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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 선 국민의힘, ‘혁신의 디엔에이’냐 ‘보수 가치 수호’냐

등록 2020-09-13 10:37수정 2020-12-25 20:03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42
보수 논객들 국민의힘 노선 두고 뜨거운 논쟁
조선일보 사내-사외 필진 정반대 시각서 처방
“‘극단 세력 결별’-‘구태 단절’로 새로 태어나야”
“보수가 좌클릭 한다고 해서 좌파 이길 수 없어”
역대 대선은 중도 확장에 성공한 정당이 ‘승리’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선거 4연속 패배 뒤 정강·정책을 뜯어고치고 당명까지 바꾼 국민의힘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국민의힘은 이제부터 어느 길로 가야 할까요?

국민의힘 노선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미래통합당) 노선을 둘러싼 논쟁은 4·15 총선에서 참패한 뒤 5월 중순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탈이념’ 노선을 추구하는 쪽과 홍준표·장제원 의원 등 ‘보수 가치 수호’ 노선을 추구하는 쪽으로 갈려서 싸웠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 칼럼도 두 노선으로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그 뒤 김종인 위원장 체제가 안착하면서 당 안팎의 ‘반김종인’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탈이념’ 노선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입니다.

최근 2차 논쟁은 8월 15일 전광훈 목사 광화문 집회, 8월 19일 김종인 위원장 5·18 민주묘지 무릎 사과, 9월 2일 정강·정책 및 당명 변경을 계기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 구축 과정에서 벌어졌던 1차 논쟁은 당사자인 정치인들이 주도했지만, 이번 2차 논쟁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관찰자인 논객들이 벌이고 있다는 점이 특색입니다.

먼저 최근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 변화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로 살펴보겠습니다.

4월 총선 직후 17~19%에 머물던 국민의힘 지지도는 7월부터 오름세를 타고 8월 둘째 주에 27%로 최고치에 올랐다가 이후 다시 떨어져 지금은 20%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8월 둘째 주 이후 국민의힘 지지도가 내림세로 꺾인 것은 코로나 19 재확산과 광화문 집회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당원이나 지지자들에게 참가 금지령을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전광훈 목사에 대해 처음에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김종인 위원장)고 선을 긋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공동선에 반하는 무모한 일을 용서할 수 없다”(주호영 원내대표)고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부터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들의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내부 필자와 외부 필자들이 전혀 다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모두 네 개의 칼럼을 차례차례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일보> 8월 28일 치에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파 정당의 비겁함’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만약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 방역 시비 없이 끝났다면 통합당 의원들은 ‘이게 민심’이라고 떠들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으려고 다투어 줄을 댔을 게 뻔하다. 이제 손익 계산에서 불리하니 ‘손절매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파 정당의 비겁함을 또 드러낸 것이다. 광화문 집회 때문에 통합당 지지율이 하락했다지만, 이런 얍삽한 모습이 보기 싫어 등 돌린 숫자도 꽤 많을 것이다.”

“우파 정당의 위기는 끝까지 싸워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를 잃어버린 데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헌법 정신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 정체성과 관련된 쟁점 사안을 놓고 결코 밀려서는 안 된다는 패기가 없다. 아마 공부가 안돼 있거나 보수 가치에 자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8월 31일 치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전쟁에서 이긴 처칠이 선거에서 진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정반대의 시각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최근의 지지도 상승에는 반사 효과 이상으로 그동안 김종인 대표 체제 아래서 시도한 통합당의 변신 노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짝했던 결과였지만 미래통합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상승했던 것은 그래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통합당이 권력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당이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당 개혁의 방향을 여론의 움직임이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보수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함을 잃어버리면 보수 정치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새로운 보수주의의 정립을 위해서 과거와 과감하게 단절해야 할 시점이다.”

이어서 <조선일보> 9월 1일 치에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보수의 희망을 보여준 김종인의 5·18 사죄’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강원택 교수와 마찬가지로 극우 집단과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통합당에 마음 주는 걸 주저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보수 야당의 안팎에 맹목적 애국주의, 냉전적 사고, 지역주의에 매몰된 채 수시로 광주와 세월호를 모독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수구 정치 세력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 성숙으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가짜뉴스 유포, 선동, 혐오 발언, 자해성 행패 등 극단적 정치 행동주의로 치달리는 양상을 보여준다.

현 정부·여당이 실정(失政)을 남발한다고 이 극우 집단의 행태가 정당화될 수 없다. 양자는 어떤 의미에서 방향만 다를 뿐 독선이라는 속성을 공유한다. 이들의 정치적 자유마저 최대한 용인하는 게 민주주의다. 하지만 보수 정당이 국정운영의 중심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 집단과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끌고, 광주와 세월호를 아파하며, 현 정부의 실정에 분노하는 교양 시민으로서의 국민에게 다가서는 길이다.

이 맥락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5·18 묘역에서 보여준 모습은 놀랍고 반가웠다. 80세의 노(老) 정치인은 양극화된 정치 진영들이 자신의 행동에 보일 반응을 예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역사의 과오 앞에 한없이 낮아지는 길을 택했다. 우리 사회가 가슴 깊이 묻어둔 아픔을 끌어안아 치유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를 반박이라도 하듯 <조선일보> 9월 8일 치에 김대중 조선일보 전 고문이 “‘국민의 힘’ 혼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조금씩 좌(左) 클릭해왔다. 스스로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기본소득 도입, 재정 역할 확대, 사회 안전망을 통한 시장경제 보완, 재난지원금 찬성, ‘약자와의 동행’ 등을 제기해왔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김 위원장의 원맨쇼에 가깝다는 점이다. 내부 논의도 없고 어떤 진통도 없었다. 당 노선의 변화를 총의로 천명한 것도 없다. 김 위원장이 광주에 가서 무릎 꿇은 장면을 연출했을 때 그것이 야당의 진정한 변화로 보이려면 당 중진과 소속 의원들을 대동해야 했다.”

