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의 ‘586 정치인’ 리더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1987년 6월 항쟁 때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2000년 정치에 입문한 뒤엔 고 김근태 의원계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이 장관은 재야·시민단체에서 정치권에 들어온 인사 중 누구보다 진보적 가치와 노선에 충실하고 비타협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대중 정치인으로서 이인영에겐 장점이자 한계인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시기에 대북정책의 최일선에 섰던 그는 이제 장관직을 그만두면서 어떤 얘기를 새 정부와 북한당국에 하고 싶을까. 또 586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민주당에 돌아가선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할까.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이인영 장관을 만났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을 녹슬지 않는 자부심으로 간직하되 거기에 갇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 퇴임에 즈음해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았다는 언론 보도를 봤습니다. 퇴임 인사 차원이기는 해도 의미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실은 코로나가 좀 진정되면 문 대통령 퇴임 전에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는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니 화상 만남이라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조금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남북 정상이 지나온 여정을 회고하면서 그간의 노력을 서로 치하하고, 또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 대해 기대와 신뢰를 주고받은 점은 높이 평가하고 기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렇게 친서를 교환한 건, 상황 여하에 따라선 북한이 다시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친서 교환이지만, 또다른 측면에선 다음 정부에 대한 일정한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관계 개선과 평화의 길로 나오는데 남북 정상간 신뢰가 중요한 기초가 되었듯이, 차기 정부에서도 정상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급진전하는 듯했으나 지금은 멈춰선 상태입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대북정책 공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했지만 미완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평가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정부는 이 프로세스를 본 궤도에 진입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를 바랍니다. 최근 다시 긴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까지 4년4개월의 시간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떤 유익함을 남북한과 동북아, 그리고 세계에 주는지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격앙된 긴장의 연속이었다면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에 진입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또 하나, 9·19 군사합의를 계기로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현저히 완화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약 215차례, 박근혜 정부에서 115차례 정도 크고작은 접경지역 충돌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특히 9·19 군사합의 이후엔 한두 차례 정도로 거의 사라졌습니다. 지금 북한이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모라토리엄을 깨고 있는데, 다음 정부가 다시 평화를 위한 지혜로운 해법을 북쪽과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아직 미완인 셈이지요.”
― 북한이 핵실험 준비에 들어갔다는 미국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정부에서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북한 핵폐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 목표와 의지는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북 정상간 합의를 통해서 수차례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와 의지를 확인한 바 있고, 그건 준수되고 지켜져야 합니다.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고각으로, 사거리 1,000km 정도로 제한해 시험 발사한 건 전략적 고려도 있겠지만, 어쨌든 국제사회와 약속을 깨기 시작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북쪽의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영변 핵시설과 풍계리 실험장소, 또 동창리의 발사시설 등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그밖의 군사시설 등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재 특별한 징후가 정확하게 포착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일(4월25일)을 전후해서 또는 5월에 실제 상황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인터뷰 이후인 25일 핵 무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편집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문재인 정부는 북-미 관계를 먼저 풀고 이걸 토대로 남북관계 진전을 이룬다는 구상을 가졌던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권 초기에 미국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금강산 관광이나 남북 철도연결 등 남북관계 진전에 속도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감합니다. 제가 만약에 (문재인 정부의) 마무리 투수가 아니고 선발 투수로 등판할 기회가 있었다면, 저는 그렇게 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에서 벌크 캐시(단체관광에 따른 대량현금 유입)가 문제가 된다면 개별 관광의 형태나 다른 형태로 풀어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물론 그 당시 정책 결정자들의 고민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폄훼할 수는 없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앞으로 남·북·미 관계를 한 줄로 세우는 기본 설계를 좀 수정할 필요가 있으리라 봅니다. 한-미 공조에 확실하게 입각해서 그것과 남북관계를 일치시키는 해법을 찾다 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북한도 ‘선미후남’(先美後南) 식의 접근을 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남북관계 중요성을 적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봅니다. 남북관계가 먼저 풀리면 그게 북-미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북-미 관계가 잘 풀리면 남북관계도 더 넓고 깊게 풀릴 수 있다는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접근방식을 우리가 재평가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그와 반대로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톱다운 방식의 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우선, 불가피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북쪽은 최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불가피성이 있었고, 또 그런 톱다운 방식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인물과 만나면서 역사상 가보지 못한 길까지 갔던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톱다운(top-down)이나 바텀업(bottom-up)의 문제에선 매우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서 성과가 있다면 톱다운이면 어떻고 바텀업이면 어떻습니까? 바텀업 방식도 시간이 걸릴진 몰라도 한번 결론 나면 굉장히 단단하게 지속되는 장점이 있기에, 두 개의 방법을 실용적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2년 가까이 대북 정책을 일선에서 책임졌던 사람으로써,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조언과 당부를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습니까?
“역발상으로 임하라, 이런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강경한 대응을 할 거 같은 보수 정부가 평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담대하게 제안한다, 이런 게 주는 의외성과 효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북쪽에서도 그걸 절대로 외면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보수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저는 국회에 돌아가서도 협조하자고 주장할 겁니다. 이건 단순히 남북관계 해법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 전망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진 상태에선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화 그 자체가 성장의 동력을 만들진 못하지만, 그런 환경이 성장 동력엔 매우 큰 영향을 주는 부분임엔 틀림없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우리가 주도해 만들어야만 미-중 갈등에서도 최대한의 지혜를 갖고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북도 비핵화 과정에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지만 본격 궤도에 진입시킨 건 보수인 윤석열 정부다, 이렇게 기록되지 않겠습니까?”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2020년 7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한 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안을 여럿 했지만 북한 쪽의 호응이 없었습니다. 이제 장관직을 물러나면서 북한당국에 직접 얘기를 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시겠습니까?
