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노조(노동조합)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집권 2년차를 맞이하는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넘어서 노조를 향한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하자 노동계는 ‘단결권을 침해하는 무단통치 시도’라며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및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노동개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공직·기업 부패를 거론하며 “노조 간 관계에서도 노조의 부패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많은 국민의 관심이 돼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 기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노조 활동도 투명한 회계 위에서만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였던 것처럼 ‘노조 부패’에도 칼을 빼들겠다는 얘기다.
지난 1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노조 재정운영의 투명성”을 언급하고, 전날 국민의힘이 이른바 ‘노조 깜깜이회계 방지법’을 발의한 데 이어 윤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조 부패 척결’과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가 회계 문제를 고리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향한 대대적 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그동안 민주노총 등을 ‘노동개혁의 걸림돌’이라며 적대시해왔다.
윤 대통령이 ‘노조 부패 척결’을 내세운 배경에는 화물연대 총파업 사태에서 보인 ‘원칙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부패 척결’을 노조 문제에도 적용해 여론의 호응을 더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노조 부패 척결’은 애초 준비된 원고에 없던 내용이라고 한다. “조직화하지 못한 노동자를 억압하는 귀족노조를 ‘노사 법치주의’를 통해 단호히 걷어내겠다”는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에 발목 잡는 부패 행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라며 “부처 차원에서, 노조에서 자율적으로 응해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선 국고 지원 부분에 대한 정부의 감사나 고발을 통한 수사기관의 수사가 예상된다.
노동계는 윤 대통령의 ‘노조 부패 척결’ 방침이 ‘이른바 노동개혁을 위한 노조 무력화’라고 반발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조 회계에 부정이 있다면 형사처벌의 영역이며 노조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며 “(노동)개악에 최대 걸림돌인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견줄 만큼 노조 부패가 크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검사권력의 칼을 쥐고 무단통치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노조 단결권 침해”라며 비판했다. 정영훈 부경대 교수(노동법)는 “노조 재정의 투명한 공개는 조합원에게 하는 것이지 정부에 할 것은 아니고, 회계준칙 역시 노조 스스로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며 “노조를 ‘비리집단’으로 규정하고 간섭하려는 것은 정당한 노조 활동의 위축과 단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도 “일련의 과정이 기획적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 폭력적인 탄압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언론을 통한 ‘귀족’, ‘부패’ 프레임 씌우기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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