와 연계해서 불교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우리 역사와 전통을 읽고 공부하는 프로그램도 기획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마을엔 전통 가마를 사용하는 도자기 장인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도자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조계종의 종정이시고 대단한 미술가이신 성파 스님도 계시지요. 이 지역과 자연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활용하면 책방을 넘어서서 문화 예술적인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으로 연대하는 북클럽을 통해 책 읽기 운동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인들이나 작가, 지식인들과 함께해서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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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책방을 넘어서는 희망의 아지트

―각 분야의 책 전문가들이나 인문·예술·과학자들이 좋은 책 선정을 도와줄 수 있겠지요. 책방 이름을 정하셨습니까?

“‘평산마을책방’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책방으로 하고 싶습니다.”

―파주 출판도시에서 진행되는 책과 지식의 축제 파주북소리를 기획하면서 저는 책과 농산물 축제를 함께 해보자는 구상을 했습니다. 몸의 양식이 농산물이고 마음의 양식이 책이니까 같이 해봄 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산마을책방 구상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는 경험도 한 번 해보았습니다. 이 마을에 대파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은데, 시위 때문에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파는 수확 후 곧바로 판매해야 하는 농산물인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온라인으로 구매하자는 글을 올려주셨어요. 그러고 나서 이곳에 오시는 관광객들이 대파를 구매해주어 대파 농사하는 분들에게 제법 큰 도움이 되었지요.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마을의 농산품을 판매하는 코너를 두어, 소비자와 농민들 사이에 말하자면 직거래를 매개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세계서점기행>을 쓰면서 세계의 명문 서점들을 취재했는데, 그 명문 서점들은 한결같이 어떤 책을 들여놓느냐, ‘선서’(選書)를 가장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베이징의 명문 서점 완성서원(萬聖書園)의 창립자 류수리(劉蘇利)는 좋은 책을 들여놓기 위해 티베트까지 직접 갔다고 했습니다. 뉴욕의 젊은 서점 맥널리 잭슨의 대표 사라 맥널리도 어떤 책을 들여놓느냐가 자기 책방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콘셉트를 만들고, 이 콘셉트에 공감하는 분들이 우리 책방에 와서 책을 구매해가는 그런 책방으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방이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을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저자와 독자가 만나고 대화하는 책방, 책 읽는 친구들이 방문하고 토론하는 책방이 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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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들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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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과 ‘영남알프스’에서 책을 토론

―온라인을 통한 책 소개, 행사 안내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올해에 읽을 만한 문학작품들, 인문책들, 과학책들의 목록들과 해설들을 에스엔에스를 통해 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연구자들과의 대화뿐 아니라 때로는 출판인들이나 편집자들의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요. 이곳을 방문하는 독자들은 통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축산을 오르면 밀양의 표충사, 청도의 운문사로 연결되는 ‘영남알프스’가 정말 아름답지요. ‘영남알프스’를 가끔 등반하신다는데, 저는 평산마을책방을 방문하는 독자들과 저 장대한 ‘영남알프스’의 억새밭에서 책을 토론하는 풍경을 생각해봅니다.

“저는 책방의 운영자로 어떻게 하면 독자 친구들을 책으로 초대하느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출판도 그렇겠지만, 책방도 여럿이 손잡고 같이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지역의 서점들과 제휴하는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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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책방 일 직접 해야지요”

―책방을 연다는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예술정신을 함께 구현하는 신나는 일입니다. 언제쯤 문이 열릴까요?

“2월이나 3월에 문 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책방을 열면 저도 책방 일을 하고, 책을 권하고 같이 책 읽기도 하려 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책방의 일상 모습을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문재인 전 대통령. 한길사 제공

내 고향이 밀양인데, 나도 한때 밀양의 얼음골 계곡에 책방을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답사도 했지만 결국 북한 땅이 건너다보이는 통일동산에 동호인들과 함께 예술마을 헤이리를 만들고 북하우스를 지어 책방과 책박물관을 개관했다.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지인들이 걱정했다. 이 변방 산속에 책방이 되겠냐고. 그러나 나는 된다고 생각했다. 2004년 새로운 책방의 형식으로 북하우스가 문 열자 수많은 독자들이 방문했다. ‘책은 친구들을 모아내는 힘이 있다’(以文會友)고 공자도 말하지 않았나.

문 전 대통령의 독서정신과 인문정신, 책에 대한 사랑이 평산마을책방을 구상하게 했고, ‘평산마을책방’은 우리 시대의 빛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촛불과 함께 책을 드는 일이 우리 국가사회를 더 도덕적이고 더 정의로운 민주사회로 구현해내는 역량일 것이다. “책방 개관하는 날 출판계 동료들과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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