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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부자들의 정당이 아님을 증명할 마지막 기회

등록 2020-09-20 11:36수정 2020-12-25 20:04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43
정기국회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 갈림길
장제원 ‘찬성’-김병준 ‘반대’ 당내 논쟁
‘중산층·서민의 정당’ 혁신으로
집권 다시 노려볼 기회 잡을까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민주화를 일생의 목표로 세운 정치인이 오랫동안 경제민주화를 반대해 온 정당의 대표가 된 것은 역사의 간지(奸智)일까요?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3법(상법 일부개정 법률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 법률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정부·여당과 야당뿐만 아니라 개별 정치인들, 그리고 이해 당사자인 재벌과 경제단체,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까지 논쟁에 뛰어들면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모양새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논쟁의 바탕에는 어떻게든 기득권을 지키려는 거대 자본 세력과 이를 제어하려는 민주주의 세력의 힘겨루기가 깔려 있습니다.

먼저 최근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공정경제 3법을 의결한 것은 8월 25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공정경제 3법을 강하게 비난하는 기사와 사설을 실었습니다. 정부는 8월 31일 공정경제 3법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제가 ‘경제민주화 절호의 기회를 잡아라’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것은 <한겨레신문> 9월 8일 치였습니다.

9월 10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과 함께 오찬을 하며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자타가 공인하는 미스터 경제민주화시니까 공정경제 3법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답변은 “협의를 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긍정적인 대답으로 받아들였지만,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긍정적인 답변이라기보다 원론적으로 협의해 나가자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김을 뺐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요?

김종인 위원장은 9월 14일 경제 전문 매체인 <한국경제> 및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경제민주화가 관심사였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답변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김은혜 대변인의 설명과 달리 경제민주화에 대해 매우 전향적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경제>는 9월 15일 신문에 인터뷰 내용과 우려를 자세히 실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사설로 김종인 위원장을 비판했습니다.

<조선비즈> 인터뷰도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만 전해드리겠습니다.

김종인, 재계 반대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찬성’...야당까지 기업 옥죄기 가세 논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상법·공정거래법은 개정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본관 비대위원장실에서 가진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려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코로나와는 별개라고 본다. (공정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은”이라고 했다.

당정은 이른바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제·개정안을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이들 법안을 지난 20대 국회 때도 발의했지만 처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 국회에선 176석의 절대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는 또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강화(현행에서 10% 추가 확보)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다중대표소송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제출돼 있다. 이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의 경영 정보가 외국 기업이나 투기자본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는 대한상의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놓은 상태다.

재계는 “코로나발 경기침체로 기업 활동이 힘든 상황에서,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경제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야당 대표인 김 비대위원장이 “(공정거래법과 상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말한 것이다. 정부 여당에 이어 야당까지 기업 옥죄기에 가세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여당에서 발의한) 법안은 심의를 해 봐야 한다”며 “내용은 세부 과정에서 찬성할 부분과 반대할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도 ‘이들 법안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죈다는 비판도 있다’고 하자 “기업들은 항상 그런 소리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기업인들을 만나신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업인을 만나서 뭐 하겠느냐”라고 했고,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말을 빌어 “가장 애국적인 기업인은, 국가의 법률과 오래된 관행을 지키면서도 이윤 추구를 많이 하는 기업이다. 그 외의 것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제도를 개편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지난 1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첫 오찬 회동 직후에도 이른바 ‘공정경제 3법’에 대해 “협의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법안 찬성 의사를 더불어민주당이 환영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9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께서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히셨다. 민주당의 공정경제 3법 추진에 대한 김종인 비대위원장님의 화답을 환영한다. 우리 당 이낙연 당대표의 여야공동입법 제안에 대한 화답이라는 점에서도 반갑다. 여야가 협력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이 처리되기를 기대한다.

공정경제 3법은 우리 시장경제에 건강한 발전을 위한 체질개선 방안이다. 불투명한 경영과 불공정 거래 관행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공정경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아시다시피 19대 국회, 20대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처리가 번번이 지금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또 그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국민의힘이 정강·정책을 개정하면서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구현’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을 처리해서 공정경제의 제도적 토대를 쌓아야 한다. 관련 상임위에서 해당 법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야당과 적극 협의하겠다.”

공정경제 3법 중에서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감독법을 소관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는 정무위원회입니다. 정무위원장을 맡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이런 입장문을 냈습니다.

제1야당 국민의힘 김종인 대표의 공정경제를 위한 법 개정 의지를 환영합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법 개정안 등 '공정거래 3법' 추진과 관련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며 “심의 과정에서 찬성할 부분이 있으면 찬성하고 반대할 부분이 있으면 반대하겠다. (공정한 제도)를 확립하는 법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은 시장경제의 성숙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공정경제만으로 미래 성장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경제 없이는 단연코 미래도 성장도 없습니다. 대기업의 독식 주의를 제도적으로 견제해 공정한 경쟁과 시장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강소기업들이 주도하는 혁신성장이 가능합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의 미래를 위해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장으로서 양식과 소신을 지닌 여야의 정치인들과 협치하고 연대하여 정기국회에서 법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니 입장이 난처해진 것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입니다.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의힘의 정치적 기반이 친재벌, 자본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크게 보면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자유한국당의 후신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힌 법안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소신을 접고 법안에 찬성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빠졌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아래 발언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어정쩡한 처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정경제 3법 쟁점 사항이 워낙 여러 가지다. 쟁점 하나하나마다 우리 기업과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금 정무위원회나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우리 의견을 정리해 나가는 그런 과정이다.”

