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잇단 참패로 길을 잃은 것은 민주당만이 아니다. “무능”하고 “위선”적인데다 “분열”을 거듭 드러내는 거대 야당을 지켜보며 민주당 지지층의 마음도 갈 곳을 잃었다. 6·1 지방선거가 역대 지방선거 중 두번째로 낮은 투표율(50.9%)을 기록한 가운데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투표율이 37.7%에 그친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한겨레>는 지난 15~16일 여론조사업체 휴먼앤데이터와 함께 민주당 지지층 28명을 ‘표적집단 심층면접’(FGI) 방식으로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눴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20대 대선까진 대개 민주당을 찍었지만 6·1 지방선거 투표는 포기하거나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진 이들’이다. 그나마 민주당에 투표했다는 이들조차 “좋아서 찍은 건 아니다”라고 했다. 돌아앉은 마음들엔 민주당을 향한 염증과 실망, 분노, 부끄러움까지 담겨 있었지만 쇄신에 대한 간절함이 무엇보다 컸다.
“저도 지지자인데 (민주당이)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는 걸 한번도 못 봤어요.”(한성진·52·이하 모두 가명)
“민주당은 항상 잘못을 지적했을 때 저쪽이 더 잘못했다는 태도예요.”(이영선·56·여)
“(민주당이) 오히려 적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습니다.”(이수호·44)
3월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한표를 던졌으나 6·1 지방선거에서는 투표를 포기한 이들은 민주당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지난 15~16일 <한겨레>와 여론조사업체 휴먼앤데이터가 함께 진행한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에 참가한 민주당 지지층 28명은 민주당에 실망한 이유로 ‘무능’과 ‘위선’을 주로 꼽았다. 지방선거 때 민주당에 투표했던 이들조차 사실상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 속에 “최악보다는 차악”(이주훈·27·남)을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무능’은 특히 지지자들의 삶과 직결된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서 도드라졌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시진(42·남)씨는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민주당을 응원하고 뽑았던” 자신과 주변인들의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이 없는 사람은 꿈의 다리가 다 잘렸다”며 “솔직히 대선 때부터 지지 못 받았던 건 100% 부동산 탓”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부동산 투기 정황이 드러난 ‘엘에이치 사태’는 ‘부동산 정책 무능’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었다. 성유진(42·여)씨는 “그때부터 단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민주당이) 무능한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국면에서 보인 추진력은 민생 문제와 무관한 사안에 온힘을 쏟는 ‘무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지자들은 대체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체 5년 동안 뭘 하다가 선거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밀어붙여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황진아(42·여)씨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말의 뜻도 잘 모르는 국민도 많은데, 그게 과연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냐”며 “그렇게까지 국민 관심사가 아닌 데 집중하며 부딪치는 걸 보며, 자기네 이익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배진호(41·남)씨도 “계류된 민생법안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걸 위해서 힘을 실어달라고 해서 총선 때 180석을 찍어준 건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남의 실망은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 전라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김별이(25·여)씨는 민주당을 “국민의힘이 싫어서 어쩔 수 없게 뽑게 되는 ‘고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그쪽에 살고 있으니 그 사람(민주당 후보)만 찍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실제로 고향에 가보면 발전이 된 게 아무것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직업을 고향에서 가질 수 있다고 해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위선적 태도에…민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참가자들은 ‘조국 사태’와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에 ‘위선적’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김선형(37·남)씨는 “(박근혜 국정농단 당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받은 특혜가 조국씨 딸에게도 똑같은 상황이었고, 성 비위 사건들도 연이어 터지면서 ‘민주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겨졌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의 잘못으로 선거를 치르게 됐음에도 당헌까지 고쳐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낸 건 민주당의 ‘무원칙한 태도’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오현란(60·여)씨는 “민주당은 안 한다고 했으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잖나. 그러면 그 규칙은 왜 있어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게다가 민주당은 선거 과정 내내 국민의힘에 비해 일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엄송현(54·여)씨는 “국민의힘은 (승리를 위해) 똘똘 뭉쳐 개싸움이라도 할 기세인데 민주당은 잘못하면 내치기 바쁘다”고 말했다. ‘명낙대전’(이재명-이낙연 대전)이라고 할 만큼 치열했던 당내 대선후보 경선 후유증으로 대선과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원팀’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반성 없이 자꾸 남 탓만 하는 걸 보니 민주당이 앞으로도 계속 어려움을 겪겠구나 싶었다”며 “(이러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된다면) 아예 국민의힘으로 가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힘을 합치지 못하는 동안 국민의힘은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같은 갈등 요소를 굉장히 잘 살려냈”(이주훈)고, 그 결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겐) 우리 편이 되게 잘하고 있구나”(이시진)라는 기대감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선거 패배 이후 제기된 ‘이재명 책임론’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박미주(63·여)씨는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을 언급하며 “솔직히 이재명이 좋아서 찍은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겠냐”고 말했다. 그래도 국민의힘을 찍을 순 없으니까 “정당을 보고 뽑는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주훈씨는 “친문한테 힘을 못 받은 채 대선을 적은 표차로 잘 치를 수 있었던 것은 이재명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재명이 이기기 쉬운) 인천 계양을에 나온 건 비겁하다”고 말했다. 차지훈(31·남)씨는 “대선에 나와서 졌으면 결국 이재명 책임”이라며 “민주당 텃밭인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것도 본인 책임을 회피하러 나온 것이고, 당선됐어도 더 책임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을 중심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팬덤 정치’에 대해서도 견해가 갈렸다. 지지층의 자연스러운 의견 표출이라는 견해와 ‘무조건적 지지’가 민주당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부추겨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부른다는 지적이 맞섰다.
이영선씨는 “정치인은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나의 대리인으로 내세운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선거 이외에 별로 없다”며 “그래서 정치적인 의견이 강한 사람들이 팬덤을 형성하는 등 강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배진호씨는 “어떤 행동을 해도 ‘옳다’고 이야기해주니까 (민주당) 사람들이 오만해진 것 같다”며 “강성 지지층이 ‘잘못한 건 잘못했다. 이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달라져야겠다’고 깨달을 텐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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