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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테러리스트에서 ‘효녀심청’이 된 그녀

등록 2005-02-13 11:38수정 2005-02-13 11:38

이용호 기자
이용호 기자
[이슈] '친박-반박' 논쟁 부른 전여옥
그는 테러리스트인가 심청인가 논개인가

정치인이 되기전 언론인 전여옥씨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표절 시비에 오른 <일본은 없다>말고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다른 여성들을 향해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주문하는 전여옥씨는 스스로의 말처럼, 정치 입문 전후로 스스로 테러리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에 칼럼을 통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03/05/23 )고, "기쁨 못준 대통령 물러나길" (2003.10.13) 바란다고 독설을 쏟아부었다. 한나라당 대변인으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됐을때, 휴가를 갔을 때, 그리고 해외순방때’의 세가지 공통점은 ‘나라가 조용했던 때’ ”라는 논평을 쏟아내며 정치권에서 테러리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날 철갑의 심장을 지닌 테러리스트가 비단결 효심의 심청으로 변신했다.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이 ‘효녀 심청’으로 변신한 사연을 되짚어본다. 편집자

“박대표 치마꼬리 매달려 살려달라던 배은망덕의 뺑덕어멈들아”


“탄핵의 폐허 속에서 박 대표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살려달라 애걸을 해놓고 이제 과거사 폭풍이 몰려오니 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이제 와서 박 대표 혼자 치마폭에 얼굴 폭 파묻고 심청이처럼 뛰어내리라는 건 뭐냐. 이 은혜 모르는 뺑덕어멈들아”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달 3~4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박 대표에게 ‘2선 후퇴’를 요구한 의원들을 “탄핵의 폐허에서 박 대표의 치마폭에 싸여 치마꼬리를 붙잡고 ‘살려달라’며 애걸해 놓고 이제는 ‘과거사 폭풍’이 몰려오니 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며 이들을 ‘뺑덕어멈’에 빗댔다.

전여옥 대변인의 박근혜 대표에 대한 ‘충성’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연찬회 이후 불거진 ‘친박근혜’-‘반박근혜’의 대결구도 속에서 당의 공식 ‘입’인 전 대변인이 5일 발표한 당 공식논평과는 달리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박 대표를 향해 비난을 쏟아낸 당내 세력들을 향해 박근혜 대표를 대신해 맹공격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 발언으로 인해 전 대변인은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해야 하는 당대변인이 아니라, 박근혜 대표라는 한 정치인의 사설 대변인이 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을 받았다.

전 대변인은 연찬회에서 박 대표를 비판한 당내 세력을 비겁하고 파렴치한 ‘뺑덕어멈들’이라고 몰아세운 뒤 파장은 인당수의 물결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

당 대변인도 공식논평과 별개로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발표할 권리가 있으니 전여옥 대변인의 홈페이지 글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전 대변인의 홈페이지 발언은 연찬회 이후 한나라당을 ‘친박-반박’의 구도로 만들었다. 친박근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전대변인이 깃발을 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나라당 ‘친박-반박’ 갈등은 여전히 <심청전>을 은유의 무대로 삼고 있다. 뺑덕어멈(반박)으로 위기에 처한 심봉사(박근혜)에 맞선 효녀 심청(친박근혜)이 등장한다.

이기명씨 “박근혜 대표에게 충신이 있다. 전여옥이 충신이자 효녀 심청”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고문은 전여옥이 효녀 심청이라고 지목하고 나섰다. 그는 13일 노사모 홈페이지에 올린 ‘전여옥 대변인과 효녀 심청’이라는 글에서 박근혜 대표에 대한 당내 비판을 반박하는 글로 관심을 모았던 전여옥 대변인을 ‘효녀 심청’에 비유했다.

이 고문은 “나는 어릴 적 심청의 얘기를 들으며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일찍이 배웠다”고 말문을 연 뒤 한나라당 내 ‘반박’ 기류와 관련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충신이요 측근이며 심청이다. 확실히 박 대표에게도 충신이 있었고, 바로 전 대변인”이라고 말했다.

▲ 이용호 기자


그러나 이 고문이 전여옥 대변인을 향해 ‘효녀 심청’이자 ’충신’이라고 지목한 것은 칭찬이라기보다 역설적 비판에 가깝다. 이씨는 박 대표를 비판하는 한나라당 내 중진들을 ‘뺑덕어멈’에 비유한 전 대변인의 글에 대해 “백번 옳은 말이요, 전여옥다운 체증이 싹 가시는 시원한 비판이며, 그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박 대표의 어려운 처지를 온 몸을 던져 돌파하는 전여옥 대변인의 용기는 충성을 이해득실로 계산하는 정치판에서 가히 살신성인의 경지”라고 비꼬았다.

