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업무보고에서 “현시점처럼 정치적 중립성 관련 논란이나 의심이 있는 상황에서는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감사위원 임명을 위해서는 감사원장의 제청 과정이 필수적인데, 제청권을 가진 감사원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과 같은 입장을 내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자 간 대립의 핵심 쟁점이었던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을 결국 새 정부가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는 이날 오전 감사원 업무보고 뒤 보도자료를 내어 “감사원은 ‘감사위원이 견지해야 될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할 때 원칙적으로 현시점처럼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논란이나 의심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현 정부와 새 정부가 협의되는 경우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거 전례에 비추어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이날 감사원 업무보고에는 김경호 감사원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한 국장급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감사원의 이런 입장 표명은 업무보고 과정에서 제청권 행사에 대한 감사원의 입장을 묻는 인수위원들의 질문에, 김 기조실장의 구두 답변을 통해 이뤄졌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방점이 찍혀 있는 핵심은 현시점에서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의문이라는 감사원 측 답변이 나왔다는 것”이라며 “이 내용은 감사원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감사위원회 자리는 현재 2석이 공석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윤 당선자 쪽은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의 인사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청와대는 윤 당선자 쪽의 의견을 수렴하되 인사권 자체는 법률대로 문 대통령이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윤 당선자 쪽에서는 새 정부에 인사를 넘겨야 한다는 인사 동결을 요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이 ‘양측 협의가 없으면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어 사실상 윤 당선자 쪽의 손을 들어주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누군가를 감사위원에 임명하려 해도, 최재해 감사원장이 윤 당선자 쪽이 협의가 없다며 제청을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재임 시절 김오수 검찰총장(당시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요청을 거부한 바 있고, 결국 김 총장은 감사위원에 임명되지 못했다.
청와대는 이날 인수위가 전한 감사원의 보고 내용에 대해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인사권에 대해 당선자 쪽과 충분히 협의한다는 게 원칙이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한국은행 총재 후보 협의 여부를 두고도 윤 당선자 쪽과 정면충돌을 한 바 있어, 감사원 감사위원 등을 임명할 때 협의 없이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이완 기자
wani@hani.co.kr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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