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방글라데시에까지 뻗친 논문 대필 의혹 등록 논문들은 하버드대 공모전 주제와 일치 “3년간 쓴 글”“입시용 아니다” 등 해명 의문 진술거부 공무원 파면 미국 ‘개리티원칙’ 왜곡도
[논썰] 한동훈의 ’아이비캐슬’? … ‘부적격 이유’ 조목조목 따져봤다. 한겨레TV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 여러가지 부적격 사유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청문회 이후에도 추가 의혹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워낙 많은 의혹과 논란이 벌어져서 무엇이 무엇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전체적으로 정리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구” 발언 불구 ‘논문 대필’ 의혹 해명 안돼
먼저 많은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한 후보자 자녀의 스펙쌓기 의혹부터 보겠습니다. 미국대학 입학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변칙적인 방식과 방대한 가짓수를 보면, ‘스카이캐슬’을 훌쩍 뛰어넘어 ‘아이비캐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대표적인 게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진 논문 대필 의혹입니다. 지난해 11월 이른바 ‘약탈적 학술지’, 즉 정상적인 검증 절차 없이 돈을 받고 논문을 실어주는 비윤리적인 학술지인 에 수록되고 올해 2월 미국에 기반을 둔 사회과학 분야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SSRN’에도 등록한 논문인데, 이것을 케냐인 대필 작가인 ‘벤슨’이라는 사람이 대신 써준 게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이 논문의 문서정보 ‘지은이 항목’에 벤슨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가 했다”(I did it)고 답변했습니다.
이 의혹은 인사청문회에서 풀리지 않았습니다. 한 후보자는 “학습 과정에서 온라인 튜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은 있지만 벤슨과 접촉하거나 도움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지은이 항목에 벤슨의 이름이 올라있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 채 “상황은 잘 모른다. 가족한테 물었다”고 피해갔습니다.
<한겨레>는 취재 과정에서 이 벤슨이란 사람이 사례금을 요구하자 “정보 제공이나 협조의 대가로 취재원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자체 취재보도 준칙에 따라 취재를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이를 두고 “(벤슨은) 돈까지 요구한 사람이다”라며 신뢰성을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한 후보자야말로 그런 인물이 딸의 논문 문서정보 항목에 버젓이 등장하는 이유부터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지 14시간여 만에 “송구하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벤슨이라는 사람이 한 게 맞다면 당연히 부적절했다고 말씀드리겠는데, (가족들이) 벤슨이라는 사람하고 저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며 “보시기에 불편한 점에 대해선 제가 전체적으로 내용은 잘 알지 못하지만 송구하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발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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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공모전 출품, 그래도 ‘스펙쌓기’ 아니다?
그런데 청문회 이후 한 후보자의 해명과 배치되는 사실이 또 드러났습니다. 약탈적 학술지 에는 대필 의혹이 있는 논문을 포함해 3편의 한 후보자 딸 논문이 실렸는데, 모두 2021년 11~12월에 이뤄진 일입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고등학교 1학년생이 ‘국가부채’ ‘셔먼법(미국의 반독점법)’ ‘코로나19가 무역에 미친 영향’ 등 다양한 주제로 여러 논문을 쓸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2019, 2020, 2021년 3년에 걸쳐 작성한 글을 모아 2021년 11월 이후 한꺼번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취재 결과, 이 주제들은 2021년 10월17일 공고된 미국 하버드대의 국제경제학 에세이 공모전 주제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공모 주제였던 ‘암호화폐’와 관련한 논문을 한 후보자 딸이 실제 하버드대 공모전에 출품한 것도 확인됐습니다. 한 후보자 쪽은 이 중 한 편은 2020년 같은 대회에 공모된 코로나19 관련 주제로 출품했던 것을 1년 뒤 학술지에 업로드한 것이고 두 편은 습작한 글로 공모전에 제출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공모전을 겨냥해 여러 논문을 준비한 뒤 출품작 외 나머지는 학술지에 등재했다는 추정은 가능합니다. 공모전엔 한편만 출품할수 있습니다. 하버드대 공모전이 한국의 여러 유학원에서 미국 대학 입시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소개되는 점에 비춰 대입용 스펙쌓기라는 의혹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한 후보자 딸이 직접 논문들을 작성했느냐는 의문도 더욱 커집니다.
