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설득하기는커녕 ‘역풍’ 부른 김건희의 ‘독이 된 사과’ 윤석열 지지율 하락세 가속…이재명에 10%p 뒤진 결과도 사과 이후 숙명여대 석사 논문 표절 등 추가 의혹 이어져
사건 조작·오류에도 사과하지 않는 검찰 오만함과 판박이 독재자 전두환·국정농단 박근혜, 사과 없는 정치의 전형 사과는 가장 민주적 소통 방식…국민 섬기는 태도 드러나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인의 사과는 정국의 향방을 가름하기도 하고 특정 정치인의 부침을 좌우하기도 한 오랜 화두입니다. 최근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계기로 다시 이 문제에 주목하게 됩니다.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이 정말 국민을 향한 것이었느냐 아니면 남편을 향한 것이었느냐, 또 질문·답변도 없이 입장문을 읽고 자리를 뜬 게 기자회견이 맞냐는 논란도 있는데, 이를 포함한 전체적인 평가는 국민들의 반응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김건희씨의 사과 당일(12월26일)을 전후해 사흘간 진행한 ‘차기 대통령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더불이민주당 후보 42.4%,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34.9%였습니다. 직전 조사보다 이 후보는 1.6%포인트 오르고 윤 후보는 6.9%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보수층에서 윤 후보의 교체를 바라는 응답도 67.4%에 이르렀습니다. 또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한 전국지표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 39%, 윤석열 후보 28%로, 오차범위 밖인 11%포인트 차이가 났습니다.(이상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건희씨의 사과가 윤 후보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윤 후보의 하락세는 더 확연해진 모양새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김건희씨의 사과 다음날인 27일 후보 직속 기구인 ‘새시대 준비위’ 유튜브 채널에서 “판단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내심 사과에 대한 국민 반응이 좋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은데요,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국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공적인 사과’의 핵심 요소 모두 빠진 ‘김건희 사과’
개인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관계, 이를테면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에서도 사과의 요체는 진정성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사과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 효과만 노린 얄팍한 ‘가짜 사과’ 말입니다. 미국 매체 <포브스>의 소통위원회 위원인 카일 스콧 박사는 공적인 사과가 진정성을 갖추기 위한 3가지 요소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잘못한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기, 변명이나 단서 달지 않기, 어떻게 책임지고 시정할지 명확히 밝히기.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김건희씨의 사과는 이런 요소들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첫째, 김씨의 입장문 중에서 자신이 잘못한 사실을 언급한 대목은 딱 한 문장입니다.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15년에 걸쳐 최소 5개 대학에 제출한 이력서에 허위 사실이 스무가지쯤 됩니다.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입장문에서 어떤 이력이 허위이고 아닌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을 뿐더러 추가 질의도 받지 않았습니다.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라는 말로 두루뭉술 넘어갔습니다. 없는 경력을 적은 것과 부풀린 것은 분명히 성격이 다르고, 잘못 적은 것과 고의로 거짓 사실을 적은 것도 엄연히 다른 사안입니다. 결국 김씨는 고의가 없는 ‘실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패턴으로 이력 부풀리기와 허위 이력 적어넣기를 반복했는데 고의가 없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잘 보이려고” 했다는 김씨의 말도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입니다. 김씨는 지난 14일 <YTN>이 허위 이력을 보도했을 때도 “돋보이려고 한 욕심”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취업을 목적으로 지원서에 허위 이력을 쓴 것은 그냥 “잘 보이려고”나 “돋보이려고” 한 거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김씨는 “잘 보이려고” “돋보이려고” 등의 말로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걸 부각시키려 한 것입니다.
재직증명서 위조 의혹도 그렇습니다. 고의성이 드러납니다. 김씨가 지난 2006년 한국폴리텍대와 수원여대에 각각 제출한 H컬쳐테크놀러지 재직증명서의 입사일이 서로 다릅니다. 또 재직증명서에 엉터리 한자 표기가 너무 많습니다. ‘주소'를 ‘住所'가 아닌 ‘主所'로 쓰고, ‘성명'도 ‘姓名'이 아닌 ‘姓明'으로 적었습니다. 회사에서 발급한 증명서라고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앞서 논란이 됐던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이사 재직증명서에도 근무 연도를 ‘2005월'이라고 표기하는 황당한 오기가 있었고, 전임 회장들이 모두 “김씨가 일했던 기억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기자회견 이후에도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김씨는 “일과 학업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고 변명을 달았습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과 허위 이력을 기재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까지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는 비겁한 변명입니다.
