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의 질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다녀온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컷들이 어색함과 작위성 때문에 빈축을 사고 있다. 윤 대통령 주변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미지 연출을 총괄했던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현대 정치에서 지도자의 이미지 연출은 통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인가.(제1421호)
“파시즘은 대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권리를 찾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의사를 표시하게 함으로써 구원책을 찾고자 한다.”(발터 베냐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정치의 본령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반면에 미학(예술)은 현실 세계를 재현(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정치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통치자는 정치를 미학으로 대체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인민의 압도적 지지 위에 탄생한 정권이라도 일정 기간 안에 신뢰할 만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쥐었던 권력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후보자가 경쟁적 선거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단순하다. 경쟁집단의 무능을 공격하면서 공동체의 당면 과제를 해결할 적임자가 자신임을 구성원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집권 뒤 맞닥뜨릴 현실은 다루기가 만만찮다. 정치가 감당해야 할 영역이 넓고 복잡해진 탓에 국가권력의 제한된 통치 수단으로 해결 못할 난제가 여기저기 생겨난다. 모든 것의 해결을 공언했으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 인민이 견뎌야 할 불만의 시간이 한계치에 이르면 통치의 정당성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위기를 회피하려는 통치자가 취할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30~40%의 지지층이라도 확실히 붙들고 가는 것인데 여기엔 농도 짙은 감동, 뭉클한 공감, 지도자와의 순연한 일체감이 빈번하게 요구된다. 메시지와 의전, 퍼포먼스의 비중이 커지고 정치는 건조한 통치술을 넘어 미학화한다. 정치가 자신의 결점과 공백을 ‘감각적 대체물’로 메우려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의 미학화’는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 히틀러 시대의 파시스트 정치미학을 분석하며 개념화한 테제다. 베냐민에게 그것은 자본주의국가의 일반적 경향이자, 진정한 변화를 가로막는 ‘기만적 통치술’에 가깝다. 대중의 불만을 야기하는 사회의 근본 모순을 건드리지 않고, 최신의 기술적 표현 수단을 활용해 대중의 억눌린 욕구를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베냐민은 말한다. “파시즘은 새로이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화한 대중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앞의 글)
이렇듯 ‘정치의 미학화(예술화)’는 ‘정치의 사법화’만큼이나 문제적이다. 정치와 정책을 통한 문제의 ‘실제적 해결’ 대신 이미지와 스펙터클을 동원한 ‘상징적 해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치가 미학과 융합하는 사례는 20세기 파시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 그것의 가장 극단적 사례는 북한이다. 그들의 통치 메커니즘은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1926~2006)가 정식화한 ‘극장국가’ 개념을 통해 적절하게 설명된다.
극장국가는 물리적 강제력보다 화려하고 의례화된 공연을 주기적으로 연출해 권력의 권위와 절대성을 과시하는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이 체제에선 수천~수만의 군중이 동원되는 대규모 스펙터클이 단순한 정치적 선전 수단을 넘어, 목적 그 자체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북한이 주기적으로 펼치는 대규모 열병식과 아리랑 집체공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무기 발사실험 역시 극장국가 북한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이런 극장국가적 속성은 좌우익 전체주의국가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의 정상국가에서도 극장국가는 순화된 형태로나마 출몰을 반복한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예술가들은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포섭과 동원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황은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동의에 기반한 통치’라는 민주정치의 조건을 충족하려면 ‘감각적인 것’의 활용을 통한 지지층의 자발적 동원과 결집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정치에 예술적 장치를 가장 적극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도입했고, 이를 통해 통치 위기를 큰 흔들림 없이 넘어설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미학화된 정치’에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기부터 다져진 민중문화예술운동의 정치 감성(‘진정성의 미학’)과 주류 대중문화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함께 활용됐다. 그 정점에 존재했던 인물이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탁현민(49)이다.
참여연대 문화사업국 간사와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장 등을 지내며 사회운동판의 행사연출 경험을 쌓아가던 탁현민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전국 순회 콘서트와 윤도현밴드·자우림 등 인디신 가수들의 콘서트를 기획·연출하며 재능과 역량을 인정받았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며 친민주당 진영의 대표적인 이벤트 기획·연출자로 자리잡았고, 2017년 문재인의 대선 승리 뒤엔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발탁돼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와 의전의 기획·연출을 총괄했다.
탁현민이 주도한 ‘정치의 미학화’의 대표적 사례는 2021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코로나19 백신 수송·보관 훈련 참관 행사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는데 백신 도입이 지체돼 대중의 불안과 불만이 확산하자, 청와대는 대통령을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보내 백신 도입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을 지켜보게 하고 그 화면을 전국에 송출했다. 유관 기관이 미리 정한 일정과 매뉴얼에 따라 시행하는 훈련을, 경호와 의전에 따른 현장의 부하를 감수하면서까지 대통령이 주인공인 스펙터클을 연출한 것이다. 백신 확보가 부진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는 속내가 다분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을 ‘견디게’ 하는 미학화된 정치의 전형이었다.
