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첫 보도한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는 23일 오전 <한겨레> 인터뷰에서 “진실은 시간을 따라 흐르기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첫 보도한 인터넷언론 <뉴스버스> 사무실은 서울 마포 한강 변의 17평짜리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직원이라야 대표인 이진동씨 빼고 기자 두 명과 행정을 담당하는 이가 전부다. 이진동씨가 대표와 발행인, 편집인을 도맡아하면서 기사까지 직접 쓴다고 했다. 호칭을 뭐라고 하면 좋겠냐고 묻자, 좀 생각하더니 그냥 ‘이진동 기자’로 불러달라고 했다 .
기자로서 이진동의 경력은 화려하다. 2005년 전직 국정원장 두 명을 감옥으로 보낸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한국기자상을 받았고, 2007년엔 신정아-변양균 사건을 특종 했다. 2016년엔 최순실씨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해 국정농단 사건 보도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지난 2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뉴스버스>가 터뜨리면서, 대선 판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을 물 위로 끌어올렸다. 요즘 대장동 이슈로 좀 가려지긴 했지만,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은 언제든지 다시 타오를 수 있는 활화산과 같다. 추석 연휴 직후인 23일 오전 <뉴스버스> 사무실에서 이진동 기자를 만났다.
― <뉴스버스 >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한 지 한 달 가까이 됐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반박과 제보자인 조성은씨 기자회견, 조씨와 박지원 국정원장과의 만남이 공개됐고, 공수처 수사 착수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흘러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윤석열 후보가 반박했다고 하셨는데 반박은 아니고요, 대응 차원의 정치적 공세를 폈다고 저는 봅니다. 이게 실체가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 단계에서 진상 규명이 될 거라고 봅니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사건이거든요,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그래서 (진상을 밝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 지금까지 드러난 거로 보면 지난해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고발장을 김웅 국회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은 매우 커 보입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발 청부는 확인된 것으로 봅니다. 김웅 의원이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인 조성은씨에게 대검에 전달하라고 고발장을 전달한 순간, 고발 사주는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은 팩트에 따라 ‘고발 사주’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게 실행이 됐건 안됐건 이건 검찰의 정치공작입니다. 실행이 안 됐다면 정치공작이 미수에 그친 것일 뿐 고발장을 야당에 건넨 정치공작 행위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미래통합당에 전달한) 고발장의 피해자가 윤석열 본인과 부인 김건희씨, 한동훈 검사장으로 돼 있는 점은 사익을 위한 검찰권 행사, 곧 검찰권 사유화로 보는 게 정확한 성격규정일 겁니다.”
― 그런데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고발 사주를 지시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는 거 아닌가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라는 자리 자체가 독자적으로 뭘 하는 자리가 아니고 검찰총장을 위해 있는 자리거든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검찰총장 지시 없이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제가 검찰 출신 인사 여럿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그렇게 말하더군요. 윤석열 총장이 지시했다면 그건 결국 수사를 통해 나올 수밖엔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한동훈 검사장과 손준성 전 수사정보정책관의 휴대폰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래통합당에 고발 사주를 한 시점을 전후해) 한 검사장과 손 수사정보정책관, 대검 대변인 세 사람의 단체카톡방에서 1백 차례가 넘는 대화가 오갔거든요. 한동훈 검사장 휴대폰은 압수는 돼 있지만 아직 포렌식이 안된 상태입니다. 거기 들어있는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겠죠.”
― 2016년 티비(TV)조선에 있을 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했는데, 최순실 사건과 이번 사건을 비교한다면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릅니까?
“가장 큰 차이는, 최순실 사건은 워낙 방대한 사건이었구요, 정말 힘들게 취재한 사건이거든요. 그에 비하면 이번 건은 구조가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점도 있어요. 2016년 당시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취재원이자 제보자였던 고영태씨가 나타나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그뒤 고씨는 언론 여기저기 등장하며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이른바 ‘김수현 녹음파일’에서 “틀을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다 우리 거”라는 고영태씨의 말 한마디가 드러나면서 우파 진영에서는 ‘고영태의 기획’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고영태가 케이스포츠재단을 가로채기 위해 최순실을 둘둘 말았다, 최순실이 오히려 피해자다’, 이런 음모론을 들고나옵니다. 그 뒤 고영태 기획설이니 윤석열 기획설이니 하는 ‘탄핵 기획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서울 도심에서 수십만명이 시위를 벌이는 상황까지 됐죠. 고영태씨도 많은 고초를 치렀고요.
