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입니다. 9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는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9개월은 안정적인 나라의 9년과 맞먹습니다.
대선 구도 자체가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양자 대결 구도가 될지, 다자 구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후보 윤곽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여당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앞서 있지만, 본격적인 레이스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지도가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전 총장은 대선에 출마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선주자가 아닙니다.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은 여론조사에서 5%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당이 이기면 더불어민주당이 10년 집권하는 것입니다. 야권이 이기면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정치적·역사적 의미가 절대 작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여당이 이길지 야권이 이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을 조망(眺望)이라고 합니다. 제가 최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어떤 모임에 가서 20대 대통령 선거를 거칠게 조망해 본 일이 있습니다.
몇 가지 지표, 주요 변수, 여당 사정, 야권 사정 등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20대 대통령 선거판을 좌우할 것인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간담회 한 차례로 넘기기에는 좀 아쉬워서 이번 주 정치 막전막후로 소개합니다.
먼저 지표입니다. 야권에 유리한 지표가 있고 여당에 유리한 지표가 있습니다. 2017년 5월9일 대통령 선거 후보별 득표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41.08%
홍준표 24.03%
안철수 21.41%
유승민 6.76%
심상정 6.17%
한겨레 자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6년~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의견이 대략 75%였습니다. 탄핵에 동참했던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네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75.42%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민심과 촛불 민심이 고스란히 대선 후보별 득표율에 반영된 셈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이합집산을 거친 끝에 지금은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세 사람이 반문재인 연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내년 대선에서도 아마 손을 잡을 것입니다.
세 사람의 지난 대선 득표율을 합치면 52.2%입니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과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을 합쳐도 47.25%밖에 되지 않습니다.
2017년 대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내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야권에 유리한 지표는 또 있습니다. 한국갤럽에서 ‘다음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를 매달 묻고 있습니다. 5월 첫째 주 결과는 ‘여당 후보 당선’(현 정권 유지) 36%, ‘야당 후보 당선’(정권교체) 49%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지난해 가을에는 현 정권 유지 의견이 높았는데, 아파트값이 치솟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이 격화하면서 11월부터 뒤집혔습니다. 그 이후 엘에이치 사태와 4·7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격차가 확 벌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지표조사 5월 셋째 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는 긍정 36%, 부정 54%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여론조사 수치가 여당에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당 지지도는 여론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당이 더 높게 나타나는 조사 결과도 많습니다.
전국지표조사 5월 셋째 주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1%, 국민의힘 23%, 국민의당 5%, 정의당 4%, 열린민주당 4%, 태도 유보(없다+모름/무응답) 31%입니다.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전국지표조사 5월 셋째 주 대선후보 적합도는 이재명 25%, 윤석열 19%, 이낙연 10%, 홍준표 4%, 안철수 3%, 정세균 2%, 유승민 2%, 심상정 1%, 추미애 1%, 황교안 1%, 김부겸 1%, 없다 23%, 모름/무응답 7%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여기서 여당 후보들(이재명+이낙연+정세균+심상정+추미애+김부겸) 수치와 야권 후보들(윤석열+홍준표+안철수+유승민+황교안) 수치를 더해봤습니다. 경선이나 후보 단일화를 거쳐서 여당과 야권에서 각각 한 사람씩만 최종적으로 남을 것으로 가정해 본 것입니다.
여당은 40%, 야권은 29%, ‘없다+모른다’는 30%였습니다. 부동표가 많긴 하지만 여당이 앞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표만 봐서는 여당이 이길지 야권이 이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에는 2022년 3·9 대선에 작용할 수 있는 중장기적 변수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코로나19 변수입니다.
9월까지 국민 70% 백신 1차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질 것입니다. 그러나 11월에 집단면역이 형성될 것인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변이바이러스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코로나 방역에도 성공하고 백신 접종에도 성공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공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 대처는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내년 3·9 대선의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대외관계 변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외면하고 중국의 눈치만 본다는 이른바 보수 야당과 분단 기득권 세력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입증됐습니다.