“‘하노이 노딜’ 이후 북 지도부가, 또 북한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에 대해선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젊은 지도자의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충분합니다. 북한이 문을 걸어잠는 건 코로나 상황 탓도 있습니다. 남쪽이나 미국에 대한 아쉬움, 실망감만 있다면 북-중관계에서 그렇게 국경까지 봉쇄하진 않았을 겁니다. 북이 코로나 문제에서 어떤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 우리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코로나 상황의 완화 가능성이 다가오고 있으니 대비해야 합니다. 포스트 팬데믹 이후에 북이 빠르게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백신과 치료제, 방역장비나 시스템 지원에 우리가 열려 있어야 하고, 북한도 그 부분에선 유연하게 판단했으면 합니다. 남에서 보수 정부가 출범하지만, 7·4공동성명이나 한반도비핵화선언은 보수 정부 때 이뤄진 거 아닙니까? 북한 정부가 유연하고 화통하게 다음 정부하고 한반도 평화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법을 찾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습니다.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인데요, 그럼에도 지난 3월 대선에서 민주당은 패배했습니다. 현 집권세력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한 가지만 꼽으라면, 부동산 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문 대통령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40% 넘는 지지율은 그에 대한 평가인 거구요. 그러나 부동산 정책만큼은 확실한 대안을 만들어야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다시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20여만표 차이로 아깝게 패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라는 평가와 ‘질 수 없는 선거인데 졌다’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이 장관께선 두 평가 중 어느 쪽에 좀더 가까우십니까?
“저는 그 두 가지 생각을 다 초월해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쉽게 진 측면도 있습니다만, 0.73%포인트라는 미세한 격차의 혁신보다는 700%의 혁신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매우 중대하고 절박한 과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에, 단결과 통합의 토대 위에서 혁신을 잘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아직은 현직 장관 신분이니 나중에 하겠습니다.”
― 보름 남짓 후면 민주당으로 돌아가는데, 앞으로 민주당이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걸 위해서 당 중진의 한사람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입니까?
“당으로 복귀하면, 국회로 복귀하는 거니까, 단순한 야당이 아니라 제1당으로서 책임 있는 새로운 야당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국회가 단지 행정부를 견제하거나 뒷받침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회 나름대로 국정운영의 책임 있는 한 주체로서 작용해야 할 영역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능력 있고 원숙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새로운 수권정당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차원에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당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으니, 돌아가면 야당의 한 사람으로서 또 국회 구성원으로서 저에게 주어지는 어떤 일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지고 분열이 있다면 그걸 통합하는 접착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또 국정 운영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숙하고 능력있는 정당이나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제가 기여할 부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때로는 후배들의 얘기를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 듣고, 그들의 따뜻한 가슴과 열정어린 시선을 응시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어떻게 다시 두드릴 것인가 이런 것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짊어져야 할 일이 있다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할 생각입니다.”
― 이 장관님은 학생운동 출신으로 이른바 ‘586 정치인’의 리더 중 한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586에 대해선 “정치권에 들어왔으면 자기 노선으로 국민과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지 왜 유력 정치인을 돕는 역할에만 그쳤는가”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제가 모든 586 정치인을 대표할 순 없고, 일단 저 개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치권에 들어와서 돌아가신 김근태 선배와 함께한 역사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그렇게 비판한다면 감내하겠습니다. 저는 운동의 연장선에서 정치에 들어왔던 사람이고, 그 연장선에서 김근태 선배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인연과 의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와 노선의 문제이기에 그랬습니다. 그건 저의 진심이고 진정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후회 없습니다. 그걸 비판한다면,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에 김근태 선배가 돌아가신 뒤 저는 저의 길을 분명하게 걷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 무렵 진보와 연합의 길을 주도했고, 2015년 당대표 선거에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이렇게 셋이 경쟁을 했는데 그 두 분 틈새에서 저는 완전히 쪼그라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전당대회 때도 당권에 도전했다가 컷오프를 당했습니다. 2019년엔 원내대표로서 공수처법을 입법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큰 승리를 하는 길을 여는 데 나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우리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이 있을 텐데요, ‘너는 유능하냐’, 이 질문에 답을 하려고 애썼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한국사회에서 586세대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586이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에는 동의합니까? 며칠 전 조정훈 국회의원이 “586이 괴물이 됐다”고까지 말했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연스럽게 우리도 어느 시점에선 사라질 겁니다. 역사의 한 귀퉁이에 지워지지 않는 한 줄 기록으로 남는다면,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지금은 다양한 평가를 받지만, 적어도 지난 시절의 열정은 순수했다 생각하고 그것마저 폄훼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기득권이 됐든 부자가 됐든 또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힘들고 외롭게 살든, 다들 그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의 질책과 비판에 늘 귀를 열고 경청하고 있습니다. ‘586이 괴물이 됐다’는 말을 들을 때 저도 굉장히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맞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런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가슴을 열고 후배 세대와 제 또래 세대가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직면한 이 시대의 과제가 여전히 앞에 놓여 있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야할 실천 과제들이 아직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후배들을 앞세우고 저는 뒤에서 뒷받침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있습니다.”
― 586에 대한 정치적 비난의 기저엔, 이 세대가 자부심은 강한 데 비해 소통 또는 공감 능력은 떨어지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가령 누가 저한테 1987년은 어떤 의미냐고 물으면, 저는 87년 6월 항쟁은 저의 자부심이고 그해 12월의 대선 패배는 제 평생의 멍에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치는 자부심과 자존감이 없으면 해나가기가 참 힘듭니다. 돈, 스캔들, 불법 선거, 권력의 유혹, 이런 것들에서 나를 지켜내려면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돌아보면 진정한 자부심은 겸손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만큼 겸손했었나, 저도 되돌아볼 부분이 많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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