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원 내부에서 ‘실세’로 불리는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에 중점적으로 지휘한 ‘월성원전 사건’(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수사의 전 단계인 감사원 감사를 주도했던 유 총장(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은, 그 공로를 발판 삼아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2022년 6월 사무총장으로 발탁됐다. 국장급에서 차관급으로 두 직급 승진하는 파격 인사였다. 2022년 10월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유병호 사무총장의 거침없는 ‘입’이 관심을 모았다.
“그런 거 못 참는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감사의 절차에 대해 감사위원들이 문제제기한 건 사실 아닌가?”(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제제기라기보다는 악의적인 감사 방해였다.”(유병호 사무총장)
“(감사)원장님도 문제제기라고 앞서 증언했다.”(이탄희 의원)
“그건(원장 증언은) 확인해봐야 한다.”(유병호 사무총장)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위원도, 감사원장도 안중에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탓에 ‘바지 원장’이라고도 불린다. 이날 국감에서 옆자리에 앉은 최 감사원장은 “(유 사무총장이) 감사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유 사무총장의 이런 태도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등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의 불씨가 됐다. 10월5일 국무회의에서 유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기사)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한겨레>가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등 주요 사안을 감사위원회 의결 없이 진행한 것은 위법하며 감사위원들도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한 것에, 감사원의 대응 계획을 대통령실에 설명한 것이다.
하루 전날인 10월4일 감사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점이었다. 감사원이 평소 대통령실과 긴밀히 소통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불이 붙었다.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전에도 대통령실과 소통한 적 있냐” 등을 질의했지만, 유 사무총장은 “답변하지 않겠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버텼다. 그러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와 관련해서는 “상시 감찰 사안으로 감사위원회 의결을 안 받아도 된다. 악의적으로 내부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굴러다녀서, 감사원의 규정·역사·관행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식한 소리라고 얘기했다”고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한 감사위원들을 반박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의 ‘말’이 논란이 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새벽 4시에 <연합뉴스TV>에서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한 게 아니라고 황당한 소리를 해서 오전 8시에 간부회의를 소집해 감사원장에게 건의해 감사에 착수했다. 그런 거 못 참는다.” 10월11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유 사무총장의 답변이다. 권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6월17일 오전 9시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더 (진상 규명이) 진행될 것”이라고 발언한 뒤 4시간 만에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대통령실과의 사전 교감을 강하게 부인하다가, 사무총장 개인적 감정 때문에 감사에 착수했다는 엉뚱한 답변을 한 것이다.
대통령 감싸려고 ‘개인적 감정으로 착수’ 발언?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새벽에 일어나서 TV 보다가 분노해서 감사했다? 전직 대통령을 염두에 둔 감사를 사무총장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서 서해 사건에 계속 ‘문제 있다’고 한 상황이었고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정치 참여 선언 한 달 뒤 윤 대통령은 서해 피살 공무원의 가족을 만나 “권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 가족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자격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감사원 감사 착수에 앞서 윤석열 정부는 수차례 ‘서해 사건’ 재조사를 예고했다.
이 밖에도 유 사무총장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만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간 부서지고 무너지고 해체된 공직 질서를 재건하겠다.” 유 사무총장이 7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다. 사무총장에 임명된 지 20여 일 만의 인터뷰였다. ‘그간’은 “전 정권(문재인 정권) 5년”을 뜻했다. 그는 “무너진 수준이 아니다. 인체로 치면 주요 뼈대하고 장기가 죄다 망가진 수준”이라고도 말했다. 감사 대상인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유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자신의 인사에 대한 불만도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그는 2019년 12월 심의실장으로 발령 난 것에 대해 “지금까지 숱한 비리를 조사하며 수없이 권력과 맞섰다. 정말 좌천시킨 건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건드려서 심의실장으로 보내진 건 확실히 좌천 맞다”고 말했다. 그가 ‘건드렸다’고 언급한 사건은 2019년 감사에서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문제와 관련해 박원순 전 시장에게 ‘주의’ 처분을 내린 일이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은 감사 결과로만 말해야 한다. 이 인터뷰 때문에 (감사원의) 중립성이 의심받게 된 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10월18일 보도참고자료를 내어 “정당한 감사를 ‘정치감사’ 등으로 매도하며 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폄훼하는 주장에 대해 감사원 감사는 ‘정치감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10월14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점검 수사요청’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직권남용·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안보실, 국방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해양경찰청 관계자 20명의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 감사원은 보도자료에서 문 전 대통령이 사건 발생 초기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하는 등 관여했다는 점을 수차례 적시했다.