놀라운 사실은 국민의힘 안에서 경제민주화 적극 찬성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입니다. 18일 페이스북 글입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관계법에 대해 “우리 당도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넣었기 때문에 모순이 안 된다” “시장 질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며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말로 이미지만 가지려 하는 것은 ‘허세’입니다. 실천을 통해 내용을 채워가야 ‘변화’입니다.

소위 공정경제 3법은 정강·정책 개정과 함께 오히려 우리가 먼저 던졌어야 했던 법들입니다.

‘국민의힘’은 ‘경제민주화’ 가치를 당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통해, ‘공정위 전속 고발제 폐지’ ‘다중대표소송 제도 단계적 시행’ ‘총수 일가 부당거래 규정 강화’ 등 선명한 ‘경제민주화’ 조치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시행되면 주주들은 총수 일가가 자회사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 등의 사익 추구 행위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자회사에 대한 경영간섭과 소송 남발 등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궁색한 기득권 지키기로 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일본 등과 달리 ‘단독주주권’이 아닌 ‘소주주권’을 도입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비상장회사의 경우 총 발행 주식의 1%, 상장회사는 0.0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자회사 이사진의 책임을 묻고 싶어도, 수십·수백억에 달하는 지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의 권한을 쉽게 이용하기에는 상당한 걸림돌로 작동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해외 투기자본의 개입이 걱정이라면, 주식 보유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면 될 것입니다.

또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의사결정과 집행과 감독을 분리하는, 대주주에 대한 기본적인 견제 수단입니다. 기업의 의사결정과 집행을 감독하는 감사 기능 마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그대로 쥐고 있다면, 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권력이던, 경제권력이던,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면 독선과 독단이 횡행(橫行)하고, 부정과 반칙이 싹트게 됩니다.

‘오너리스크(owner risk)’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너의 독단 경영과 도덕성 문제가 오히려 기업의 가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견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했던 약속입니다.

그 약속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약속들 지켜야 할 때입니다.

거침없는 실천, 그것이 ‘진취’입니다.

물론 경제민주화 반대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2018년 7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17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띄웠습니다.

<국민의힘, 상법 개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함부로 찬성하면 안 된다>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감시받고 통제되어야 한다. 또 처벌받을 일이 있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느냐인데 때로는 국가가, 때로는 소비자와 투자자 그리고 채권자 등의 시장주체들이, 또 때로는 기업 스스로 하기도 한다. 처벌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법으로 할 수도 있고, 시장주체들이 불매운동과 채권이나 투자지분의 회수 등을 통해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방식에 의존해 왔나? 이것저것 다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역시 국가에 의한 감시와 통제, 그리고 처벌이었다. 국가권력이 기업을 죽이고 살리고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배임죄만 해도 그렇다. 손실을 끼친 경우만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넓게 적용되고 있다. 또 모호한 부분이 많아 유무죄의 예측 가능성도 매우 낮다. 검찰 등 국가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업이나 기업주도 잡아넣을 수 있고, 그래서 기업 하는 것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까지 나도는 정도이다.

이러니 검사 한 두 사람 스폰서하고, 유력 정치인하고 악수하는 사진 하나라도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 자조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배임죄의 발원지인 독일조차도 배임죄의 적용을 엄격히 해, 이로 인한 처벌이 매우 어려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기업과 기업인을 죽이고 살릴 수 국가권력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당연히 국가의 자의적 통제를 약화시키고 시민사회와 시장에 의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이 기업답게 활동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시장의 자정 기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인 면을 담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이 그러하다. 또 사익 편취 규제 대상 강화, 전속고발권 폐지 등도 시장의 역할과 질서를 바로잡는데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국가권력이 강한 가운데, 또 그 자의적 행사의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또 종국에는 시장의 자율성과 자정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를테면 배임죄와 횡령죄에 대한 국가의 자의적 권력이 강한 가운데,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겠나. 배임과 횡령을 둘러싼 고소와 고발의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기업은 그만큼 더 검찰 등 국가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기업의 기는 그만큼 떨어지고, 경제도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니라고? 스스로 기업인이라 생각해 봐라. 검찰 등 권력기구의 눈치를 더 보겠나, 안 보겠나. 권한과 권력의 자의적 행사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개정안에 대한 제1여당의 모호한 태도와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지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심의 과정에서 일부 수정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법 자체의 내용에만 치중한 나머지, 국가와 정권의 자의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회에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당답게 시장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 주었으면 한다. 배임죄 등 국가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부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 등, 진짜 할 일을 먼저 하거나, 아니면 조건으로 걸기라도 하라는 뜻이다.