머지않은 시일 안에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고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미 협상의 성과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나오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대외관계에서 쌓은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내년 3월 대선에서 여당에 호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은 대외관계와 국내 선거를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총선 사흘 전에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발표했지만, 선거 결과는 여당의 패배였습니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지방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장평화 쇼라고 비판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국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자멸이었습니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 변수가 있습니다.
대선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입니다. 대통령 임기 도중에 치르는 국회의원 총선거나 지방선거는 정권 심판 선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권자가 회고 투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차기 리더십을 창출하는 대축제입니다. 유권자도 미래를 보고 투표하는 전망 투표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현직 대통령이 앞으로 나서면 여당 후보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대통령들이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것은 선거 중립이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정국의 중심에서 옆으로 비켜서야 여당 후보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 이번에는 여당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 연기론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1등을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선 연기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외부로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더 완강하게 경선 연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선 일정이 흐트러지면 자칫 자신의 독주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송영길 대표가 이끄는 당 지도부의 허약한 리더십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는 ‘비문’ 송영길 대표과 ‘친문’ 다수 최고위원들이 동거하는 체제입니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 갈등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신속히 대선주자 경선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 당내에서 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최근 상황은 어떨까요?
이재명 경기지사는 말 그대로 ‘질주’하는 분위기입니다.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대거 이재명 지사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국회의원 경험은 없지만 그게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는 새로운 경로를 하나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발 악재의 불안감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형수에게 험한 욕을 했던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문제가 불거지며 ‘김부선’(김포-부천선)이 언론에 자꾸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대선 비전으로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제시했습니다. 시도별 신복지포럼 창립식에 참석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지지도 상승세에 고무된 분위기입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야권에서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는 김두관, 박용진, 이광재 의원도 있습니다. 지지도가 낮지만,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강점을 활용해 경선 레이스에 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광역단체장 중에서 김경수 경남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최문순 강원지사도 있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대법원 판결이라는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있습니다.
야권 상황은 좀 복잡합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5·18에 대해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는 등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높은 지지도는 ‘반정치주의’와 ‘반문재인 정서’가 만들어낸 일종의 거품입니다. 반정치주의는 성공한 전례가 없습니다. 내년 대선에 문 대통령이 출마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윤석열 전 총장 지지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권도 “윤석열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며 대안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최재형 감사원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바로 그런 배경입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비감이 조금씩 걷혀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의 발언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떻게든 ‘킹메이커’로 복귀해야 한다는 초조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김종인 매직’이 이제 효력이 다해 가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에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당원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지 ‘승리의 방정식’을 하나 찾았습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아집을 버리면 승리할 수 있다’는 강렬한 집단 체험을 한 것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 당원들,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반드시 자신들이 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야당의 지지 기반을 확장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원희룡, 오세훈 등 기존 대선주자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누가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판을 좌우할 것인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인물입니다.
정책 선거는 허구의 신화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을 살펴보고 표를 찍겠다는 사람들은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는 것일 뿐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인물이 곧 가치요, 노선이요, 정책입니다. 대선 후보 한 사람에게 가치와 노선과 정책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당입니다.
과거보다 정당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대선주자가 경선에 불리하다고 판을 깨고 당 밖으로 뛰쳐나가는 일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따라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당의 주인은 대선주자가 아니라 당원들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80만명에 가까운 권리당원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에도 30만명이 넘는 책임당원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정당의 총재가 가졌던 공직 후보 선출권, 당직 임명권, 당론 결정권을 가졌습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는 대선후보들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핵심 당원 및 지지층의 집단 대결이기도 합니다. 누가 이길까요?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통령 선거의 승패는 우연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결과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꿉니다. 잘되면 축복이요, 잘못되면 재앙입니다. 어쩌면 도박보다 더 위험한 것이 대통령 선거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997년 대통령 선거가 조금만 더 늦게 치러졌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라 이회창 대통령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이회창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라 정몽준 전 의원이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이겼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만약 정몽준 대통령이 탄생했다면 우리나라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가 아니라 앨 고어가 당선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요? 전 세계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와 주변 국가,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의 운명도 바뀌게 됩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