[논썰] 한동훈의 ’아이비캐슬’? … ‘부적격 이유’ 조목조목 따져봤다. 한겨레TV
‘표절’ 의혹 제기되자 뒤늦게 저작권 허락 받아
다음으로 주목을 끈 것은 표절 의혹입니다. <뉴스타파>는 한 후보자 딸이 지난해 전기전자공학자협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또다른 논문과 약탈적 학술지인 에 발표한 논문에 표절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한 후보자 딸이 출판한 전자책 <중학생을 위한 기하학 문제풀이집>과 <수학 워크북>이 각각 아랍에미리트 수학 전공자의 웹사이트, 온라인 자기학습 업체의 애플리케이션을 무단으로 베낀 의혹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혹 보도가 나온 뒤) 원저작자가 딸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고, (딸이) 사과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관련 메일을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한 후보자는 며칠 전에야 원저작자한테서 저작권 허락을 받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전자책 출판부터 최근까지 6개월가량 동안은 저작권 침해가 있었던 셈입니다. “딸은 비영리라는 걸 명시해서 (책을) 올렸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이라는 것에 동의 못한다”는 한 후보자의 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뒤늦게 사과하고 저작권 허락을 받은 행위와도 모순됩니다.
노트북 기부 과정 “상세히는 모른다”
다음은 ‘노트북 50대 기부 의혹’입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유사 언론에 한 후보자 딸의 인터뷰 기사가 올랐는데, 한 후보자 딸은 자신이 복지시설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노트북 후원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기업들에 보내 한 기업으로부터 중고 노트북 50여대를 기증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취재 결과 한 후보자 배우자의 지인이 이 기업의 법무 담당 임원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족 찬스’를 사용한 스펙쌓기용 기부와 인터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한 후보자는 순수한 봉사활동이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이 기부 활동을 딸이 주도했는지에 대해선 모호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어머니와 관계없이 딸이 연락해서 기부해달라고 얘기해서 기업이 받아들인 것이냐”고 묻자, 한 후보자는 “그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회사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 개입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상세히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노트북 기부를 한 후보자 딸이 스스로 해낸 것인지, 어머니의 인맥을 활용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본질은 회사 명의로 기부했는지, 딸 명의로 기부했는지”라며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이 의혹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 기사 부제목에 ‘딸 명의’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허위 기사라며 기자들을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노트북 기증식 기념사진을 보면, 기증 팻말에 후원처로 해당 기업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 한 후보자 딸이 대표로 있는 단체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다시 문제의 핵심으로 돌아가보면, 노트북 기증 과정과 목적에 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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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대회 출품작도 ‘대리 제작’ 의혹
청문회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후보자 딸이 한국과학기술지원단 주최 과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해당 내용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삭제됐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했습니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관련 자료가 인터넷에서 삭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청문회 다음날에는 한 후보자 딸과 사촌이 2019년 미국 애플리케이션 제작 대회인 ‘테크노베이션’에 출품해 준결승에 진출한 작품이 전문 개발자에게 돈을 주고 만든 것이라는 또다른 의혹이 <문화방송>에 보도됐습니다. 이 대회 규정에는 ‘코드 작성을 포함해 학생이 제출하는 어떤 부분도 (외부인이) 제작할 수 없다’고 돼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앱 제작을 의뢰받았던 개발자는 <문화방송> 인터뷰에서 “크몽(프리랜서 전문가 의뢰 누리집)으로 (앱 개발을) 의뢰받았다. 금액은 200만원이었고, 학생 방학 때 숙제라고 해서 앱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후보자는 <문화방송>에 자신의 딸은 “아이디어, 홍보 동영상 제작에 참여했고 앱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역시 논문 대필과 같은 맥락에서 규명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국민 박탈감 안중에 없는 듯…‘공직자 자질’ 의문