김씨는 사과 기자회견 이틀 전인 24일 <YTN>과 한 인터뷰에서 “제가 지금 거의 악마화 돼 있다” “갑자기 사람이 말하면 맥락을 끊고 딱 그 부분만 (보도)하면은 이게 얼마나 악의적이냐”며 언론 탓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불찰”이라고 한 사과 기자회견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YTN>은 이 인터뷰를 김씨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27일 공개했는데요, 혹시 김씨의 본심은 사과 기자회견이 아니라 이 인터뷰에 담겨 있던 건 아닐까요?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셋째,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떻게 잘못을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해 김씨는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씨의 허위 이력 논란은 이미 법적 문제로 비화했습니다. 사문서 위조, 사기, 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실제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고발된 김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는 적어도 ‘법적 책임도 감수하겠다’는 말 정도는 하는 게 맞았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검사 때 유사한 사건을 엄벌했던 사실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도 ‘자중하겠다’거나 ‘성찰하겠다’는 말로만 덮으려 한다면 책임있는 사과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진정성 결여된 사과가 ‘아이 빌리브’ 등 조롱 불러
김씨는 이렇게 사과의 핵심 요소들을 빠뜨린 채 입장문의 상당 부분을 윤 후보와의 연애담과 가정사, 남편에 대한 칭송, 남편에게 누가 되고 있다는 미안함 등으로 채웠습니다.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 좀 생뚱맞다고 느낀 게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김씨의 사과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반응도 그랬습니다. 윤 후보는 27일 ‘새시대 준비위’ 유튜브 채널에서 “(사과 기자회견이) 끝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고 하니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더라”며 “본인도 여자로서 남편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았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다수의 국민은 겉핥기식 사과에 실망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이 위로를 받고 싶어하고 남편은 이를 헤아려 위로를 해줬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적인 사과를 부부 사이의 사적인 에피소드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김씨의 사과를 풍자한 ‘아이 빌리브 김건희’ 영상이 유튜브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20년 해서 안다”는 이수정의 ‘황당 음모론’
여기서 잠깐 이수정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얘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위원장은 전에는 꽤 괜찮은 평가를 받던 인물인데요, 정치권에 들어간 뒤로 판단력이 많이 흐려진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이 김건희씨 사과 다음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보니까 되게 감성적이고, 어떻게 통곡을 안 하는지가 굉장히 의문이 들 정도로 사실은 뭐 눈물이 쏟아질 만한 대목이 많았던 걸로 보이거든요” “만약에 이런 종류의 허위나 왜곡이 있었다면 저희 남편 같으면 당장 저한테 화낼 것 같아요. 거짓말 했으니까. 그러면 사실 사과의 대상이 물론 국민이기도 하지만 남편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이 위원장의 발언,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 위원장은 앞서 지난 16일엔 같은 프로그램에서 ‘김씨의 허위 이력 보도가 얼마 전 목숨을 끊은 성남도시개발공사 간부 사건을 덮으려는 기획으로 의심된다’며 음모론을 펼쳐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 위원장이 제시한 음모론의 근거가 실소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20년 했다. 그러면 세상이 흘러가는 게 상당히 좀 눈에 보인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사과 직후 나온 ‘숙명여대 석사 논문 표절’ 의혹
사과 이후 김씨의 숙명여대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추가로 제기돼 사과의 진정성을 더욱더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논문 지도교수는 <jtbc> 인터뷰에서 “이 시절에는 그게(표절검사 프로그램) 없었다”며 “결국 논문 쓰는 사람의 양심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숙명여대는 김씨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이른 시일 내에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앞서 김씨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및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논란이 됐는데, 국민대는 검증시효가 지나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태도를 보였다가 교육부가 제동을 걸자 입장을 바꿔 내년 2월15일까지 논문 검증을 완료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의 명예와 평판이 걸린 문제인 만큼 각 대학이 어떤 조처를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룸살롱 검사’ 사과 약속도 안 지킨 윤석열의 ‘사과 기피증’
다시 사과 문제로 돌아와 볼까요. 이번엔 김건희씨의 사과가 주목을 받았지만, 윤석열 후보도 유난히 사과에 인색하고 그러다 보니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잦았습니다. ‘전두환 미화’ 망언으로 촉발된 ‘개 사과’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1일 1실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 발언을 많이 했지만 제대로 사과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면 밑도 끝도 없이 ‘공작’이니 ‘정치공세’니 하면서 되레 큰소리를 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장모가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22억여원을 편취한 혐의에 대해 법원이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과잉 수사로) 그렇게 보고 있다”(12월14일 관훈클럽 토론회)고 했습니다. 