2022년 8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을지 국무회의’에 참석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오른쪽)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가운데), 이진복 정무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자진 월북’으로 발표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조직적 은폐인지는 더 확인해봐야 한다”면서도 “이런 사안일수록 (감사원이) 중립적으로 절차를 잘 갖춰야 하는데 오해의 소지를 준 건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 감사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상시 감찰 사안이라 감사위원회 의견을 안 받아도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감사를) 했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하는 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고 잘못을 답습하겠다는 얘기밖에 더 되느냐”고 말했다.
이재근 협동사무처장도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전 정권 문제에 대해 감사원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4대강 사업 감사같이 감사원이 정권 입맛에 맞는 감사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감사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서, 좋게 말하면 적폐청산, 나쁘게 말하면 정치보복의 핵심적 역할을 맡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유병호 사무총장의 발언 논란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의 독특한 업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요즈음 자기가 일 많이 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모 생명체가 있던데, 공개 검증해 내 실적의 100분의 1 정도만 되면 내가 그 생명체를 곧바로 프로 감사인으로 모시겠다.” 2021년 11월 유병호 사무총장이 공공기관감사국장이던 시절에 감사원 직원들에게 보낸 ‘주요 공감 및 논의 사항’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적힌 내용이다. 그는 이 문서를 ‘직원 교육용 자료’라고 일컬으면서 ‘공개 검증’을 위한 판단 기준도 제시했다. “1.(감사)원을 큰 위기에서 구한 실적 2.고래급 이상 사냥 실적 3.고난이도 글로벌 감사 실적 4.장관급, 현역의원급, 광역단체장 이상 조사 실적…” 감사를 ‘사냥’으로 표현하고, 감사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직급을 송사리·피라미·고래·상어에 빗대어 분류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자신의 업무 능력과 성과를 자랑했다. “과장·국장 때까지 대한민국에 기여한 큰 감사를 많이 한 실적으로 (신문기사를 제외하더라도) 관련 동영상만 수십 편에 달한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 마을사람(삼청동에 있는 감사원을 ‘삼청마을’이라고 표현하므로 마을사람은 감사원 사람들을 말함)의 경우 고래사냥으로 언론에 보도된 건이 1건도 없다” “(나는) 감사원의 일선 최고급 고수, 고래잡이의 95% 이상을 직접 또는 동지가 돼 훈련 양성했다” “2008년 쌀 직불금 국정조사 대응·해결 등 여섯 번이나 직을 걸고 망가진 조직을 구해놓았다” 등등.
한 현직 검사는 “검찰에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알 것 같다. 모든 게 자기중심이고 자기 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같다. 본인이 지금 뭔가 기회를 잡았고 승부수를 던질 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악인을 상정하고 수사 내용을 공개하거나 영장을 청구하면서 사람들에게 악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각인시키고, 자신들은 영웅이 되는 건 전형적인 검찰 방식이다. 계속 그래왔다. ‘이전 정부’를 악인으로 만들고 싶은 ‘지금 정부’와, 영웅이 되고 싶은 검찰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왔는데, 요즘은 감사원까지 비슷해진 것 같다”고 해석했다.
자칭 ‘고래사냥’ 전문인 유병호 사무총장을 돌격대장 삼아, 대대적인 전 정권 감사에 나선 감사원에 대해 한 전직 감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감사의)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감사당하는 입장에서 정치감사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유 사무총장은) 인수위에서 활동하다가 감사원으로 돌아와서 대통령실 의중이 담긴 감사를 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더 조심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 색깔을 더 드러내는 것 같네요. (감사)원이 이렇게까지 되는 걸 보니 안타까워요.”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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