이번에도 비슷합니다. ‘고발 사주’ 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조성은씨가 “9월 2일이란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날짜가 아니다”고 한 인터뷰 발언을 근거로 정치공작 주장이 나옵니다. <에스비에스(SBS)> 보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조성은씨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은 박지원 국정원장과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딱 그 한 문장을 꼬투리 잡아서 정치공작설을 펴는 거죠. 저도 깜짝 놀랄 만큼 이 공작설을 믿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이런 취재를 자주 해봐서 아는데, 취재원들의 심리적 반응이나 패턴이 유사하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취재원이나 제보자는 주목받는 상황이 되면, 다양한 질문이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주인공처럼 행동하다 확인된 사실이 아닌 자기만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때론 과장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들이 일파만파 커져 나가면 수습할 자신이 없으니 그냥 몰고 가거나, 또는 수습 과정에서 혼란을 자초하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걱정 안 합니다. 제가 (2016년에) 최순실 건을 보도하니까 과거 정치권 경력을 트집 잡아 ‘이진동이 친이명박계라서 박근혜를 치려고 기획했다’고 (보수 일부에서) 말을 했는데, 대통령 탄핵이 어디 그런 기획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항상 갖고 있는 생각이 있어요. 진실은 시간을 따라서 흐른다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거든요. 과거 최순실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박지원 국정원장과는 만난 적이 없습니까 ?
“전혀 없습니다. 제가 호남 출신이니까 알지 않겠냐고 하는데, 따로 만나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페이스북에도 썼는데, 박지원 원장이 많은 사람을 공관에 초청해서 식사했다던데 저는 초대 대상도 아니었고요, 제가 취재 대상이 될 분들과는 누구를 만나고 가깝게 지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닙니다. 취재에 필요한 사람만 필요한 범위 내에서 주로 전화로 접촉합니다. ‘박지원 공작설’을 해소하는 방법은, 공수처에서 검찰의 고발 사주와 박지원 공작설 두 개를 같이 수사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특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는 그렇게 봅니다.”
― 2008년 조선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 떨어졌습니다. 이진동 기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정치에 뛰어든 겁니까?
“권력 비리를 취재하다 보면 늘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개선되는 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직접 나서서 바꿔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큰 특종을 할수록 누군가에겐 더 큰 상처를 입히게 되더라고요. 2005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보도의 여파로 국정원 2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고, 다른 국정원 2차장의 자녀 역시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있었어요. 그분들의 비극적 선택이 저와 직접 연관된 건 아니지만, 제가 업을 많이 쌓는 것 같아서 기자 그만둬야겠다, 그래서 정치에 도전했는데 결국 ‘허업’(虛業)만 또 쌓은 셈이 됐습니다. ”
― 그때 이진동 후보와 당선자인 홍장표 친박연대 후보와의 표차는 1900표에 불과했습니다. 그 정도면 다음에 다시 선거에 도전해볼 만한데 왜 정치를 그만뒀습니까?
“사실 2008년 당선된 홍장표 후보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가 돼 이듬해 10월 재선거에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천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군요. 그건 2008년 정치입문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주역으로 소장 개혁파였던 정두언 의원이 밀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는데, 2008년 공천을 받고 먼저 한 일이 엠비(MB)의 큰형 이상득 의원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 모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정두언 의원이 주도했는데, 이게 실패했죠. 결국 친이 주류의 눈 밖에 나서 재선거 공천을 못받은 겁니다. 변화를 만들고 싶어 정치권에 들어갔는데 계파의 벽이 너무 높은 걸 실감한 거지요. 그래서 아들과 2주간 히말라야 산행을 가서 마음 정리를 하고는 미련 없이 정치권을 떠났습니다. 제 성격이 좀 그렇습니다. 제가 티비(TV)조선을 그만둘 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조선일보에서 혜택받은 것도 있고 기여한 것도 있는데 오늘로써 인연은 다 끝났다, 그렇게 말하고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까지 출마했는데 2016년 케이스포츠재단 문제를 첫 보도 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물꼬를 텄습니다. 이번엔 국민의힘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곤경에 빠뜨리는 특종 보도를 했습니다. 이건 그냥 우연인 건가요?
“질문에 선입견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출마 경력만 보고 저를 판단하는 건 선입견입니다. 보수 쪽에서는 제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좌파로 모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일이냐 아니냐의 판단에 따라 취재 보도할 뿐이지, 어떤 정파성을 갖고 한 건 아니거든요. 물론 정파적으로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결과로서 탄핵된 것이지, 제가 보도를 했기 때문에 탄핵된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후보도 과거 행적과 관련한 보도의 결과로써 곤경에 빠진 것이지, 일부러 곤경에 빠트린 보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문제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보수 언론은 그런 보도를 안하려고 하거나 축소하고, 반대쪽에선 그 반대 경향을 보이는 게 저는 문제라고 봅니다.”
