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제트(MZ)세대는 왜 ‘공정’이란 이슈에 민감할까.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이란 무엇일까.
<한겨레>는 11월23~25일 여론조사업체 휴먼앤데이터와 함께 20대 초반~30대 초반의 남녀 28명을 네 그룹으로 나눠 진행한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통해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과 모병제 도입, 대학 입시 제도,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속에서 이들은 각자 ‘공정의 기준’을 드러냈다.
심층면접을 진행한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탈이념적이면서 현실적 요구가 다변화된 엠(M·밀레니얼)세대와 제트(Z)세대는 성별에 따라서도 관심사가 다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대안을 만들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부동층이 돼버린 2030세대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짚었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28명의 이름은 나이와 성별을 구분해 표시했다. ‘2초여1’은 ‘20대 초반 여성1’을 의미한다.
남녀 찬반 갈린 여가부 폐지…‘갈라치기’엔 비판적
심층면접에 참여한 이들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쏘아 올린 여가부 폐지 주장에 대해 성별로 견해 차이가 뚜렷한 편이었다. 그러나 폐지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으로 사안을 바라보지 않았고, 20대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권의 ‘갈라치기식’ 경쟁이 젠더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남성들은 대체로 여가부 폐지론에 기울어져 있었다. 2초남4는 “여가부는 보여주기식 평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부처에서도 관련 업무를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너무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2초남5도 “여가부가 성폭행 피해자를 방치해뒀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런 분들을 보호하라고 만든 부서인데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서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준석 대표가 여가부의 예산을 언급하며 폐지론을 들고나온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여성들은 폐지에 부정적이었다. 2초여4는 “여가부는 여성만 다루는 게 아니라 청소년과 한부모 가정 등 약자와 소외계층을 포용한다. 여가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성이기 때문에 폐지 이야기가 나오는 건 큰 문제”라며 “정책적으로 실패를 했으면 그 정책을 바꿔서 해결해야지 부처를 폐지하는 건 굉장히 게으른 정치”라고 했다. 2초여3은 “여가부 폐지는 시기상조다. 남녀 갈등 분위기 속에서 여성 문제에 매몰돼 편승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젠더 문제’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정치권이 지레짐작하는 ‘극단적 갈등’과는 거리감을 보였다. 여가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남성도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가 겪는 사회적 부조리를 개선하는 부처의 고유 기능은 유지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2초남2는 “미디어 (보도에 대한) 꼬투리 잡기 등 일부 필요 없는 부분을 축소하고 성범죄 (대책) 같은 부분은 더 강력하게 하면 (여가부 유지도) 괜찮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라는 이름 자체가 젠더 갈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이를 변경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2초여7은 “여가부는 안 좋은 것들만 이슈가 되지만 나름 하는 일이 있다. 이름을 바꾸더라도 기존의 역할은 유지하고 개편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치권이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갈라치기식 정책을 내놓으며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을 강하게 비판했다. 2초남6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준석 대표에 대해 “20대 남성과 이준석 대표가 동기화된 것이 나중에 정치적 자산이 되겠지만 2030 여성들에 대한 고려가 아예 없는 것 같아, 여성들에게는 분명한 악영향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2초남5도 “너무 2030 남성 표심을 의식해서 자꾸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남녀는 이번 대선에서 젠더 정책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봤지만 20대 후반, 30대 초반 참석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3초남5는 “너무 한쪽 편만 들어주면 다른 쪽의 표를 잃을 수 있다. 당연히 성평등이 와야 하고 흑인 인권 문제처럼 지금은 많이 부딪치는 과정이지만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양날의 검”이라고 말했다. 2후여5도 “나에게 페미니즘은 중요한 문제지만 양당 후보가 그걸 언급하는 건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아무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번 대선에서는 페미니즘 이슈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병제 관심 크지만…“현실성 떨어지는 포퓰리즘”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 남성들은 모병제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전시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강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성들은 대체로 모병제에 찬성했지만 가정환경이 어려운 이들만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제 곧 군대를 가야 한다는 2초남3은 “각 후보의 (군복무 관련)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다.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모병제를 공약했는데 이게 될지 모르겠다. 상당히 허황된 느낌”이라며 “북한이 비핵화를 완전히 이루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모병제로 바꾸겠다고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군대 공약에 있어서는 주택 청약 가점을 제시한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 더 괜찮지 않나”라고 말했다. 2초남4도 “군대를 너무 안 가고 싶어서 개인적인 입장에서 모병제가 너무 좋다. 그러나 월급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니까 그걸 국가 재원으로 다 충당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병역 의무를 마친 3초남1은 “군대 부조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모병제를 통해서 직업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지원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개선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후남2도 “코로나19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의무를 지웠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줬다. 국민의 의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는 보상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합당한 노동의 대가 부분에서 모병제를 찬성한다”고 말했다. 3초남4도 “요즘 군대 가봤자 배울 게 없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모병제로 해서 더 전문성을 기르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3초남3은 “모병제가 되면 장교급은 아니겠지만 부사관이나 병사 쪽으로는 결국 가난한 집안 사람들만 다 가지 않겠느냐”며 “종전선언도 안 한 상황에서 시기상조인 모병제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말했다.
