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59
“장난치냐” “시중 잡범이냐” 적반하장 반응 여론 악화
‘반대 54%’-‘찬성 37%’ 큰 격차···무당층 ‘50% 대 38%’
민주당 지지층 75% 반대···국민의힘 지지층 70% 찬성
사면 찬반 논쟁은 경선-대선 국면까지 끊이지 않을 듯
“장난치냐” “시중 잡범이냐” 적반하장 반응 여론 악화
‘반대 54%’-‘찬성 37%’ 큰 격차···무당층 ‘50% 대 38%’
민주당 지지층 75% 반대···국민의힘 지지층 70% 찬성
사면 찬반 논쟁은 경선-대선 국면까지 끊이지 않을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왼쪽).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20년 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러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김정효 <한겨레> 기자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노태우(왼쪽)·전두환 전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사면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으로 단행할 일이다. 세상의 이치는 양지가 금방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된다. 자신들이 집권하고 있다고 칼자루를 잡고 있다고 사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거나 사면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전쟁에서 항복한 장수, 항장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대우는 있다. 정치적인 재판에서 두 분 다 억울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런 사건에서 사과나 반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면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 이재오 : 반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두 대통령이잖아요, 전직. 그런데 대통령 입장에서는 반성을 하려면 잡아간 사람이 반성해야지 잡혀간 사람이 무슨 반성을 하냐. 아니, 내줄 사람이 그동안에 오래 고생했으니까 미안하다고 하고 내주면 몰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너 잘못했다 해라 그러면 내보내 주겠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 진행자 : 그런데 반성과 사과를 해야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이 되고 공감대가 형성돼야 대통령도 사면권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 이재오 : 그것은 시중 잡범들이나 하는 이야기고. 방금 이야기했잖아요. 국민의 공감이라는 게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지 않습니까? 찬성을 택하느냐, 반대를 택하느냐 하는 것은 사면권자의 정치적 결단인 거고, 반성의 여부라고 하는 것은 무슨 당사자들 입장에서 이거는 사면을 해 주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사면을 받는 당사자의 입장도 생각해야 되잖아요.
당사자들은 지금 그동안의 2년, 3년 걸쳐서 감옥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억울한 정치보복으로 잡혀갔는데 지금 내주려면 곱게 내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 이렇게 하는 것은 사면을 받을 당사자들 입장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면은 사면을 해주는 사람의 의지와 사면을 받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게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어야지, 사면하는 사람이 내가 칼자루를 잡았다고 너 반성해라, 사과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역대 어떤 정권도 그런 적은 없었죠.
그(디제이)가 대통령 당선자로서 가장 먼저 한 정치적 결정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달라고 현직 대통령인 와이에스(김영삼)에게 건의한 것이었다. 아니 당시의 역학관계로 보아 디제이가 사면을 해주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 당선 이틀 뒤인 1997년 12월20일 청와대 2층 백악실에서 와이에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디제이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고, 와이에스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디제이는 “이제 지역갈등, 계층갈등을 넘어서는 국민통합을 통해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해야 한다. 잘못된 정치는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해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디제이는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다.(중략)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실제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자신들의 석방에 유리한지 면밀하게 계산을 해서 감옥 밖으로 메시지를 내보낸 흔적이 있다. 1997년 12월18일 선거 당시 국민회의 서대문을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김상현씨는 나중에 전두환씨의 가족이 기호 2번(김대중 후보)을 찍은 것을 선거 참관인이 ‘훔쳐보고’ 자기에게 이야기를 해준 일이 있다고 밝혔다.(중략)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주자들은 두 사람에 대한 사면 문제를 들고 나왔다. 디제이는 97년 5월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면 국민과 함께 용서할 수 있다”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이런 과감한 제의는 디제이 자신이 바로 1980년 신군부 쿠데타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회창씨도 당초 부정적인 입장에서 9월에는 사면 쪽으로 선회해 와이에스에게 추석 전 조기 사면을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와이에스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회창씨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노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것이니, 평소 내가 설파했던 ‘용서론’을 실천하기로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앞으로 더 이상의 정치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내 염원을 담은 상징적 조치였다.
한때는 신군부 세력에 대한 증오심이 전신을 휘감기도 하고, 그들의 만행이 꿈속까지 휘젓고 나타났지만 그래도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영국의 민주화 밑을 흐르는 ‘용서의 정치’를 떠올렸다.
