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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악재’ 직격탄 맞은 여권, DJ 정부에서 교훈 얻어라

등록 2021-03-21 10:59수정 2021-03-22 02:47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69
여권 어설픈 물타기 시도에 민심 분노 폭발
참여연대-민변 폭로로 드러난 ‘구조적 비리’
‘여야대결’ 아닌 기득권-개혁세력 싸움이 본질
개혁 제도화해야 여권의 재집권 가능성 높여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3월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사전매입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 유튜브 갈무리.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3월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사전매입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 유튜브 갈무리.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엘에이치(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입니다.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 박원순 전 시장 사건 피해자 기자회견보다 훨씬 강력한 것 같습니다.

엘에이치 사태의 파괴력은 여론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국지표조사(NBS, National Barometer Survey)가 있습니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등 4개 회사가 지난해 7월부터 자체적으로 시행해서 공표하는 전화 여론조사입니다.

지난 3월 18일 발표한 3월 셋째 주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9%, 부정 평가는 53%로 나타났습니다. 부동산 정책과 의료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첫째 주와 같은 성적입니다. 엘에이치 사태 이후 긍정 평가는 계속 떨어지고 부정 평가는 계속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0%, 국민의힘 26%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전국지표조사를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평가가 나빠지면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동반 하락하는 것 같습니다.

엘에이치 사태의 영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항목도 있습니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4월 7일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려 82%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여당 지지자나 야당 지지자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국정안정론과,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을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정권심판론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했습니다. 정권심판론이 48%로 국정안정론 40%보다 높았습니다.

지난 3월 19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 37%, 부정 55%였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전에도 같은 수치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어쨌든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나쁜 성적입니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5%, 국민의힘 26%였습니다. 최근 들어 국민의힘 지지도가 조금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4월 재보선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질문과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36% 대 50%로 견제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한다면 그건 바로 엘에이치 사태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과는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가 2·4 공급대책 후속으로 1차 신규 택지 세 곳을 발표한 것은 2월 24일이었습니다. 그 뒤에 엘에이치 직원들이 광명·시흥에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제보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들어갔습니다. 두 단체는 확인 작업을 거쳐 3월 2일 엘에이치 직원들의 사전 투기 의혹에 대해 공익 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야당의 주장처럼 ‘문재인 정부의 권력형 비리’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엘에이치 직원들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 부동산 투기를 시작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을 향한 분노가 왜 이처럼 거세게 폭발한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입니다.

엘에이치 직원 몇 사람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사실 공직자 윤리나 사회 정의 차원에서 다룰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도권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대부분의 국민이 가슴 속에 쌓고 있던 상실감과 박탈감이 문제였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상실감과 박탈감이라는 인화물질이 가득 차 있는데 엘에이치 사태가 불을 붙여 폭발시킨 것입니다. 엘에이치 직원 몇 사람이 익명으로 올린 조롱의 글이 폭발력을 더 키웠습니다.

둘째, 정부·여당의 어설픈 물타기 시도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4일 “새 도시 투기 의혹이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구조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규명해서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우리 사회 고질적인 병폐인 부동산 투기 문제로 인하여 재차 허탈감과 실망감을 느끼는 국민께 송구하다”며 “부동산 적폐 청산을 위해 초당적 협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뿌리 깊은 부패구조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 대변인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말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집권 4년 차의 정부·여당은 무슨 일이 터지든 무조건 납작 엎드려서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사건이 현 정부의 잘못인지 그 이전 정부부터 있었던 구조적 비리인지는 국민이 보고 판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엘에이치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4·7 재·보선 이후 다가올 대선 국면에서도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까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엘에이치 사태 때문에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최근 여론조사에 단서가 숨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두 여론조사 결과의 정당 지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엘에이치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반사이익을 충분히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엘에이치 사태를 가만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은 ‘보수 대 진보’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도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이번 사태는 참여연대와 민변의 폭로로 시작됐습니다. 이른바 보수 언론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참여연대와 민변 출신들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 두 단체를 문재인 정부의 관변단체처럼 비판했습니다. 이른바 보수 언론이 거짓 보도를 해 온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경실련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민단체입니다. 민변은 1988년 민주주의를 앞당기기 위해 변호사들이 결성한 모임입니다. 이번 엘에이치 사건 폭로는 시민단체와 전문가 단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이번 사건을 폭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이재명 배후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해야 대선후보 경선에서 자신이 유리하다고 보고 이번 사건 폭로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주장입니다.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음모론이요, 여권의 분열을 노리는 저열한 공작에 불과합니다.

엘에이치 사태가 보수 대 진보의 싸움도 아니고, 여당 대 야당의 싸움도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의 싸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직자로서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한 엘에이치 직원과 주변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입니다. 정책 입안 및 집행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관료와 정치인들도 기득권 세력입니다.

반면에 이러한 기득권 세력과 맞서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키려는 시민과 시민단체, 전문가 단체는 개혁 세력입니다. 이번 사건을 제보한 시민들, 그리고 참여연대와 민변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정부·여당의 초대형 악재가 터졌는데도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다수는 국민의힘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기득권 세력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에이치 사건은 장기적으로 정부·여당에만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전망합니다. 정부·여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여야는 지금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전수 조사, 특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4·7 재·보선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잘 될까요?

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전수 조사는 국회의원들이 자기들의 발등을 찍는 일이기 때문에 흐지부지할 것 같습니다. 특검은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사 대상을 과거 정권으로 넓히려는 여당과 문재인 정부로 좁히려는 야당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것입니다. 국정조사도 전례로 보면 정쟁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엘에이치 사태는 흐지부지되고 국민의 상실감과 박탈감만 깊은 상처로 남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4·7 재·보선 이후에도 엘에이치 사태를 흐지부지 처리하지 말고 정면 돌파할 것을 주문하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사회를 개혁하고 대한민국 공동체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이득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개혁 세력이라고 자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사상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여러 분야의 개혁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개혁을 소리 높이 외치던 김대중 정부에서 집권 초기부터 전혀 개혁적이지 않은 일이 잇따라 터졌습니다.

첫째, 1998년 7월 21일 7개 지역 재보궐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두 곳에서 당선자를 냈습니다. 서울 종로 노무현, 경기 광명을 조세형이었습니다. 조세형 당선자는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거물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새정치국민회의가 광명 선거에서 50억원을 썼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둘째, 1999년 5월 옷 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습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이 남편 구명을 위해 정부 고위층 인사의 부인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셋째, 1999년 6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기자들과 점심때 폭탄주를 마시고 “조폐공사 파업을 우리가 유도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 사건은 모두 <한겨레신문>이 보도해서 세상에 알려진 일이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와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한겨레신문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왜 우리한테 칼을 들이대느냐”고 엉뚱하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50억 돈 선거를 폭로한 한겨레신문에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 지시로 곧 취하했습니다.

옷 로비 의혹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은 국회에서 특검법을 제정해 수사가 이뤄졌습니다. 집권 세력이 의혹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 정부의 이런 자세가 집권 세력의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강화해 노무현 정부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임기 말에 대통령 아들과 측근들이 개입된 각종 게이트가 터졌는데도 국민은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개혁 세력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엘에이치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앞장서서 제정해 공직자 윤리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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