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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윤 대통령님,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랑과 온유’입니다

등록 2022-12-11 07:00수정 2022-12-11 23:24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58
대통령과 종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독교계 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독교계 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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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나라입니다. 헌법 20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종교와 정치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큰 교회 목사님, 큰 사찰의 스님, 성당의 신부님들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데 종교와 종교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선거 전 후보 시절과 대통령이 된 뒤에 종교계 인사들을 여러차례 만났습니다. 취임 직후인 5월28일 7대 종단 종교 지도자들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했습니다. 7대 종단은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민족종교협의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29 이태원 참사 뒤 11월4일부터 조계사 위령 법회, 백석대 서울캠퍼스 위로 예배, 명동성당 추모 미사에 잇따라 참석해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대선 이후 당선자 때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를 만나고 명동성당 내 무료급식소인 명동 밥집에서 배식 봉사를 한 일도 있습니다.

“장래희망 목사”였는데 ‘무속’ 논란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자주 만나는 종교인은 아마도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님들일 것입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15일 윤석열 후보가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오정호 대전 새로남교회 담임목사 등이 윤석열 후보의 팔을 붙잡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대통령 후보로서 모든 만남에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한국 교회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도록,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하도록, 국민의 마음을 얻게 하도록 솔로몬의 지혜로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진 것일까요? 윤석열 후보는 경선에서 이기고 대선에서 이겨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지난해 9월15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맨 왼쪽) 등이 기도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유튜브 갈무리
지난해 9월15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빈소를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맨 왼쪽) 등이 기도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유튜브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올해 3월25일 방한 중인 마이크 펜스 미국 전 부통령을 김장환 목사 등과 함께 만났습니다. 7월22일에는 김장환, 김삼환, 이영훈 목사와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11월8일 대통령실에서 김장환, 김삼환, 장종현, 김태영, 양병희 등 개신교 원로들과 오찬을 함께 했습니다. 11월 중순에는 개신교 원로 6명을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개신교 지도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어린 시절 신앙 체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은 목사님이었습니다. 대선후보 시절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렇게 밝힌 일이 있습니다. “제가 보문동에서 살았는데 종로2가 와이엠시에이 어린이 센터라는 기독교적인 유치원을 다녔다. 국민학교는 영락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광국민학교를 다녔다. 유치원과 국민학교 시절은 기독교의 영향하에서 푹 빠져서 지냈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연극 행사도 준비했고 여름엔 성경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국민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목사였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개신교 문화에 익숙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꽤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무속 논란에서 탈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 때 손바닥에 한자로 임금 왕 자를 쓰고 나왔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천공을 아느냐고 묻자 “천공은 제가 뵌 적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중요한 결정에 무속인들이 개입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천공이 대통령 관저 물색 과정에 개입했다고 김종대 전 의원이 폭로했다가 대통령실이 김종대 전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를 경찰에 고발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무속 논란 자체가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무척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 거물 지도자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인 지난 2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왼쪽)와 김건희 여사가 만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대통령 선거 기간인 지난 2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왼쪽)와 김건희 여사가 만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셋째,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관과 개신교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가치관이 일치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사단법인이 있습니다. 1968년부터 시작된 연례 국가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단체입니다. 지금까지 탄핵 정국을 제외하고는 매년 현직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단체요, 대단한 행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에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대통령실에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기도회 참석자들은 코로나 종식, 이태원 참사, 경제와 안보 위기,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대한민국에 진정한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주실 것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적인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우리 모두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더 큰 결실을 맺고 따뜻한 온기가 나라 구석구석 스며들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유와 연대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자를 보듬는 길이고, 복합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면 어떠한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겠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에 발을 디뎠을 때의 그 다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지켜나가겠다는 소명을 이 자리에 서서 다시 한번 새기고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저는 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이 소명을 받드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예수님 가르침?

저는 이 발언을 보고 약간 놀랐습니다. 우선 ‘자유와 연대’ ‘법과 원칙’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리 봐도 기도회에 어울리는 말들이 아닙니다. 자유와 연대, 법과 원칙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약자를 보듬는 길이고 복합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길이라는 것인지, 자유민주주의가 왜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진정한’이라는 수식어가 ‘약자’에 걸리는 것인지 ‘길’에 걸리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약자에 걸리면 ‘진정한 약자’가 따로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길에 걸리면 자유와 연대, 법과 원칙이 약자를 보듬는 ‘진정한 길’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어느 쪽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화물연대 파업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이라는 단어도 ‘약자’에 걸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머릿속에는 ‘화물연대나 민주노총 같은 가짜 약자가 아닌 진정한 약자’가 따로 있다는 얘깁니다.

12월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기도하고 있다. 국가조찬기도회 누리집
12월5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54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기도하고 있다. 국가조찬기도회 누리집

사실 이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대개 보수 기득권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종교가 정치에 공공연하게 개입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들과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보수 기득권이라는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이익 공동체입니다. 반북한, 반동성애, 반이슬람이라는 ‘혐오의 가치관’이 그들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극구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반북한, 반동성애, 반이슬람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보수 기득권 후보 지지도 계속될 것입니다.

성경 따라 ‘사랑’으로 국가 이끌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1948년 5·10 총선으로 국회가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5월31일 열린 첫번째 본회의에서 이승만 임시의장의 요청으로 이윤영 의원이 기도를 했습니다. 이윤영 의원은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여진 이 민족이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심원하야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의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데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야 주시옵소서.”

이윤영 의원의 기도가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지 74년 지났습니다. 이윤영 의원의 기도는 이루어졌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펜젤러 목사가 세운 배재고를 졸업하며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처를 따라 천주교 성당을 기웃거리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래도 이번 성탄절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생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과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랑과 온유함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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