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의원실로 첫 등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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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전국 선거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년 집권론’을 호기롭게 외쳤습니다.
그랬던 민주당이 2021년 4·7 재보궐선거, 2022년 3·9 대선, 6·1 지방선거까지 3연패했습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역동성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민주당은 왜 순식간에 몰락했을까요?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만했기 때문입니다. 무능과 오만의 내용이 무엇인지 민주당 스스로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두차례 선거 패배의 쓰나미가 지나간 바로 지금부터가 민주당에는 반성과 성찰과 혁신의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반성과 성찰과 혁신, 잘될까요? 잘 안될 것 같습니다.
최근 민주당 안팎의 최대 관심사는 이재명 의원의 8월 전당대회 출마 여부입니다. 좀 엉뚱하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 나올 것 같다고요? 그럴까요?
이재명 의원은 당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6·1 선거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체 구도가 망가졌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내친김에’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의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당사자인 이재명 의원은 지난 7일 국회에 처음 출근하며 “시간이 많이 남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 뒤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과 만나서도 전당대회 얘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대개 출마할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지만 출마할 것 같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겠나. 그런데 걱정이다. 대표가 되면 정국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정면 대결로 치닫게 된다. 연전연패한 장수가 다시 나서는 모습을 국민이 어떻게 볼까?”(수도권 3선 의원)
“이재명 의원은 우리 당의 소중한 대선주자다. 아껴둬야 한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 이재명이라도 가져다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당원들의 여론도 만만치 않다. 스타일상 결국 나올 것으로 본다.”(수도권 재선 의원)
“민주당 다선이나 친문재인 성향 의원들은 2024년 총선 공천 때문에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당원들은 이재명의 바로 그런 강한 리더십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여론을 명분으로 삼아 나올 것이다.”(수도권 초선 의원)
그런데, 잠깐만요. 나오면 되긴 될까요? 됩니다. 이재명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재명 의원은 3·9 대선에서 무려 1600만표를 받은 정치인입니다. 1600만표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두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첫째, ‘재수 강세의 법칙’입니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자꾸 출마하는 사람이 당선됩니다.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재수생이었습니다.
둘째, ‘대선주자 불사의 법칙’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정치를 오랫동안 하게 됩니다. 대선에서 받은 표가 단단한 정치적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의 대마불사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정동영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대선주자들이 대통령은 되지 못했지만, 정치인으로는 장수했거나 장수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의원도 언젠가 대통령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정치를 오래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민주당 대표쯤이야 ‘주머니 속 공깃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의원의 이번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당 안에 꽤 있습니다. 주로 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평소 이재명 의원에게 무척 호의적이었던 민주당 원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휘모리장단도 아니고 너무 성급하다. 이재명은 정치 지도자다. 국민에게 가볍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한발 물러서서 묵직하게 훗날을 준비해야 한다.”
민주당에서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유인태 전 의원은 아예 공개적으로 이재명 의원을 비판했습니다. 지난 9일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재명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본인을 위해서는 안 나오는 게 좋다고 봐요.”
“앞으로 대선은 5년 남았어요. 저는 좀 길게 보고 당분간 좀 원내 처음 들어왔으니까 길게 내다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대통령 선거 떨어지자마자 이러는 후보는 처음 보잖아요.”
이재명 의원이 당 내부의 이런 출마 반대 목소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이재명 의원이 지금 당장 대표가 되면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과 혁신의 기회는 통째로 날아갑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선거 때 이재명 의원은 후보였습니다. 지방선거 때는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었습니다. 책임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그런 이재명 의원이 대표가 됐는데 민주당에서 누가 반성과 성찰과 혁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둘째,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강력한 대표가 아니라 강력한 깃발입니다. 이인영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잇달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 지방선거 후 공통점은 기억에 남는 민주당의 주장, 그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패배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무엇을 주장했는지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가치의 깃발이 없으면 다시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입니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민주당 가치의 실종에서 찾고 있습니다.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재명 의원이 해야 할 일은 대표로 나서서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재명 의원은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례를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바로 직전 대통령이자 ‘대선 재수’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19대 국회의원 신분이었습니다. 대선 패배 뒤 조용하고 성실하게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전반기에는 기획재정위원회, 후반기에는 국방위원회였습니다.
대선주자로서 정치 활동을 재개한 것은 대선 1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습니다.
“변명은 패배를 더 구차하게 만듭니다. 남 탓이나 상황 탓을 하는 것은 장수답지 못합니다. 이 책이 변명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패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패배를 거울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을 통해 우리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웠고, 부족한 점들을 알게 됐습니다. 다음을 어떻게 준비해 가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담을 떨치고 다시 희망을 세우는 일입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지지자들의 낙담과 상실감, 분노와 슬픔, 언론 보도를 외면하고 대화조차 피하는 침묵의 시간들…. 광범위한 ‘집단 멘붕’이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처음으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여러해 동안 해고와 비정규직의 질곡 속에서 고통을 당해온 노동자 여러명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귀한 목숨을 내던지는 비극도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들의 낙담과 절망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 앞에서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패배로 인한 저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선 패배 1년 만에 이처럼 처절한 반성문을 쓴 문재인 의원은 2015년 2·8 전당대회에 출마했습니다. 대표를 해봐야 상처만 받을 테니 대선 후보로 직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표를 하면서 실제로 ‘안철수 탈당’ 등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바로 그 대표로서 쌓은 정치적 내공 덕분에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의원은 기질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다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별명은 ‘고구마’였습니다. 이재명 의원 별명은 ‘사이다’였습니다. 고구마를 체하지 않고 먹으려면 사이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이다만 마시고 허기를 면할 수는 없습니다. 보완재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이재명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시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대선이 끝난 어느 날 찾았던 영화관. <레미제라블>은 감동이었습니다. (중략) 보는 내내 아팠습니다. 관객 500만명을 넘은 흥행의 성공이, 대선 패배의 ‘멘붕’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라는 세간의 얘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영화 속 상황을 우리 시대에 오버랩시켜서 봤을 사람들의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 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아마도 문재인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본 새누리당 정치인이 “대선 전에 개봉했으면 우리가 대선에서 졌을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상처받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서를 위로해 줄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2022년의 ‘레미제라블’은 무엇일까요? 이재명 의원도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