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추석 민심은 실종됐다. 귀성도 없고 귀경도 없다. 가족과 친인척이 모이지 않으니 정치 얘기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 시계의 초침은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다.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을 뿐이다.
2021년 4·7 보선과 2022년 3·9 대선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치 평론가들은 대체로 2021년 4·7 보선에서 이기면 이듬해 3·9 대선도 유리하다고 본다.
꼭 그렇지는 않다. 11개월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어쨌든 선거는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아름다운 패배’나 ‘의미 있는 패배’는 존재하지 않는다.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선에서 지는 쪽은 폭탄을 맞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4·7 보선은 여당이 불리한 구도다.
첫째,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유권자의 가슴속에는 심판론이 깔렸다고 봐야 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선에서 서울시민은 오세훈 전 시장의 무책임한 사퇴를 응징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이다. 여당 지지자들의 결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 선거 4연승’ 집권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도 발동할 수 있다.
여론조사 흐름은 어떨까?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래도 여당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있다.
9월25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따로 서울과 부산·울산·경남을 들여다봤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전국적으로 ‘잘하고 있다’ 44%, ‘잘못하고 있다’ 48%였다. 서울은 ‘잘하고 있다’ 40%, ‘잘못하고 있다’ 51%였다. 부산·울산·경남은 ‘잘하고 있다’ 44%, ‘잘못하고 있다’ 50%였다. 서울이나 부·울·경이나 전국 평균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쁘다.
정당 지지도는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힘 21%였다. 서울은 더불어민주당 33%, 국민의힘 22%였다. 부·울·경은 더불어민주당 33%, 국민의힘 26%였다. 여당이 앞서 있지만,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지 않다.
9월28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전국 평균은 더불어민주당 34.1%, 국민의힘 28.9%인데, 서울은 더불어민주당 33.6%, 국민의힘 30.0%다. 부·울·경은 더불어민주당 31.7%, 국민의힘 34.4%로 야당이 앞선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그래서일까? 의원 중에는 “부산시장은 야당이 이기고 서울시장도 야당이 해볼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 당내 다수 의견이다. 적절한 시기에 당헌을 개정할 것이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고 개혁 대 반개혁으로 4·7 보선을 치른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4·7 보선은 임기 말 레임덕으로 가느냐 가지 않느냐 갈림길이 될 수 있다. 이기면 사상 최초의 레임덕 없는 정권이 될 수 있지만, 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그렇다고 선거에 개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특유의 진정성을 유지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2016년 총선부터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큰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4·7 보선은 ‘이낙연 선거’다. 이낙연 대표는 2022년 대선 출마를 위해 2021년 3월 대표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장·부산시장 후보 공천은 그 전에 한다. 이낙연 대표 책임이다.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할 것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그는 서울 종로 국회의원이다. 이기면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리하다. 지면 불리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4·7 보선과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수도권 민심은 늘 같이 움직인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도 악재다. 당내 경선에서 이겨서 대선 후보가 되면 뭐 하나. 본선에서 이겨야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설 사람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주민 의원, 우상호 의원(가나다순) 정도가 꼽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이름도 나온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중요한 것은 주류-비주류, 친문-비문이 아니다. 본선 경쟁력이 승부를 좌우할 것이다.
부산시장 후보로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박재호 의원 등 부산 현역 국회의원들도 나설 수 있다. 민주당에서 부산시장은 “아직 장이 서지 않았다”는 게 내부 진단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다.
국민의힘은 도대체 선거에서 언제 이겨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4·7 보선 승리에 대한 절박감은 국민의힘이 훨씬 더 강하다. ‘전국 선거 4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디딤돌이 필요하다. 4·7 보선마저 지면 자칫 당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을 구한 영웅이 된다. 2022년으로 이어지는 대선 정국까지 대한민국 정치판의 주도권을 쥘 것이다. ‘차르’의 귀환이다.
2021년 말까지 야권에서 유력한 대선후보가 떠오르지 못할 경우 김종인 위원장이 대선에 직접 출마하는 시나리오도 정가에는 존재한다. 소설이 아니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4·7 보선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당내 친재벌 기득권 세력과 충돌할 수 있다.
후보 변수도 중요하다. 서울은 너무 없어서 걱정이고 부산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조은희 서초구청장, ‘나는 임차인입니다’ 5분 발언으로 유명해진 윤희숙 의원이 거론된다.
부산시장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김미애 박민식 박수영 박형준 서병수 유기준 유재중 이언주 이진복 장제원 등(가나다순) 두 손으로 다 꼽기 어려울 정도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이 야당 대표로 있는 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김종인과 안철수가 손잡을 일은 없어 보인다.
안철수 대표의 경쟁력도 문제다. 2018년 지방선거 서울시장 득표율은 박원순 52.79%, 김문수 23.34%, 안철수 19.55%였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 중에는 여성이 많다. 만약 서울시장에 여성이 당선되면 1995년 지방선거 이후 여성 광역단체장이 처음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그런 수준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