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유권자가 되는 진가은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충남 계룡시 엄사면의 한 학교에서 고등학교 수업 때 썼던 페미니즘 관련 발표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진씨는 대선 성평등 공약으로 ‘학교에서의 성평등 교육 의무화’를 꼽았다. 계룡/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5년 전 19대 대선 때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번 20대 대선에서 후보자들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할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5년 사이 성평등이 퇴보한 걸까. <한겨레>는 이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심층 인터뷰할 유권자를 공모했다. 에스엔에스(SNS) 등에서 이를 알리자 반나절 만에 40여명이 신청했다. 나이·직업·노동조건·가족구성·성정체성과 지향이 다른 20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나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지금, 당장 성평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진가은(19)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년 전 ‘사이버 불링’(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게 발단이었다. 에스엔에스 비공개 계정을 통해 비난이 쏟아졌다. “남학생들이 ‘오늘 수업시간에 페미 나옴. 얘 보면 피하셈’ 같은 말을 했어요. 제 친구는 최근에 수능 끝나고 머리를 짧게 잘랐더니 ‘탈코르셋(여성에게 주어지는 ‘외모 규율’을 거부하는 움직임) 시작했냐’는 말을 들어야 했어요. 낙인찍히는 것처럼.”
젠더 폭력은 교실에서 공공연히 이뤄졌다. “한창 엔(n)번방 사태가 이슈화했을 때 남학생들이 ‘야, 이런 게 있대. 우리도 해보자’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남학생들은 피해자가 될 일이 없으니 이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진씨는 성교육을 넘어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학생들이 일부러 저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몰라서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성교육이요? 1년에 한 번 하는데 다 안 듣고 자습해요. 결국 우리가 커서 20대, 30대가 되잖아요. 정치인들은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고 정책 만들고 입법할 거고요. 성평등을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윤이슬(가명·24)씨는 이번 대선이 “여성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고 느낀다. 또래 여성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듯하다. 윤씨는 이런 단절감, 고립감은 자신을 비롯한 또래 여성의 정신건강 위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윤씨 역시 오랫동안 신경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또래 여성들이 일터에서 밀려나면서 위기는 악화하고 있다. 이는 자살률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를 ‘조용한 학살’이라고 부른다. 윤씨는 지난해 성별 임금 차별도 경험했다. 한 공공기관에서 같은 일을 하던 전임 남성이 비슷한 경력을 지닌 윤씨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나를 보호할 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씨는 ‘심리상담 장기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 무료 상담치료를 받고 좋아졌는데, 학교 바깥에선 치료 비용이 1회에 20만원 넘는 경우도 있어요. 저처럼 우울증을 앓는 친구 중엔 대학에 다니지 않는 친구도 있거든요. 청년 여성들이 원하는 만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 제도가 시급해요.”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도 문제다. “오빠가 고졸 노동자인데 보수를 지지합니다. 진보는 여성이나 약자만 챙겨서라고 해요. 오빠의 불안은 이해하는데, 불안의 이유가 여성은 아니잖아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계급 사이의 문제일 수 있는데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틀을 짜요. 고용 불안정과 채용 성차별, 육아 경력단절 같은 걸 바꿔야 하는데, 후보들은 출생률 얘기만 꺼내요.”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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