최근 장모가 또다른 범죄인 은행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자, 이번에는 “본인이 시인하고 인정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과잉 수사)는 아니다”면서도 “사법부 판결에 대해서 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논평하면서 그 흔한 유감 표명조차 없었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윤 후보는 검찰총장 때부터 이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룸살롱 술접대 검사’ 사건이 도마에 올랐는데, 윤 후보는 “수사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하고 국민께 사과드릴 일이 있으면 사과와 함께 정말 근본적 개선책을 강구해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수사 결과 해당 검사가 기소된 뒤에도 그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검찰총장을 퇴임했습니다. 또 검찰총장 당시 징계를 받자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하며 징계취소 소송을 내더니, 막상 법원이 “징계가 정당하고, 징계 사유가 중대해 면직 이상의 징계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리자 아무런 반성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사과 기피증’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사과하기를 꺼릴까요?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윤 후보가 검찰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은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기로 유명한 조직입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0월 대법원이 검찰의 ‘보복 기소’에 제동을 건 판결을 내렸을 때 검찰이 보인 반응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탈북민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게 들통나 관련 검사들이 징계를 받자 오래 전에 기소유예 처분했던 다른 사건을 끄집어내 유씨를 재기소한 것입니다. 법원은 검찰이 유씨에게 보복하기 위해 검찰권을 남용했다며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은 김오수 검찰총장은 “진정한 사과는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지만, (피해자의) 아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모호한 답변을 했습니다. 유씨를 재기소할 당시 부장검사였던 이두봉 인천지검장은 “성찰해 보겠다”고만 답했습니다. 참 뻔뻔합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과거의 잘못된 수사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한 것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유일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인혁당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유서대필 조작 사건 등 검찰의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직접 담당했던 검사들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직접 참여했던 검사 출신인 곽상도 전 의원은 정치권 진출 이후에도 일절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강압 수사로 15살 소년이 살인 혐의를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진범이 잡혀 자백까지 했는데도 검찰이 경찰 수사를 무산시켜 진실을 덮었던 사건인데요, 사건을 처리한 검사와 판사 가운데 사과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검사 중 한명인 김훈영 검사가 지난 8월 억울한 옥살이를 한 당사자에게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이야기가 미담처럼 들릴 정도로 검찰은 사과에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논썰] 김건희 사과는 윤석열 지지율 하락을 왜 못 막았을까
이순자 ‘15초 대리 사과’와 박근혜의 ‘사과 없는 옥중서신집’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법집행 권한을 위임받아 일하는 국민의 공복입니다. 이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러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고통을 안겨줬다면 무릎꿇고 사죄하는 게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도 사과를 극구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공복이 아니라 상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강한 검찰권을 국민한테서 빌려온 게 아니라 자기 소유라고 여긴다는 뜻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원리를 망각한 오만한 태도입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사과할 줄 모르는 악덕’은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선출된 공직자에게는 가장 큰 권력이 위임되고, 이들은 국민 앞에 직접 책임을 지는 게 민주주의 정치 제도입니다. 선출된 공직자와 유권자 국민의 관계는 한 번의 선거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잘못이 있어 국민의 비판에 직면했을 때 이를 수용하고 시정하는 과정의 첫 단추가 진솔한 사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사과는 어찌 보면 가장 고도의 민주적 소통 양식인 것입니다.
반면 독재자, 절대권력자는 국민 앞에 책임지지 않으니 소통할 필요도 없고 사과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사과하면 권위만 깎인다고 여길 것입니다. 우리 정치사에서도 민주주의가 껍데기에 그쳤던 시절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극명한 사례로, 전두환씨는 자신이 저지른 학살과 강압 통치에 대해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내 이순자씨는 영결식에서 ‘15초짜리 대리 사과’를 해또 한 번 국민을 우롱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중형을 선고받은 박근혜씨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특별사면된 24일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아울러 변함 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박씨는 옥중 서신을 모은 책을 출간한다는데, 반성과 사과는 없고 변명과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 즉 국민의 종복이라는 인식은 없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의 DNA만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들이 정치에 나섰을 때, 권력을 쥐었을 때 나라가 어떻게 불행해지고 국민이 어떻게 고통받는지는 우리 모두가 겪은 바입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후보들의 장단점과 잘잘못 자체를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한 후보들의 태도 또한 중요한 검증 포인트입니다. 바로 민주적 소통의 자질과 국민을 섬기는 태도를 검증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보들의 ‘사과’를 유심히 관찰하고 톺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은 대선 기간에도 후보들이 사과하기 위해 국민 앞에 서야 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디 사과의 요건을 갖춘 ‘사과다운 사과’를 하기 바랍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