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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휴가와 외교 사이, ‘미국 가까이’ 외쳤던 윤 대통령의 ‘통화할 결심’

등록 2022-08-04 19:04수정 2022-08-05 02:43

“휴가 때문” 공식입장…미-중 갈등에 ‘신중 노선’ 해석
대만·일본 정상과 다른 행보…여당내 “소홀” 불만도
대통령실 내부도 의견 갈렸지만 “최소한 성의 접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전화 통화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전화 통화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남 대신 전화 통화를 했다. 비록 휴가 중이긴 하지만 미국에 더욱 밀착하고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 외교노선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이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지 않은 것은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강행으로 극도로 악화한 미-중 갈등을 의식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휴가 중인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펠로시 의장과 40분 동안 통화했다. 윤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거듭 강조하며 한-미 동맹 노선이 변함없다고 밝혔다고 국가안보실이 전했다.

그러나 서울에 머물던 윤 대통령이 직접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은 펠로시 의장이 방문한 다른 아시아 국가 정상들과 다른 행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 3일 펠로시 의장과 직접 회담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5일 아침을 함께한다.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셰이크 나세르 쿠웨이트 총리를 면담하기 위해 휴가 일정을 단축한 전례도 회자됐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들이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여름휴가 일정(8월1~5일)이 먼저 잡혀 있었고, 이에 따라 한·미 두 나라의 이해와 협의 아래 펠로시 의장의 맞상대인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직접 만남만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펠로시 의장의 방한 일정 관련 협의를 할 때, 윤 대통령은 지방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펠로시 의장 쪽도 흔쾌히 양해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미 2주 전에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안 만나기로 양국 양해가 이뤄졌고,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1주 전에 결정됐다”며 “우리랑 안 만난 거는 중국을 의식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면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3일 대통령실이 확정적으로 공개한 직후, 논란이 일었다. 더구나 3일 저녁 윤 대통령 부부가 연극 관람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유승민 전 의원은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하태경 의원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라 외교적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대만 방문과 한국 방문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4일 오전 10시30분께에야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통화 일정을 발표했다. 비판을 의식해 급하게 통화 일정을 잡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갑자기 만들어진 일정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오늘 아침 일찍 (통화 의사를) 타진했고, 펠로시 의장이 흔쾌히 감사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이 직접 회동 대신 통화를 선택한 것이 한-중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과 ‘잠깐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는 미국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선에서 접점을 찾은 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에 한국의 가입을 요구하는 가운데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영범 홍보수석은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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