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부겸을 오래 지켜본 지인들의 감정은 ‘의아함 반, 안타까움 반’이다. ‘좋은 스펙에 친화력과 학습능력, 정치적 스토리까지 갖췄는데, 대중 정치인으로는 왜 그렇게 안 뜨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권에 희소한 티케이(TK) 출신으로, 국회의원 4선을 발판 삼아 대통령 후보직까지 도전했지만, 당원과 대중들 평가는 호의적이던 여의도의 그것과는 온도 차가 확연했다. 2017년 대선 도전 실패 뒤 지난해 총선에서마저 낙선해 정치적 갈림길에 선 지난해 5월, 고심 끝에 출마한 당 대표 선거는 경쟁자가 하필 ‘대세론’의 돛을 단 이낙연 전 총리였다. 참패였다. 상처투성이 김부겸에게 1년 뒤 들어온 제안은 전임자의 대선 도전으로 빈자리가 된 국무총리직. 그의 성정을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 장관 경험이 있고 대야 관계도 원만한 그를 임기 말을 동행할 ‘화합형 총리’에 적격이라 본 것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은 김 총리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지난 19일 만났다. 위드 코로나 전환에 따른 병상수급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긴급 간담회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요소수 사태로 불거진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 논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갈등, 야당이 제기하는 ‘선거 중립’ 위반 시비, 증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대선 레이스 등 묻고 싶은 현안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하나같이 김부겸의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둥글둥글했다. 청와대와 행정부 공무원들 시선을 두루 살펴야 하는 정권 말 정치인 총리의 처지와도 무관해 보이진 않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선 국무총리란 자리가 참 애매하다. 대통령이 행정수반인데, 총리가 꼭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대통령제 국가라지만, 어떻게 국정 전반을 대통령이 도맡아 하겠나? 과거보다 정부 하는 일이 늘고 관료 조직도 커진 상황에선 총리제 자체가 갖는 긍정성이 있다.”
―당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겨주겠다고 했는데.
“이낙연 총리는 실권을 갖고 ‘책임 총리’로서 역할을 한 편이다. 그런데 나와 정세균 총리는 코로나 시국이 겹쳐 대통령이 위임해준 권한을 그만큼 행사하지 못했다.”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도 유명무실하다.
“각료 제청권이란 게 대통령이 물으면 의견을 밝히는 수준인 거 다 알지 않나.”
―임기 말이 되면 관료 사회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요소수 사태의 원인으로 복지부동을 지목하는 이들도 있다.
“정부 일이라는 게 잘하면 티가 안 나고 잘못하면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진다. 요소수 사태는 조기에 대비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분명히 있다. 다만 임기 말이라 그랬다기보다, 대외 조건이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공급 체인망 자체를 완전히 새로 짜고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교역은 거의 30%를 중국에 의존한다. 거기 우리의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전략물자 같은 경우는 충분량을 비축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다만 요소수는 그러지 못했다.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한쪽 수입선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들이 있다. 이 기회에 다 점검을 할 생각이다.”
김부겸 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재명 후보가 전국민 지원금을 거둬들였다. 중간에서 역할을 좀 하셨나?
“민주당 의원 몇 분이 찾아오셨길래 상황을 충분히 설명드렸다. ‘추경 편성은 쉽지 않고, 금년 초과세수에서 어느 정도나 가용한지 판단하려면 내년 4월 결산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올해만 정부가 100조원 정도를 추가로 빚을 낸 상황이라 당장 쓸 수 있는 돈도 많지 않다. 이해해달라.’ 그랬더니 수긍하시더라.”
―전임 정세균 총리는 재난지원금으로 당정 갈등을 겪을 때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여당 편을 확실히 들어줬다.
“3차 재난지원금 때도 당장 피해와 고통을 당하지 않은 분들까지 정부 지원을 해주는 건 무리가 있어 88%로 결론 낸 거다. 전국민한테 주자는 분들은 그게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내수 회복의 마중물이 되는 경제정책이라고 했지만,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시작되는 시점에 그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앞세워 다른 부처 위에 군림한다는 불만도 크다.
“부처마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나랏돈 끌어쓰기 시작하면 감당 못한다. 국채 발행하면 되지 않냐고? 그게 다 자식 세대한테서 빌려 쓰는 거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맞고, 그러려면 누군가 악역을 해야 한다.”
―지금 같은 초유의 재난 상황에서 ‘균형 재정’이란 평시 기준만 고집하면 곤란하지 않나?
“코로나 위기 넘으려고 재정 지출을 막 키운 나라들이 내년 예산은 어떻게 했는지 봐라. 10% 넘게 줄였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해서 지출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분명한 건 재정을 막 풀었던 나라들은 대체로 기축통화를 가졌거나 거기 준하는 통화를 가진 나라들이라는 거다. 우리 원화가 어디 그런가.”
―총리이기 전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정권 임기가 끝나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당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원 신분이니까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만, 정치인 생활은 이제 마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국민들한테 큰 사랑을 받았으니, 정치 말고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한다.”
―1958년생이니 만 63살이다. 그 나이에 은퇴하는 정치인은 없다.
“호적에 오른 출생연도가 그런 거고. 실제 나이는 그보다 많다.”
―그래도 60대 중반이면 정치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변화의 폭과 속도가 얼마나 눈부신가. 우린 그걸 책으로 읽어 겨우겨우 따라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정치는 그런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뒤로 빠지는 게 맞다.”