모병제보다 차라리 “군가산점 제도를 다시 해주면 좋겠다”는 2초남3의 의견에 몇몇 여성들도 동의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뒤 군가산점제 도입 논의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2초여7은 “청춘의 한가운데에 2년 가까이 군대 가서 월급 50만원 정도 받고 일하는 거다. 다쳐서 평생 후유증을 가진 사람도 봤다. 군가산점은 분명히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2초여8도 “북한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병제로 바꾼다는 것은 너무 위험천만한 일이다. 군가산점제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2초여1은 ‘공정한 입시와 취업’에 관심이 크다고 했고 문제의 이면엔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는 “본질을 파고들면 교육 제도의 문제는 지방과 서울 간의 격차로 이어진다”며 “겉핥기식 정책이 아니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는 수시와 정시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지방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을 활용해 수시로 대학교에 합격한 이들 사이에서도 수능이 기준이 되는 정시 비중을 늘리는 문제에 있어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2초남5는 “학종으로 대학교에 들어오면서도 ‘내가 가도 되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지역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 건 좋지만 공정성으로 봤을 때 잘하는 사람이 가는 것도 맞기 때문에 정시를 어느 정도 확대할 필요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초남4도 “나도 지방 출신이지만 정시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국에서 평등하게 대학교를 보낸다는 것과 공정은 다른 부분이다. 정시로 바꾸면 강남 3구에서 (좋은 대학에) 더 많이 가겠지만 실제로 잘하는 사람이 잘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정한 시험’으로 ‘능력’을 확인받고 이로 인한 기회의 획득을 ‘공정’이라고 보고 있었다.
반면, 지방에서 학종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2초여7은 “충분히 공정한 기회를 받을 수 있다”며 학종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학종의 취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준비했다. 교외 활동이 금지돼 있어서 교내 활동 안에서 발표를 하거나 상장을 받았고, 수학능력시험보다는 면접에 자신이 있었다”며 “학종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생기면서 정시로 깔끔하게 시험을 보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공감하지만 감시체계가 잘돼 있다면 학종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기회’인 대학 입시에서 출발선이 다른 현실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어떤 것을 ‘진정한 능력’으로 봐야 하는지 시각은 다양했다.
입시에 민감한 청년 세대가 자신들의 역린을 건드린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이들에게서는 ‘정의’의 이미지로 대변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교육 세습’을 벌인 사실에 분노를 드러냈다.
2후여3은 “명백히 이 시대에 사는 청년들 입장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공정하지 못했다”며 “다른 사람들도 다 했을 게 뻔한데 재수 없게 걸려서 매를 좀 더 세게 맞은 측면이 있지만 이는 본인이 깨끗한 척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입시생이었던 2초남5도 “아무리 당시 사회에서 통용됐다고 해도 (부모가 입시에) 개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정유라도 엄청나게 털렸으니까 비슷하게 털리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이들의 배신감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으로 향했다. 2초여3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당선됐을 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도 ‘모두가 개천에서 난 용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해놓고 뒤에서는 자식을 의사 만들다 걸렸다는 것 자체가 배신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했다. 조 전 장관이 2012년 트위터에 “중요한 것은 (개천의)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 쳐다보며 출혈 경쟁 하지 말고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말했지만 자신의 딸은 편법을 사용하면서까지 ‘구름 위로 날아오르게’ 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3초남3은 “민주당이 실드를 많이 쳤는데 과연 국민의힘에서 저런 사건이 터졌어도 저렇게 행동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정치적인 의도로 과도한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2초남4는 “당시 진짜 평범한 서민 입장에서 입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을 가지고 저렇게 딸의 입시에 개입했던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그 정도 비리는 다른 국회의원도 많이 했을 거다. (조 전 장관만) 이렇게 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윤 전 총장의 수사는) 정치적 행보였다”고 했다. 2초남1도 “조 전 장관이 명백히 잘못한 게 드러나긴 했지만 (당시 윤 총장이) 유독 질타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상황을 보면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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