제기된 의혹을 일별만 한 것인데도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이들 의혹은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표절 의혹의 경우 더욱 짙어졌습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면 교육·학문 윤리적으로 매우 심각한 비위 행위입니다. 미성년 자녀라면 부모의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6개 교수·연구자 단체는 8일 공동성명을 내어 약탈적 학술지에 돈을 내고 기고를 하는 행위는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딸의 표절과 ‘논문’ 게재 등의 의혹과 그에 대한 해명에 비춰볼 때 한동훈 후보자는 나라의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완전히 부적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많은 논문과 전자책을 무리한 방식으로 출간했는데도 “입시에 사용할 계획이 없고, 본인이 학습한 과정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존한 것”이라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변칙적 스펙쌓기는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는 반사회적 행위입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부모의 인사검증에 자녀가 소환돼 학습·입시 과정이 세세히 들춰지고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모의 심정도 이해됩니다. 그러나 자녀의 입시 준비와 관련해 ‘부모 찬스’나 허위·과장 등 불공정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이미 고위 공직자 검증의 한 기준이 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검증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한 후보자는 조 전 장관 인사검증을 수사로 전환해 고강도 수사를 벌였던 장본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한 후보자의 자녀 관련 의혹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 전 장관 때처럼 자녀의 일기장까지 압수수색하며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자는 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조 전 장관 수사도 그런 점에서 과잉 수사였다고 판단합니다. 자녀를 검증대에 올려놓고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보다는 그 부모와 기성세대가 부끄러워 하고 성찰해야 할 일입니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지적했듯이 “진정한 피해자는 이 거대한 경쟁사회 속에서 부모의 스펙 지도에 휘둘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찬스는 꿈도 꾸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상처를 받는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위 공직에 있거나 오르려는 사람은 애초에 이런 의혹의 여지를 차단하는 게 맞습니다. 한 후보자는 더욱 그랬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해 결국 인사검증에서 의혹이 제기됐으면 성실히 해명하고 깊이 머리 숙여야 마땅합니다. 그 결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깨끗이 물러나는 게 공직 후보자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스펙쌓기용 아니냐’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을 부정하며, 불법이나 위법이 드러나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식입니다. 지극히 ‘검사스러운’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검사가 아닌 국무위원으로서 국정을 끌어나갈 자질을 갖췄는지,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소양을 갖췄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인사청문회는 법적인 차원뿐 아니라 도덕·윤리적 결격사유까지 검증하는 장입니다. 국민들의 박탈감은 안중에 없이 ‘불법이 있었는지 밝혀보라’며 당당해하는 한 후보자나, ‘청문회에 한방이 없었다’며 희희낙락하는 국민의힘이나 참 후안무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논썰] 한동훈의 ’아이비캐슬’? … ‘부적격 이유’ 조목조목 따져봤다. 한겨레TV
‘휴대전화 비번’ 관련 ‘개리티 원칙’ 왜곡 발언
자녀 관련 의혹 이외에도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격을 의심케하는 사안은 많습니다.
먼저, 한 후보자가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받으면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내 제공하지 않은 일입니다. <논썰>은 지난 80회 ‘한동훈의 직업윤리와 양심, 검증대 통과할 수 있나’ 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의 ‘개리티 원칙’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다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에서는 과거에 법 집행관들이 범죄 혐의를 받을 때 진술하도록 강제하고 만약 진술을 하지 않으면 파면에 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헌법상 권리(자기부죄금지 원칙)와 배치됐습니다. 반면 이런 식으로 비위 혐의를 받으면서도 입을 다무는 법 집행관을 계속 신뢰하며 임무를 맡길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고안해낸 해결책이 개리티 원칙입니다. 즉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된 비위 혐의를 조사 받을 때 강요된 진술은 ‘형사처벌’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보장을 해주는 대신, 진술을 계속 거부하거나 진술 내용상 비위가 드러날 경우 파면 등 ‘행정적 징계’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한 후보자는 “<한겨레>가 잘못 인용한 것”이라며 “미국에서 징계로 겁줘서 진술을 이끌어내거나, 진술을 안한다고 자르는 그런 룰이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개리티 원칙’을 잘못 이해한 것은 한 후보자입니다. 개리티 원칙을 알리고 공직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www.garrityrights.org)를 보면, 여러 가지 상황별로 개리티 원칙에 따른 권리와 의무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공직자가 마약 판매 혐의로 상부의 조사를 받습니다. 그는 조사에 협조라는 명령과 함께 진술하지 않으면 해고될 것이라는 통보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묵비권을 주장하며 진술을 거부합니다. 그는 명령불복종으로 파면됩니다. 이는 합법적입니다. 그는 진술을 강요받은 순간부터 ‘이후 진술을 해도 그것이 형사처벌에 증거로 사용될 없다’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대신, 진술을 계속 거부할 권리는 없어집니다.”
