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왼쪽 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2022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26일 이준석 전 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법원의 결정에 ‘핵폭탄’을 맞은 분위기였다. 정기국회 시작(9월1일)을 앞두고 진행한 1박2일 의원 연찬회에서 당·정부·대통령실 “원 팀”을 다짐한 직후 날아든 법원 결정에, 국민의힘은 당혹감 속에 당 지도부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책임론, 재판부에 대한 분노 등으로 들끓었다.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준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결정은 국민의힘이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전날부터 열린 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행 버스에 오른 오전 11시50분께 나왔다. 전날 저녁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연찬회에 참석해 식사를 함께하며 “파이팅”을 외친 터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법원 결정 소식 직후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중요한 개혁 조치를 해야 하는 시기에, 동력이 하나도 없어진 상태가 된다는 점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법정에서 사실상 완패를 당하면서, 당의 비대위 체제 전환을 무리하게 끌고 간 당 지도부와 윤핵관은 ‘자승자박’의 모양새가 됐다. 이 때문에 책임론이 분출했다. 이 전 대표를 강제 해임하는 당헌 개정에 반대했던 하태경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법원이 우리 당의 폭주에 제동을 걸었다”며 “현 위기 상황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거부한 당 지도부는 이 파국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리 당이 비상상황인데 재판장이 ‘비상상황 아니다’라는 판결이 어디 있냐”(주호영 비대위원장), “법원 결정문이 더불어민주당 논평인 줄 알았다”(지도부 관계자)는 등 재판부에 대한 원색적인 불만도 쏟아졌다.
윤핵관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남 출신의 한 초선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준석 전 대표를 6개월 징계하면서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로 가는 것들이 그래도 합리적이었다. 이 전 대표도 수용을 하고 조용히 했잖나”라며 “(비대위 전환으로)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다. ‘핵심에 있는 사람’(윤핵관)은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핵관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억지로 비대위 전환을 밀어붙여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친윤계 안에서도 ‘권성동 거부’ 기류가 감지된다. 한 친윤계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이 상황을 초래했으니까 사퇴해야 한다”며 “다시 원내대표를 뽑고 그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빨리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 윤핵관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법원 결정 이후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는 것에 대해 “의원들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친윤계 의원 쪽도 “가장 큰 책임은 권 원내대표”이며 “내일(27일) 의원총회에서 권 원내대표 불신임 얘기가 나와서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어쨌든 사태 수습은 해야 하니까 당장 불신임해서 해결될 게 없다”고 했다.
책임에선 윤 대통령도 가볍지 않다. 윤 대통령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며 이준석 전 대표를 힐난하는 ‘본심’을 들키며 당 내홍에 불을 질렀고, 법원이 제동을 건 비대위 체제 전환도 ‘윤심’을 등에 업은 윤핵관들의 작품이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이 사달을 만든 게 사실은 윤핵관들과 그 뒤에서 이를 조장한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상황을 정리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 방문 중에 법원 결정 소식을 접했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여러분의 아주 열정적인 지지로 제가 이 위치에 왔으니, 좀 미흡한 점이 많더라도 도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구가 지역구인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서문시장에서 윤 대통령을 수행하기로 했지만, 주 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쪽은 “법원 결정에 대해 대통령실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론 당황한 기색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인용한 법원 판단이 우리에겐 비상상황”이라고 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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