어떻습니까? 김병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경제민주화에 강하게 반대하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참 특이하지요?

경제민주화 논쟁에는 정치인과 학자들뿐만 아니라 언론도 적극 가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논쟁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제민주화 찬성과 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경제민주화 논쟁은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니라 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본 기득권 세력과 이를 제어하려는 민주주의 세력의 대결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 신문과 ‘경제 전문지’ 등은 자본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자본 기득권 세력의 폭주를 정부가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기사 및 사설, 그리고 <한겨레> <경향신문> 기사와 사설 몇 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만 살펴봐도 엄청난 시각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정부·여당이 공정경제 3법으로 부르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야당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감독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위원장은 본래 야당 몫이었습니다. 만약 21대 원 구성이 원만히 이뤄졌다면 국민의힘에서 위원장을 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상임위원장을 다 걷어차면서 정무위원장도 여당으로 넘어갔습니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금 공정경제 3법 통과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정거래 3법에 반대하면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경제민주화 법안에 차라리 적극적으로 찬성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장제원 의원과 같은 입장입니다.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민의힘이 재벌과 대기업, 자본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계속 대변한다면 앞으로 정권 잡기 어렵습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어느 정당이 ‘부자들의 정당’이고 어느 정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부자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국민의힘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면 더는 부자들의 정당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자,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거듭나서 집권 가능성을 키우는 길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자들의 정당으로 남아서 평생 야당만 하시겠습니까?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2017년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라는 제목의 책을 쓴 일이 있습니다. 2012년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의 수정 보완판 성격입니다.

2장 ‘재벌 개혁’에 ‘출자제한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해야’라는 제목으로 구체적인 재벌 개혁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지난 8월 25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8월 31일 국회로 보낸 ‘공정경제 3법’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길지 않으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방안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집행임원제 의무화

근로자와 소액주주 경영 감시·감독권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사외이사 자격 요건 강화

국민연금·회계법인·종업원 대표 사외이사 참여

출자제한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해야

“대기업집단에 대한 순환출자 및 출자총액 제한 제도는 과거에도 시행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다. 효과도 없는 제도를 다시 시행하는 것보다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시대정신과 시장 변화에 맞춰 스스로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바꾸도록 (민주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재벌은 해체 대상도, 개혁 대상도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조항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우려하는 것처럼 재벌을 상대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재벌은 많은 기업을 거느리는 집단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경우 그 집중이 탐욕을 더 부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탐욕은 다른 기업 등 경쟁 상대를 혼란의 와중에 빠뜨린다.

한 나라 경제가 시장경제에 올인하면 결과적으로 경제력 집중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억제하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재벌을 옥죄면 전체적인 경제 운용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나눠 먹을 것도 없어진다. 재벌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려면 재벌의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처럼 총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기업 경영과 투자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재벌 총수는 1%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수십 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통제하고 있다. 아이엠에프 사태 등 경제위기 때 문제가 된 삼성자동차와 쌍용자동차의 사례를 보자.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주력업종 제도를 도입해 이들 기업으로 하여금 자동차산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오너가 고집을 피워 ‘한 번 마음 먹으면 해낸다’는 식으로 잘못된 투자를 하는 바람에 결국 망하고 말았다.

재벌의 지배구조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운영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유명무실하다. 오너가 사외이사 대부분을 편의대로 임명하고 사외이사들로 하여금 이사회에 참석해 오너 의견에 박수나 치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오너 등 최고경영자(CEO)의 그릇된 의사결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법무부가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 취지에 맞춰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간담회를 한 이후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집행임원제 의무화 등 당시 법무부 안대로만 상법이 개정됐어도 경제민주화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동반성장을 부르짖지만 제도를 뒷받침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놓아선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부터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독일처럼 의사공동결정권까지 도입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지배구조는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막는 세력이 지금의 경제세력이다. 거대경제세력이 막강해 박근혜 정부의 상법 개정안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거대경제세력이 연루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런 과정에서 보듯 대한민국은 경제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포용적 성장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이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상법에 근로자와 소액주주의 경영감시·감독권을 명시함으로써 보장해야 한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 자회사의 경영진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경우 모회사 발행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가진 주주들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도 단계적으로 의무화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신장시켜 주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듣는 사외이사제도 또한 더욱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 전직 임직원의 사외이사 취임 제한 기간을 더 길게 연장하고, 기존 사외이사들의 연임 기간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투입한 회생 자금이 7조 1,000억원, 확인된 분식회계 규모만 5조 원대인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불투명한 기업의 지배구조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에 대해선 사외이사 구성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해당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 외부 감사를 맡는 회계법인, 노동조합 가입에 관계없이 종업원 대표를 사외이사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오너와 친분이 있는 인물이나 퇴직한 고위 관료, 대학교수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기업의 고용 및 낙수 효과는 과거 개발연대에 비해 현저하게 약화됐다. 한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상장기업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일부 거대경제세력(재벌) 오너들의 일탈 행위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림은 물론 전반적인 한국 기업에 대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모름지기 의회의 본분은 거대경제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번 정기국회에서 김종인 위원장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경제민주화 법안에 찬성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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