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오후 서울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가 과거 언론 칼럼에서 전두환씨를 칭송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부각하는 글을 작성해 역사관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1981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편집인·대기자를 거친 뒤 2021년 2월까지 10여년 동안 ‘박보균의 세상 탐사’ 등의 기명 칼럼을 써왔다.
박 후보
자는 2019년 3월14일 ‘DJ 집권 시절이 좋았다’라는 칼럼에서 “5공 출신 인사는 익명으로 전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평생 의리를 중시했다. 자식·친척·측근들에 대한 마구잡이식 재산압류는 그의 수난 중 가장 심한 수모와 고통이었을 것이다.’ 전두환식 리더십의 바탕은 의리다. 거기엔 ‘수호지의 양산박’ 느낌이 풍긴다”라며 전씨를 의리가 깊은 인물로 묘사했다. 이어 2003년 6월 법원의 재산명시 관련 재판에서 전씨의 예금이 29만원뿐이라고 밝혀진 것과 관련해서는 “조롱받기는 수난의 형태다. ‘재산 29만원’은 혐오의 압축”이라며 부당한 비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칼럼이 나온 시점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가 광주지법 재판에 출석한 직후였다. 그는 2017년 4월 회고록에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박 후보자는 칼럼에서 “전두환의 광주 (재판 때) 언행은 그런 감정(혐오) 표출의 소재다. ‘이거 왜 이래’, 재판 중 졸음이 포착됐다. ‘광주 학살 주범의 뻔뻔함’이라는 경멸이 쏟아졌다”라며 전씨에 대한 비판이 혐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후보자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재조명’하며 과거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20년 8월15일 ‘해방공간의 불꽃 격돌…승부사 이승만은 하지를 어떻게 눌렀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문재인 정권에서 이승만의 서사는 고난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하수인’이란 프레임이 작동한다”며 “그것은 치사한 비방이다. 진실은 반대다. 그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성취는 저항의 결실”이라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의 재평가도 주장했다.
2011년 4월13일치 ‘4.19 세대와 이승만의 화해’에서 “이승만은 서사시다. 장엄하고 처절한 삶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4·19 주역들은 이승만을 역사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이승만 생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차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 역시 박 후보자는 추어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3년 5월10일 ‘박근혜의 동맹, 박정희의 동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안보 우산 속에 박정희는 산업화에 매진했다. 그 뒤 자주국방으로 달려갔다”며 “용미자주는 노무현 정부 때 득세한 ‘반미자주’와 대조적이다. 외교의 전략과 절제, 고뇌의 질적 깊이가 달랐다”고 적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하며 박 전 대통령을 띄우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2017년 11월16일 ‘100주년 박정희의 신미양요’ 칼럼에서 “박정희는 그렇게 안보 의지를 단련했다. 위기는 기회다. 그는 자주국방과 중화학공업을 묶었다. 한국의 산업화는 도약했다”며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의 강대국 다루기는 절제와 배짱의 배합이다. 그는 국력의 한계선을 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2년 7월20일 ‘역사는 통합의 무기다’라는 글에선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들 중 여론 평가에서 1위다. 5·16은 쿠데타로 시작했지만 근대화 혁명의 시작이었다”며 “다수 국민은 박정희의 공과 중 공적을 먼저 바라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동방성장포럼’ 강연에서도 박 후보자는 “해답은 박정희한테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신미양요 유적지까지 가서 폐허가 된 유적지를 성역화했다”며 “과거 리더십을 집중 연구하면 해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배지현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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