“보수가 좌 클릭한다고 해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좌파 정치나 진보 정책은 좌파가 더 잘 알고 더 잘하기 때문에 보수가 몇 가지 비슷하게 좌파 흉내 낸다고 해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좌파를 이념적으로 도와줄 뿐이다. 국민적 선택과 시대적 흐름이 좌 성향일 때가 있고 그 흐름이 보수·우파로 이동할 때도 있다. 그것이 세계 정치 순환의 역사고 인류사의 흐름이다. 좌파는 보수가 득세했을 때 우(右) 클릭한 적이 없다. 좌는 좌에 충실했다. 그런데 좌파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 보수·우파 정당은 ‘중도 포용’ 운운하며 좌파 흉내를 내고 있다. 그것이 보수당의 약점이자 한계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의식이 집단보다 개인의 안녕과 행복에 중점을 두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해서 보수의 가치를 접는 것이라면 그런 보수는 존재 가치가 없다.”

어떻습니까? 네 개의 칼럼이 같은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물론 신문에 실리는 칼럼의 논조가 모두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문은 다양한 의견을 싣는 그릇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내부 논객과 외부 논객의 시각이 어떻게 이렇게 상반될 수 있을까요?

<조선일보> 논객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과 달리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국민의힘에 대해 당명 변경을 계기로 과거와의 단절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중앙일보>는 9월 1일 치에 ‘당명 바꾸는 야당, 과거와 제대로 결별하라’고 사설을 썼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보수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름만 바꾸고 겉만 변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국민만 생각하는 보수로 다시 태어나야 다음 선거에서 재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통합당 의원들은 당선 직후 ‘익숙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펼쳐 나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한 적이 있다. 지난 5월 22일 당선자 워크숍을 마치고 이 글이 쓰인 현수막을 든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글귀대로 하면 된다.”

<동아일보>도 9월 1일 치에 ‘野, 새 당명에 걸맞게 뼛속까지 다 바꿔라’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극단세력과의 결별, 구태와의 단절을 촉구했습니다.

“이번 당명 변경을 계기로 보수야당은 극단세력과의 결별, 구태와의 단절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나겠다는 각오로 변화해야 한다. 선명하게 자기주장은 하되, 억지 주장이 아닌 대안 있는 건강한 정책 경쟁으로 국민의 마음부터 얻어야 국민의 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내부 논객들이 ‘보수 가치 수호’를 주문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목소리입니다.

자,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조선일보> 내부 논객들의 ‘보수 가치 수호’ 요구를 따라야 할까요, 아니면 <조선일보> 외부 논객 및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설의 ‘과거와의 단절’ 주문을 따라야 할까요?

김종인 위원장은 확실히 ‘과거와의 단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9월 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후퇴하지 않을 변화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당에 확실히 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유전자 이식 수술’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이 ‘유전자 이식 수술’에 앞서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극우 세력을 잘라내는 ‘외과 수술’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127시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홀로 등반에 나섰다가 암벽에 팔이 짓눌려 빠지지 않는 바람에 목숨을 잃게 된 사람이 5일 만에 칼로 자기 팔을 자르고 탈출해서 목숨을 건진다는 내용입니다. 극우 세력을 끊어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지금 국민의힘이 바로 그 등반객과 같은 처지 아닐까요?

말이 ‘외과 수술’이지 자기 팔을 스스로 잘라내려면 극도의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국민의힘이 과연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요?

김종인 위원장은 보수 세력의 10월 3일 개천절 광화문 집회를 미뤄달라고 호소하면서 이들을 ‘3·1 만세운동에 나섰던 선조’에 비유하는 바람에 구설에 올랐습니다. 국민의힘이 극우 세력과 단절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실히 보여준 셈입니다.

어쨌든 김종인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이 앞으로 어떤 노선을 선택할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사실 이 논쟁이 그리 간단한 논쟁은 아닙니다. ‘산토끼를 잡아야 하느냐, 집토끼를 잡아야 하느냐’는 문제는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중도층으로 지지 기반을 확장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지지층을 섭섭하게 대하다가는 화가 난 전통적 지지층이 투표장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대적 상황과 정당의 처지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 뿐입니다.

어쨌든 당 재건에 나선 국민의힘으로서는 지금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2022년 3·9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국민의힘이 해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 답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전국연합과 연대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고립된 정치적 상황을 재야와의 연대로 돌파하려 시도한 것입니다. 실패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유신 본당’을 자처하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았습니다.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당론이었는데 ‘대체 입법’으로 당론을 변경했습니다. ‘디제이가 배신했다’는 비판이 재야에서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에 성공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재벌 2세인 정몽준 후보와 후보 단일화 형식으로 연대했습니다. 본선 후보 토론회장에는 노무현-이회창-권영길 세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진보적인 목소리는 당연히 권영길 후보의 몫이었습니다. 덕분에 노무현 후보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안정적인 후보로 비쳤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웠습니다. 대선 전에 유권자들에게 대선후보 이미지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이명박 후보가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극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취임 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촛불집회 이후의 일입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로 끌어들여 경제민주화를 약속했습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렇게 이겼습니다.

이념과 가치에 집착한 쪽은 대체로 실패했고, 중도로 기반을 확장한 쪽은 성공한 것입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둔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의 국민의힘이 어떤 노선을 선택하든 그건 국민의힘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몫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들이 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저는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힘에서 극우 세력을 끊어내는 ‘외과 수술’에 성공하고, “후퇴하지 않을 변화와 혁신의 디엔에이를 심”는 ‘유전자 수술’에도 성공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집권 가능한 합리적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균형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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