이 고문은 나아가 “박 대표에 대한 전 대변인의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충성심은 대변인 자리에 연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 대표와 당을 위해서라면 몸을 바다에 던질 심청이의 비장한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후세 어느 누군가 전 대변인의 희생을 ‘효녀 심청’의 얘기처럼 감동적으로 자식에게 들려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꼬집었다.

전여옥 대변인 "차라리 논개가 되겠다" 이기명씨에 정면반박

한편 전여옥 대변인은 13일 자신을 ‘효녀 심청’으로 지목한 이기명씨에게 반박글을 보내 “심청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지만 차라리 논개가 되겠다”고 맞받아치며 전의를 불태웠다.

전 대변인은 "한국사회에서 개혁이란 이름을 팔며 개혁장사를 하는 사람들, 없는 사람을 팔며 없는 사람들을 속이는 낯두꺼운 정치인들, 돼지저금통으로 선거치렀다면서 그 측근이 불법선거자금을 받아 모조리 형무소에 들어가 있는 거짓을 모조리 청소하는 논개가 되겠다"며 노대통령 주변인사들을 겨냥한 공격을 퍼부으며, ‘테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대변인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 반발…한나라당 친박-반박으로 갈려 논쟁

한편 전 대변인의 홈페이지 글에 대해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국민생각, 푸른모임 등 소속 의원이 발끈한 뒤 “당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대변인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며 경거망동을 성토했다.

수요모임 대표 정병국 의원은 “연찬회의 발언들이 박 대표를 때리고 물러나라고 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박 대표를 생각해서 나온 것”이라며 “당의 대변인이 개인의 홈페이지에 쓴 글이라지만, 그렇게 반응했다는 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박 대표의 뜻으로 보지 않지만 대변인의 그런 행태는 박 대표를 위한 것이 아니며, 당을 망치는 것”이라며 “의원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지 못하는 그런 당직자는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화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번 연찬회에서 나를 위시한 동지들이 한 발언은 개인적 감정으로 누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애국심과 애당심에서 우러난 발언임을 인정하라”며 앞뒤 정황을 자르고 당 지도부에 문제제기한 의원들을 ‘뺑덕어멈’으로 비유한 전 대편인에게 불쾌한 심정을 표시했다.

홍준표 의원은 “당직자는 당무에 충신한 게 도리”라며 전 대변인의 신중한 행보를 주문했고, 이방호 의원도 “전 대변인의 행동은 가족주의나 온정주의에 의해 당을 끌고가겠다는 것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효녀 심청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할 것인가, 눈먼 봉사가 이끄는 집에 분란을 부르나

박 대표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전 대변인의 ‘살신성인’이 ‘효녀 심청’처럼 감동과 기적을 가져올 지는 미지수다. 현재론 삼각파도에 위태위태한 항해를 하고 있는 박근혜호의 위기를 전 대변인이 부추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에 공식적으로 몸을 담그기 전인 지난해 2월 24일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낸 적이 있다.

“나는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다. 박근혜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경력이나 정치활동을 볼때 그는 여전히 박정희의 그늘에 묻혀 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정치적 왕조’로서 딸 박근혜를 통해 일종의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영남권의 공주로서, 특정지역의 편애속에서 안주했다. 박근혜의 많은 것이 ‘거품’이었음이 드러났다. 한나라당이 ‘포스트 최병렬’로 박근혜의원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화약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다. 퇴색한 수구보수정당에 분칠을 하는 식이다. ”(2004.2.24 조선일보 인터넷사이트 [전여옥칼럼'포스트 최병렬'이 박근혜라니!])

눈먼 심봉사가 이끄는 정당? <느낌표>의 “눈을 떠요” 코너에서 배울 것

정치인 박근혜를 ‘유신공주’라고 공격하던 전여옥씨가 한나라당에서 유신공주와 한솥밥을 먹게 된 이후 스스로의 논리를 뒤집고 박근혜 대표를 위해 박대표의 정적들을 향한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차라리 논개가 되겠다는 발언은, 테러리스트로서 전대변인의 면모 그대로다. 전여옥 대변인은 박대표의 정적을 겨눈 테러리스트로서의 역할에서 박 대표 보호를 위한 ‘효녀 심청’으로 지목되었다.

‘효녀 심청’이 정말로 파도 험한 인당수에 자신의 몸을 던질지, 그 살신성인으로 평온한 바닷길이 열리고 눈먼 심봉사가 광명을 찾을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 내부와 외부의 진단 모두 ‘심봉사의 현실’에 일치하는 것이다. 기꺼이 논개가 되어 적장의 목숨을 노리겠다는 전 대변인의 말도, 짙게 드리운 죽음의 징조를 나타낼 따름이다. 심봉사는 안보이는 눈으로 자신의 집 안과 동리 안팎을 거닐 따름이었지만, 121석 거대정당의 대표가 심봉사와 같을 경우 당 내부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게 문제의 심각성이다. 21세기에는 시각장애를 <심청전>식으로만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느낌표>에서 보듯, 각막이식술도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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