―‘김부겸, 정계 떠난다’, 이렇게 타이틀 뽑혀도 문제없나? 비슷한 연배의 다른 분들이 보면 뜨끔하겠다.
“너무 그리 선정적으로 쓰진 말고. 지난 청문회 때도 ‘마지막 공직이라 생각하고 총리직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했으니 이번처럼 정부와 여당이 첨예하게 부딪칠 때도 눈치 안 보고 소신을 펼칠 수 있었던 거다.”
―이번 대선은 캐릭터가 워낙 센 두 사람이 맞붙다 보니, 불안과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지금처럼 격랑이 몰아치는 시대엔 강한 리더십에 대한 희구가 있기 마련이다. 시대정신이 거기에 가 있으니, 그 두 분도 후보가 된 것 아닌가.”
―그 논리면 5년 뒤 다음 순번엔 포용적이고 부드러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있을 수도 있겠다. 김부겸 같은.
“하하. 5년 뒤엔 거기 맞는 또 다른 누군가를 역사의 신이 예비해두겠지.”
―선거일까지 100일 남짓 남았는데, 정권교체론이 우세한 구도다.
“임기 말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건 ‘5년짜리 정권’의 숙명 같은 거다. 변화가 워낙 빠르고 정치와 사회 모두 양극화가 극심하니 정권을 잡아도 임기 안에 약속한 걸 지키고 실적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선거에 들어가면 후보 요인 같은 게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지금 여론조사 수치로 예단해선 안 된다. 2012년 대선 때도 정권교체론이 50%가 넘었지만, 여당 후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
―촛불과 탄핵이라는 준혁명적 변화에 힘입어 등장한 정권이니, 다른 5년짜리 정권들과는 달랐어야 했다.
“출범이 극적이었고, 그만큼 기대 수준이 높았던 건 맞지만 부동산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임기 마지막 해에 지금 수준의 국정 지지율을 지키는 건 역대 어느 정권도 못 한 일이다.”
―80%가 넘던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는데,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처럼 말하면 얼마나 공감할까?
“역대 정권의 임기 말이 불행했던 건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한테 그런 게 있었나? 대통령의 정직함, 선함에 대한 국민의 기본 신뢰가 있는 거다. 지지율이 떨어진 배경에는 개혁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도 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보다 개혁의 대의와 정당성을 정권 스스로 훼손한 게 크지 않았을까.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그랬다.
“시간이 지난 특정 사건들을 콕 집어 민심 이반의 계기가 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청년들이 왜 이렇게 분노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나에게 기회가 없다’는 게 가장 크다. 자기들은 일자리가 없어 기회 자체를 못 잡는데, 부모 세대는 집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고 나면 몇천만원씩 자산이 늘어나니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거다. 정권에 대한 실망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세대 갈등 요인이 크다.”
―지금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이가 정권교체를 부르짖으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게 정권의 실패가 아니면 뭔가?
“국정 운영에서 그런 부분들에 좀 더 세심했더라면, 또 당시 그 일을 책임지고 있던 분들이 좀 더 탄력적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윤석열 후보는 정부가 선거 중립 의지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여당 의원 신분인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은 교체하고, 총리는 당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행안부 장관 하면서 지방선거 행정을 총괄했는데, 단 한 건도 시비가 없었다. 이번엔 총리로서 내각을 그렇게 관리할 거다. 다만 이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고 여야 간 공방이 거세지면 각 당 대표들을 만나 정확하게 요구 사항을 들어볼 작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 요구를 받아들여 선거중립 내각을 꾸린 전례가 몇번 있다.
“최근엔 다르다. 이명박 정권 말기,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당적을 갖고 선거 행정을 지휘했는데 문제가 안 됐다.”
―어차피 총리 마치고 정치를 안 할 생각이면, 굳이 당적을 지킬 이유도 크지 않아 보이는데.
“대통령도 ‘책임 정치’ 하려고 당적을 지키는 마당에, 참모인 우리가 탈당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게다가 인사청문회 해야 하는 국무위원을 지금 바꾸라고 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김부겸 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대선에 나섰을 때는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개헌해야 한다는 지론엔 변함이 없나?
“1987년에 6공화국 헌법 만들 당시보다 사회적 기본권이 크게 확장됐다. 그걸 공동체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집어넣을 때가 됐다. 게다가 지금의 권력구조는 대통령한테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모든 책임을 대통령한테만 묻는 구조다. 이건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지난번에 문 대통령이 개헌안 냈더니 국회가 손도 안 대고 폐기시켜 버리지 않았나.”
―굳이 개헌하지 않아도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식 등으로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임시 처방은 되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 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기 비전을 밝혀야 한다. 개헌을 하되 적용 시점은 국민 동의를 구해 차차기 정권 출범 뒤로 명문화하는 방법도 있다.”
―총리직 마치고 정치 대신 하겠다는 게 개헌 운동인가?
“운동? 아니다. 봉사를 해야지, 봉사.”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문자폭탄에 시달리는 등 ‘팬덤 정치’의 폐해를 몸소 겪었다.
“공화라는 게 뭔가?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책임을 지고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거다. 팬덤 정치는 공화를 해친다.”
―그걸 일탈이 아니라, 유권자의 능동화, 참여의 확대라고 긍정 평가하는 분들도 있는데.
“틀렸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기들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패거리 지어 윽박지르는 게 어떻게 공화이고 민주주의인가?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를 한 나라들에선 그런 걸 정치 문화로 인정조차 안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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