탁현민이 얼마나 미학화된 정치에 특화된 인물인지는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연출 정치’를 비판하며 ‘나는 쇼를 안 하겠다’고 했을 때 그가 보인 반응에서 드러난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고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만약 대통령이 되시면 눈여겨보면 될 일이다.”(1월27일 ‘주진우의 라이브’ 인터뷰) 흥미로운 건 문재인 집권 기간에 ‘탁현민식 이벤트’를 집요하게 공격하던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공공연히 ‘보수판 탁현민’의 필요성을 입에 올린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 부국장 이승헌이 7월13일 쓴 칼럼은 이들이 당면한 딜레마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이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도 대통령 메시지와 전체적인 브랜드를 관리하고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문재인 정권의 탁현민 같은 이벤트 전문가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오겠냐마는, 그만큼 윤 대통령이 혼자 연출 각본에 주연배우까지 하며 언제까지 좌충우돌할 수는 없다.”(‘윤(尹) 옆에 탁현민이라도 있어야 하나’)
보수 진영의 이런 표변 뒤엔 좀처럼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통령 국정 지지도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물가 상승에 코로나19 재유행, 뚜렷하게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각종 경제지표 앞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란 기껏 문재인 정부를 ‘신적폐’로 규정하고 사법적 단죄를 도모함으로써 극단적 지지층에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임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실망해 정권교체에 힘을 실었던 중도·관망층의 상당수가 정권 지지를 철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월 초 성상납 증거인멸 의혹으로 국민의힘 당대표직 퇴출 위기에 직면한 이준석이 “제가 역할을 맡으면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 문제를) 20일이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공언한 것도 보수의 이런 위기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가능했다. “윤석열에게도 탁현민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집권세력 내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정치의 미학화는 당장의 궁지를 벗어나게 해주는 비상 사다리는 될지언정 권력이 직면한 정당성 위기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퇴임 직전까지 줄곧 40% 안팎의 지지도를 유지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정당성 위기의 원인(무능)에 대한 근원적 처방과 독단적 통치스타일의 혁신 없이는 윤석열에게 탁현민의 할아버지가 붙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의 미학화와 대척하는 지점에 ‘미학의 정치화’(예술의 정치화)가 있다. 정치의 미학화가 문제 해결이 안 되는 현실을 ‘견디게’ 한다면, 미학의 정치화는 무언가를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하게’ 한다. 발터 베냐민은 이런 ‘정치화된 미학’의 사례로 1·2차 세계대전 사이 새로운 예술로 삶의 내용과 형식을 바꾸려 했던 유럽의 전위 예술운동과 소비에트 혁명예술을 들었다.
미학의 정치화(정치화된 미학)의 핵심은 대중의 익숙한 감성 구조에 균열을 냄으로써 보이지 않던 존재를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기존 권력관계의 지속이 아닌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에 친화적이다. 모든 권력관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에 경계를 긋는 ‘감각적인 것의 분할’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대중이 인지 가능한 영역 밖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의미 있는 정치 행위는 결국 통치와 대의정치의 영역이 아닌, 인민의 절박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진다고 보는 게 타당할지도 모른다.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가 그런 곳이다. 삭감된 임금과 차별적 처우를 묵묵히 감내할 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하청노동자들의 존재는 그들이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를 점거하고 1㎥ 철창 안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순간 극적으로 가시화됐고, 그 드러냄은 시민 다수의 공감과 집합행동, 나아가 정치적 공론화로 이어졌다.
따라서 그들의 ‘도크 난입’은 사회적 약자의 생존 투쟁을 넘어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겨져온 문제를 정치가 다뤄야 할 시급한 현안으로 모두의 눈앞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선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 선로를 점거한 장애인들, 청소노동자 파업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움직임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보이지 않던 것’을 가시화하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인 것이다. 정치를 미학화하는 기성 권력의 전략에 맞서는 힘은 미학의 정치화에서 나온다.
이세영 <한겨레> 기자 monad@hani.co.kr
이세영의 질문
한국의 보수정치가 최근 배출한 전직 대통령 두 명은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고 그중 한 명은 탄핵됐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는 아예 자신의 후보를 배출하지도 못하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장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보수의 가치, 철학, 비전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유능한 보수 세력은 정치권에서 그들의 대표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왜 이렇게 됐고, 어디로 가는 걸까? (제1427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