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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용자에 높은 이율은 모순’이라는 문 대통령, 정말 엉뚱한가요?

등록 2021-04-01 11:59수정 2021-04-01 12:49

정치BAR 이완의 정치반숙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KB국민은행이 만든 ‘대한이 살았다’ 통장 상품에 가입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5일 KB국민은행이 만든 ‘대한이 살았다’ 통장 상품에 가입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였다.” (청와대 서면 브리핑)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했다고 청와대가 밝힌 내용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보통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신용도, 즉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이자율을 적용받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다니거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은행이 돈을 떼일 위험이 적다고 판단해 낮은 이자율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줍니다. 반대로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담보가 없는 경우, 은행은 더 많은 이자를 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개인을 재산과 능력에 따라 차별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은행 등 금융 시장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히 빌려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돈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거나 위험한 사업을 하려는 경우,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을 ‘이율’을 통해 부담시켜 돈을 더 많이 빌려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만약 신용이 낮은 사람이 많이 빌려 갔다가 갚지 않으면 그 손해는 은행에 그치지 않습니다. 은행이 부실해지면 건실한 가계와 기업도 돈을 빌리기 어렵게 돼 시장에서 이른바 ‘자금 순환’이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문 대통령의 ‘구조적 모순’은 틀린 말에 가깝습니다. 청와대도 다음날 이를 주워 담았습니다. 임세은 청와대 부대변인은 31일 추가 설명을 통해 “(대통령 발언은) 고신용자가 저금리를 적용받고, 저신용자가 고금리를 적용받는 금융의 생태적인 구조를 모순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그간 고금리, 사채, 불법 사금융 등으로 고통받고 불평등이 확대된 현실의 안타까움을 해소하자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문 대통령이 ‘경제학원론’과는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조처”라면서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4%에서 연 20%로 내리며 이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코로나19는 지난해 우리 삶에 많은 다른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선 우리는 ‘벼락부자’와 ‘벼락거지’로 나뉘었습니다. 돈이 많은, 신용도가 높은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빌려 아파트와 주식을 샀고 자산의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정부가 부랴부랴 은행이 고신용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막았지만, 이미 자산 가격은 하늘 높이 치솟은 뒤였습니다. 고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고, 고신용자는 고신용자대로 떼돈을 벌었습니다.

반면 저신용자들은 자산 시장 폭등의 피해를 봤습니다. 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비정규직 노동자·프리랜서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신용자’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자영업자들도 경영난에 빠졌습니다. 정부가 긴급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고 은행이 돈을 갚은 것을 유예시켜줬지만, 이건 갚아야 할 빚이 늘거나 미뤄진 것 뿐입니다. 고신용자가 벼락부자로 달려가는 사이, 이들은 더 많은 이자를 내는 것을 유예한 상태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저신용자들을 위한 ‘햇살론’ 등 대출상품을 늘리겠다고 한 것도 근본적인 해결방안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신용자들은 햇살론 등을 받아 당장 급한 이자율이 높은 악성 대출을 갚는데 쓸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고금리 대출업자의 배만 불리는 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8월 서울 농협 본점을 찾아 소부장 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8월 서울 농협 본점을 찾아 소부장 펀드에 가입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국무회의에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서민들의 삶을 위한다며 꺼낸 ‘구조적 모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대통령이 ‘금융의 기본 구조도 모른다’고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고신용자가 낮은 이율을 받고 저신용자가 높은 이율을 받는 기존 구조를 ‘수호’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햇살론 만들어줬다고 끝날 게 아닙니다. 금융기관이 기존 구조 내에서 가난한 이들을 저신용자로 낙인찍거나, 약탈적 대출로 가난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 이들을 보호하고 좀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하는 것도 정부의 일입니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위험에 몰린 기업에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저신용자들이 계속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채무를 조정하고 회생할 기회를 줬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전 교수는 이를 자동차 보험료에 비유했습니다. “사고를 낼 확률이 높은 운전자는 평소에 더 많은 보험료를 낸다. 실제로 사고가 나면 보험사는 그동안 더 많이 받았던 보험료로 사고 비용을 처리한다. 은행도 돈을 떼일 위험이 높은 이들에게 이미 더 높은 이자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개인의 책임도 아닌 사고가 터졌는데, 왜 저신용자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가 터진 상황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도 채무자의 원금이나 이자를 탕감하는 등의 부담을 선제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문 대통령은 ‘구조적 모순’을 말한 뒤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등에 내몰리지 않도록 더욱 형평성 있는 금융 구조로 개선되게 노력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문제의식이 엉뚱한 것은 무능이 아니지만, 관료들이 이 같은 정책을 상상하고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입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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