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9월 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자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질문을 하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정가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의 ‘신경전’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내년 서울시장 재보선과 2022년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와 어차피 손을 잡아야 하지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까칠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해석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스타일이 아닙니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고,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는 성격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안철수 대표가 2011년 청춘 콘서트를 할 때 서울시장 재보선에 출마하고 싶어한 적이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정치를 하려면 먼저 국회의원을 해야 한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은 일하는 사람이지만 국회의원은 일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 나에게 그걸 하라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일로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를 “정치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가급적 멀리했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꿨는지 19대와 20대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철수 대표에 대한 김종인 위원장의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100일 기자회견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에 대해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어떻게 집권할지도 모르면서 여하튼 혼자서 해보겠다고 하는 후보”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야박한 표현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 힘’ 대표로 있는 한 안철수 대표와 손을 잡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안철수 대표를 비롯한 외부 인사들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하면서, 당 안팎에는 혹시 김종인 위원장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 직접 나서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초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올 때부터 ‘반김종인’을 자신의 정치적 색채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100일 기자회견 직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장제원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 자신이 직접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대선 후보가 될만한 외부 인사들과의 연대나 외부 인사 영입을 일부러 막고 있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김종인 위원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9월 3일 아침 ‘엠비시(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의 김종민 의원, ‘국민의 힘’의 조해진 의원은 진행자와 이런 내용의 흥미로운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김종민 의원이나 조해진 의원 모두 김종인 위원장이 202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종인 위원장의 2017년 대선 출마 선언을 기억하십니까? 아마 잘 기억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2017년 4월 5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정확히 1주일 뒤인 4월 12일에 출마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2017년 4월에 김종인 위원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길다고 생각하시면 대략 훑어보거나 건너뛰셔도 좋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의 핵심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통합정부를 구성해 내각책임제로 개헌한 뒤 2020년 5월에 7공화국을 출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불출마 선언의 핵심은 자신의 출마나 너무 늦었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해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자신의 대통령 출마와 당선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김종인 위원장 정도의 경세가(經世家)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자기 객관화’는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김종인 위원장 자신은 그 일을 2020년 자서전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서전 마무리를 이렇게까지 했으면 현실 정치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자서전을 출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교안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 집에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을 도왔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는 아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저는 김종인 위원장 사례를 보면서 ‘정치는 시작하기보다 그만두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차기 대선에 나설 생각이 있는 것일까요? 본인은 없다고 말합니다. 7월 2일 경제지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대선 출마 의향을 물었습니다.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런가요? 김종인 위원장은 자신이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것이 과연 결정적 장애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1940년생으로 80세입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82세에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5년 임기를 마친다면 87세입니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78세입니다. 올 연말 선거에서 당선되면 내년 1월에 취임합니다. 79세 대통령 취임은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고령입니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임하면 8년입니다.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 8년 임기를 채운다면 87세에 퇴임합니다. 김종인 위원장도 조 바이든과 같은 조건이라는 얘깁니다.

그래도 나이를 자꾸 문제 삼는 분들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음력으로 1924년생 1월 출생입니다. 따라서 양력으로는 1923년 출생입니다. 1998년 75세에 취임해서 2003년 80세에 퇴임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74세라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야당 쪽에서는 비열하게 ‘치매설’을 퍼뜨렸습니다. “디제이가 치매에 걸렸다. 1997년 8월 괌에서 대한항공기 추락 사건으로 숨진 신기하 의원을 자꾸 찾고 있다”는 흑색선전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물론 허위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70대 후반 5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제정하고, 정보화 혁명의 기반을 닦고,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6년 뒤 지병으로 서거할 때까지 전직 대통령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며칠 전 김허남 전 국회의원이 타계했습니다. 1920년생이니까 ‘향년 100’이었습니다.

김허남 전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뒤 첫 본회의에서 최연장자로 임시의장을 맡아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 전국구 의원으로 당시 76세였습니다.

15대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였는데 원 구성 전에 신한국당이 야당과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들여 다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6월 5일 첫 번째 본회의가 열렸습니다. 원 구성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김허남 의원은 몇 사람에게 의사진행 발언을 허용한 뒤 갑자기 1주일 뒤로 본회의 기일을 지정하고 산회를 선포했습니다.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의사봉을 쥔 임시의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6월 12일 본회의부터는 건강을 핑계로 의사봉을 차 연장자인 신한국당 김명윤 의원에게 넘겼습니다. 본회의는 계속 열렸지만 파행했습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진 뒤 열린 7월 4일 본회의에서 김허남 의원이 다시 의사봉을 잡았습니다. 김수한 의원을 국회의장에 선출하고 의사봉을 넘겼습니다. 정치 격변기에 임시의장 역할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입니다.

자민련 국회의원을 한 뒤에는 2002년 복지민주통일당을 창당해 대선후보가 됐지만 실제로 후보 등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김허남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부산에서 학교를 여러 개 설립해 교육 사업을 하던 사람입니다. 정치에서 물러난 뒤에는 부산에서 결식아동 지원 사업을 했습니다.

제가 김허남 전 국회의원 얘기까지 꺼낸 이유는 정치인에게 나이는 결정적 장애물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금 80세지만 50~60대 못지않은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일세를 풍미한 경륜까지 있으니 ‘난다 긴다’ 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202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나이가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2017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1주일 만에 접은 이유는 국민이 그의 대선 출마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일주일쯤 뒤인 2017일 4월 11일부터 13일까지 한국갤럽의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 결과는 문재인 40%, 안철수 37%, 홍준표 7%, 유승민 3%, 심상정 3%였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갤럽의 2020년 8월 둘째 주(11~13일)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는 이재명 19%, 이낙연 17%, 윤석열 9%, 안철수 3%, 홍준표 2% 순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여기서 우리는 대선에 관한 중요한 법칙을 하나 확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나 대선 후보 경선의 양상을 되짚어보면, 언제나 민심이 먼저 움직였고 당사자들은 민심의 부름에 따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경로를 밟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한다고 해서 민심이 그 사람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예외로 하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모든 대통령 및 대선주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1987년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1992년의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1997년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권영길, 2002년의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2007년의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권영길, 2012년의 박근혜 문재인, 2017년의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이 다 그랬습니다. 출마 선언을 했거나 출마를 검토했다가 도중에 접은 반기문, 고건, 정운찬 등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김종인 위원장도 먼저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의미 있는 수치를 확보해야 대선 출마가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2017년 4월에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했다가 1주일 만에 접고 망신을 당한 이유가 바로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2017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때를 기다리며 민심을 살펴야 합니다.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겠지요.

첫째,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종인 위원장 체제의 ‘국민의 힘’이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둘째, 그때까지 ‘국민의 힘’을 비롯한 보수 야권에서 다른 대선주자들이 부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김종인 위원장을 대선주자로 밀어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김종인 위원장도 대선 출마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야구가 아니라 정치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