한 후보자가 말한 “진술을 안한다고 자르는 룰”이 실제 있는 것입니다. 한 후보자가 국내에선 낯선 개리티 원칙을 자세히 몰랐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안에 대해 공적인 석상에서 왜곡된 발언을 해 국민을 호도한 행위는 잘못입니다. 법을 다루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자질 부족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미국에 이런 룰이 존재하는 이유, 즉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가 진실을 감춰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감춘 행위 역시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룰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징계 대상이 되지는 않겠지만, 공직자 윤리에 비춰 고위 공직자가 되는 데 결격사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논썰] 한동훈의 ’아이비캐슬’? … ‘부적격 이유’ 조목조목 따져봤다. 한겨레TV
표현의 자유 경시, 법원 판결 무시, 말장난 발언
한 후보자는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챙기는 데는 철저하면서 다른 사람과 우리 사회가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에는 무감각한 듯합니다. 언론이 공직자와 공직 후보자를 검증하고 비판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가 가장 확실하게 보장돼야 하는 영역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한겨레> 검증 보도의 지엽적인 표현을 꼬투리잡아 기자들을 고소했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저는 언론 자유를 대단히 중시한다. 제 지론이자 생각이다”라고 했는데 실제 행동과는 모순됩니다. 얼마전에 발표된 미국 국무부의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에는 한국 정부와 공직자들이 언론과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들어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한 후보자에 대한 거짓 주장을 했다는 혐의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기소된 사실을 적시했습니다. 검찰 고위 간부로서, 또 이제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이런 지적을 돌아보지 않는 것 역시 자격 미달이라고 할 것입니다.
게다가 한 후보자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태도도 보였습니다. 한 후보자가 ‘검언유착 의혹’으로 감찰·수사를 받을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측근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 개입했다가 징계를 받았고 이에 대해 법원은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한 후보자는 “그 징계 자체가 대단히 부당하다는 판단은 이미 사회적으로 내려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엄연히 법원의 판결이 난 사안을 ‘사회적 판단’이라는 추상적 근거로 부정한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인식입니다.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법치를 책임지는 장관이 이렇게 주관적인 잣대로 법원 판결을 재단한다면 법치는 뿌리부터 흔들릴 것입니다.
이런 우려를 낳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이시원 전 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돼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인사청문회에서 이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한 후보자는 “그런 사건이 있다는 것은 들어봤다”고 답했습니다. 근래 검찰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인 간첩조작 사건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말했습니다. 사건 당시 그 자신도 검찰의 주요 일원이었고 장차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직접 수사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궤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한 후보자의 교묘한 말장난도 인사청문회에서 도드라진 점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 후보자는 조국 전 장관 수사와 관련해 딸의 학생 때 일기장을 압수한 사실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조 전 장관이 딸의 다이어리가 포함된 압수물 목록을 공개하자 한 후보자는 “‘일정표’를 압수한 것”이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다이어리’의 같은말이 ‘일기장’입니다. 여학생이 회사원도 아니고, 다이어리에 사무적인 일정만 적겠습니까. 장관 후보자가 이런 말장난을 하고 있다니, 듣는 이가 오히려 부끄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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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보자 임명은 ‘검찰공화국’ 완결판
지금까지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들을 위주로 짚어봤는데, 법무부 장관으로서 적격 여부를 따질 때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차대한 대목이 있습니다. 한 후보자 지명 때부터 줄곧 제기됐던 ‘검찰 장악’ ‘검찰 공화국’에 대한 우려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검찰 천하’라고 부를 만한 대통령실 인사를 냈습니다. 인사기획관에 복두규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 인사비서관에 이원모 전 검사, 공직기강비서관에 이시원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 법률비서관에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총무비서관에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 부속실장에 강의구 전 검찰총장 비서관. 마치 검찰청을 옮겨다 놓은 듯합니다. 권력의 핵심 길목을 검찰 출신들로 채운 이번 인사에서 ‘검찰 공화국’의 짙은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특히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시원 전 부장검사를 공직기강을 다루는 비서관에 발탁한 것을 보면 ‘검찰은 치외법권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후보자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절제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검찰 내 ‘윤석열 라인’의 핵심이자 ‘소통령’으로까지 불리는 정권 실세가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됐을 때 검찰이 중립적·독립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처럼 비공식적 수사지휘가 얼마든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한 후보자는 고발사주 사건 이후 축소된 대검찰청의 정보 기능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고발사주는 대검 정보 부서가 특정 정당과 결탁해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뿌리째 흔들어버린 사건입니다. 이런 행위가 벌어진 정보 부서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없는 태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은 법치, 정의, 공정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검찰의 생명인 정치적 중립성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한 후보자는 직업윤리와 상식도 강조해왔습니다. 이 모든 가치에 비춰볼 때 한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논썰>은 판단합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