영국은 1649년 청교도혁명 때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했다. 그러나 그 같은 정적에 대한 보복은 혼란과 내분을 가져왔다. 그 결과 크롬웰이라는 더 지독한 독재자가 출현했다. 그 후 영국 국민들은 1688년 명예혁명 때는 찰스 1세의 왕권지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한 그의 둘째 아들 제임스 2세를 축출할 때 그가 프랑스로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제임스 2세는 프랑스에 머물며 망명정부를 세우고 그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3대에 걸쳐 왕권을 수복하겠다고 영국 정부를 괴롭혔다. 영국 정부는 그러한 사태를 예상했지만 그들을 살려 두었다. 정치보복으로 입게 될 정치적·사회적 후유증에 비하면 오히려 그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영국이 관용과 질서 속에서 의회 정치의 꽃을 피운 것은 그 밑바탕에 이 같은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의 국외 탈출을 막고 처형한 프랑스나, 니콜라이 2세 일가를 모조리 처형한 러시아의 혁명과 비교해 보면 영국의 결단은 현명하고 위대했다. 영국은 이러한 관용의 축복을 300년간 누렸고, 이에 따라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번영을 유지해 왔다. 나는 이러한 영국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떠올리며, 진정 힘들었지만 우선 저들을 용서했다.
전·노 전 대통령은 22일 풀려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석방 소감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관록을 갖추고 믿음직한 김대중 당선자가 당선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2001년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나는 이날 김대중 당선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두환·노태우와 12·12 및 5·18 관련자들을 사면하겠다고 밝혔다.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은 이제 구속된 지 만 2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을 내 임기를 마치기 전에는 석방할 생각을 갖고 있었고, 또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이야기한 바 있었다. 이미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모든 검토를 마친 상태였다. 시기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계획대로 추진할 생각이었다.(중략)
선거가 끝난 다음 날인 12월19일 오전 10시 나는 예정대로 김종구 법무장관으로부터 최종 보고를 받았다. 다음날인 12월20일에는 이를 김대중씨에게 알려주었고 22일 국무회의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김대중씨는 전두환·노태우 등을 사면하겠다는 내 말에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좋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했다. 사면복권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당선자가 관여할 입장이 아니었다.
2017년 전두환 회고록
대법원이 4월17일 일부 원심을 파기하고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1996년 3월 시작된 5·18 특별법에 의한 재판이 1년 1개월 만에 모두 종결되었다. 그러자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렸다는 듯이 각 종파를 막론한 종교계와 일부 지역에서 나에 대한 사면 청원운동이 본격화되었다고 했다.(중략)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부터 그리고 최종 판결이 나오자마자 사면 얘기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유죄라고 판단한 법원의 결정,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를 매장시키기 위한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애초부터 부당하거나 무리한 조치였다는 하나의 반증일 것이다.(중략)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건 나의 사면 문제는 김영삼 현직 대통령보다는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에 달려 있다고들 했다.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를 초래해 나라를 파산 상태에 빠뜨린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는 나를 사면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안 된다고 고집할 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19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나에 대한 사면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고, 당선이 확정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인 12월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의 회동을 거쳐 오후 2시30분 나와 노태우 등에 대한 사면복권 조치가 발표되었다. 나의 사면과 복권을 위한 300만명의 청원이 청와대에 전달된 지 5개월 만이었다.
어떤 신당을 만들 것인가. 저는 5개항의 원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당의 몇 분 지도자들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것으로 압니다.
첫째는 세대통합의 원칙입니다. 특정 연령층만이 주도하거나 중심이 되는 정당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노년 장년 청년층이 조화를 이루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남녀의 조화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둘째는 이념통합의 원칙입니다. 진보나 보수의 어느 한 편에만 치우치는 정당은 크게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정당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진취적인, 약간은 진보적인 정당이었으면 합니다. 개혁적이되 안정적 개혁을 지향하는 정당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지역통합의 원칙입니다.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전국정당이어야 합니다. 특정 지역에 편중돼서도 안 되지만, 특정 지역을 배제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호남 문제는 한국 정치의 숙명적 현실입니다. 호남이 왈가왈부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온당치 않습니다.
넷째는 민주당 계승의 원칙입니다. 민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계승해야 합니다. 민주당의 이념과 철학을 이어가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민주당의 인적 자원도 최대한 포용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한국 정치의 위대한 결실이며 자산입니다.
다섯째는 덧셈의 원칙입니다. 뺄셈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치인이 정치인을 심사하겠다는 것은 오만이며 월권입니다. 심판은 국민들께 맡겨져 있습니다. 신당은 문호를 열어놓고 뜻을 같이하려는 분들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행태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헌신과, 우리가 가진 좋은 가치들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거리를 두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심지어는 그 가치를 통해 우리가 보듬고자 하는 분들까지도 왜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것인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근본주의적 사고가 우리를 경직되게 하고 폭을 좁히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낙연 의원은 지난 대선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한 바 있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만, 막말이나 거친 태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접근을 싫어하는 성향을 ‘태도 보수’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태도 보수’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을까.”
‘태도 보수’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아니지만, 핵심을 찌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념, 정책, 주장 자체가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태도’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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