― 검찰 출입을 했는데 기자로서 검사 윤석열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또 지금의 정치인 윤석열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과거 변양균 -신정아 사건 당시 (윤석열 검사에게) 전화 취재를 한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외엔 따로 차를 한잔하거나 식사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그래서 직접 평가를 하긴 그렇습니다. 뛰어난 특수부 검사라고 알고 있고요, 다른 검사들과 기자들 평가에 의하면 선이 굵은 편이고 보스 기질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 중립을 위해 검찰총장 2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데,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에 옷 벗고 나와 대선 출마를 하는 건 그동안 해온 말에 비추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검찰총장 시절 떠들썩하게 했던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그럼 다 뭐가 됩니까. 검찰총장의 대선 직행으로 그동안 검찰에서 했던 수사의 명분이 다 퇴색했다고 봅니다. 본인은 검찰주의자라고 하는데, 검찰주의자면 끝까지 법과 원칙을 주장하면서 검찰총장직을 지켰어야죠.”
― 큰 특종을 많이 했는데, 기자로서 자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직관력이라고 봅니다. 그건 그냥 생긴 게 아니고, 제가 사회부 기자 시절에 현장을 많이 다니면서 경험을 통해 쌓인 거 같아요. 저는 검찰 출입할 때 검찰청사 앞에서 억울하다고 혼자 피켓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얘기도 다 들어서 기사를 쓰고 그랬어요. 물론 그런 기사가 신문에 잘 실리지는 않죠. 그렇게 취재를 하면서 팩트에서 본질을 보는 직관력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 2006년에 정대택씨 기사를 쓰셨더라고요. 그때는 김건희씨가 윤석열 전 총장과 결혼하기 전이라 김건희씨나 어머니인 최아무개씨도 유명하지 않을 때인데요, 정대택씨 기사는 어떻게 쓰게 된 겁니까?(정대택씨는 윤 전 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와 동업했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무고죄로 구속됐다)
“사실 신문사에서 그런 건 대개 기사로 다루지 않죠. 정대택씨나 최씨나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니 그냥 일반인 송사사건인 셈이거든요. 정대택씨가 구속된 뒤에 동생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저를 찾아왔어요. 자료를 굉장히 많이 가져왔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봤죠. 지금은 워낙 유명한 사건이 돼서 정리본도 나돌고 하던데 그때는 정말 사건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죽 보니까 정대택씨가 많이 억울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고, 법원 판결까지 난 사건이니까 경찰, 검찰, 판사까지 다 취재했죠. 그런데 신문에서 어디 그런 걸 실어주나요, 안 실어주죠. 그래서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제목이 ‘위증 믿고 수사·재판 잘못했나’였는데, 마침 신문사 온라인팀에서 구미가 당겼는지 제 블로그 기사를 온라인에 가져다 실었습니다. 신문 지면엔 안실리고 온라인에만 실린 거죠. 그 김건희씨가 나중에 윤석열 검사와 결혼해서 이런 상황까지 오다니, 정말 운명이란 게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뉴스버스>가 6월 21일 창간했으니 이제 100일이 됐습니다. 인터넷 언론이 쉽지 않을텐데, <뉴스버스>를 만들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독립언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돈을 대겠다는 독지가도 있었구요. 2016년에 티비조선에서 최순실씨 특종을 했는데, 이걸로 보수 쪽에서 공격받고 시청률이 떨어지니까 국정농단 보도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좀 했죠. 그런데 제 개인적인 사건 (이 기자는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고, 이 의혹을 보도한 <월간조선> 기자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손배 소송을 진행 중이다)으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의혹을 벗어나게 돼서 이번에 <뉴스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정파성 없이 오로지 팩트와 독자를 중심에 놓는 언론이 목표입니다. 쉽지는 않죠. 석 달 동안 후원금 들어온 게 한달 운영비 정도 됩니다. 그래도 마음은 편합니다.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전에 신문사 있을 때는 국장이나 그 윗분들 설득해서 기사 내보내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런 언론이 자리 잡으려면 저작권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됩니다. 포털에 들어가면 기사 베끼기는 다반사고, 블로그나 그런 데 (언론사의 단독이나 기획기사가) 널려 있으니까요. 좋은 저널리즘이 살려면 포털이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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