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월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광주문화방송과 인터뷰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비서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비서관, 김조원 민정수석비서관, 김거성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김외숙 인사수석비서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괄 사의를 밝혔습니다. 이유는 “최근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사의 수용 여부나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정무직 공무원들의 사의 표명을 공식 발표한 것은 이들을 대부분 교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2019년 1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임명됐습니다. 이번에 사의를 밝힌 5명의 수석비서관들은 노영민 비서실장과 함께 임명되거나 그 이후에 임명된 사람들입니다. ‘문재인 청와대 2기 체제’ 참모들인 셈입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20개월(1년8개월) 동안 일했고, 노영민 비서실장이 19개월(1년7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대통령 임기 5년은 60개월인데 3등분하면 20개월입니다. 지금이 바로 ‘문재인 청와대 3기 체제’가 들어설 때라는 의미입니다.
이번에 새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누가 될까요?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요?
그 전에 먼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공직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 비서실과 윤보선 대통령 비서실은 건너뛰고 박정희 시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윤보선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습니다. 이동원 비서실장을 임명했습니다.
군정을 끝내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이후락, 김정렴, 김계원 비서실장을 차례차례 기용했습니다. 이 가운데 김정렴 비서실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재임해 역대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광수, 전두환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경원, 이범석, 함병춘, 강경식, 이규호, 박영수, 김윤환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홍성철, 노재봉, 정해창,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박관용, 한승수, 김광일, 김용태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중권, 한광옥, 이상주, 전윤철, 박지원 5명의 비서실장을 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희상, 김우식, 이병완, 문재인 4명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류우익, 정정길, 임태희, 하금열 비서실장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이원종, 한광옥 비서실장과 일했습니다.
명단을 보면 아시겠지만,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막강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비서실장이 되기 전이나 뒤로 대통령, 국무총리, 당 대표, 장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법적 신분은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합니다. 관련 법률도 간단합니다. 정부조직법 14조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둔다”, “대통령 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가 전부입니다.
대통령령인 대통령 비서실 직제 제 3조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 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역시 매우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적으로 막강한 자리입니다. 의전 서열은 국회의장, 국무총리보다 훨씬 낮지만, 권력 서열은 대통령 다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역대 비서실장 중에 자신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은 조선 왕조에서 신하의 우두머리인 영의정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 비서실장의 권력은 왜 이렇게 막강할까요?
대통령 권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나 장관은 행정부의 책임자들입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사람은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입니다. 특히 비서실장은 모든 국정 현안을 매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의논하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제에서는 국무총리나 장관들보다 대통령 비서실장 권력이 더 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의 권력이 지나치게 막강한 것에 대해 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비서는 비서일 뿐’이라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통령 당선 직후 당시 51세였던 임종석 전 의원을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하며 “젊은 청와대, 역동적이고 탈권위, 그리고 군림하지 않는 그런 청와대로 변화시킬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젊고 역동적이고 탈권위적이고 군림하지 않는 비서실장’이라고 해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문재인 정부 초기의 각종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물러나기 훨씬 전부터 “만약 청와대 비서실장이 바뀐다면 후임자는 노영민 전 의원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습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그 정도로 깊었습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을 기용한 명분은 ‘경제’였습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정치를 하기 전에 사업을 했던 사람입니다. 국회에서는 신성장 산업 포럼을 이끌며 산업계에 인맥을 쌓았습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도 지냈습니다. ‘경제통’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권력이 막강한 대통령 비서실장’을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노영민 비서실장이 교체된다면 후임자는 누가 될까요? 노영민 비서실장 사의 표명 이후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쓴 기사를 자세히 살펴봐도 후임 비서실장 이름은 별로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청와대 사정을 좀 아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물었습니다. 후임자 예측은 쉽지 않다는 답변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사실은 지난달에 노영민 비서실장을 포함해서 청와대 참모들을 개편하려고 했다 . 하지만 후임자가 마땅치 않았다 . 인사를 9월로 잠시 미뤄두고 후임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 그런데 부동산 사태로 민심이 급속히 악화했다 . 그래서 인사를 다시 앞당긴 것이다 .”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후임 비서실장을 한창 물색 중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의 세 번째 비서실장이 되어야 할까요?
이번에 새로 임명되는 비서실장은 2022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비서실장을 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마지막 비서실장이라는 얘깁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대통령직 수행을 등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더 위험합니다. 올라갈 때 넘어지면 찰과상 정도 입지만, 내려갈 때 넘어지면 골절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보다도 내려갈 때가 훨씬 더 위험합니다.
전쟁에서도 진격보다 방어나 철수 작전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의 대구 진출을 막기 위한 방어 전투였습니다. 과장 의혹이 있지만 어쨌든 백선엽 장군은 이 방어 전투로 영웅이 됐습니다.
5년 임기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함께 ‘질서 있는 퇴각’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대통령 선거 공약이나 취임 초기에 발표했던 국정 과제 가운데 남은 임기 중에 실천할 수 있는 것과 실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실천할 수 있는 과제는 강하게 밀어붙여서 확실히 성과를 내야 합니다. 실천할 수 없는 과제는 국민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다음 정권으로 넘길 것은 과감히 넘겨야 합니다.
마지막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여러 가지 정무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권 재창출일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퇴임 이후 대통령을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당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출이 원만히 이뤄지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새로 선출된 여당의 대선주자가 대통령과 긴밀히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당과의 관계만 챙길 수는 없습니다. 야당과도 원만한 소통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여당 후보를 돕지 않는다는 믿음을 야당 후보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쉽게 해도 마지막 비서실장의 임무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에는 역대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전두환 정부
김윤환 (1987년 7월 ~1988년 2월 )
빈 배라는 의미의 호 허주 ( 虛舟 )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 경북고 경북대를 나와 조선일보 편집국장대리를 지내고 1979년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 1980년 신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보위에 참여했습니다 .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경북고 동기였기 때문입니다 . 이후 11·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해 ‘킹 메이커 ’로 불렸습니다 .
노태우 정부
정해창 (1990년 12월 ~1993년 2월 )
경북 김천 출신으로 경북고 , 서울법대를 나와 검사를 했습니다 . 법무부 차관 , 법무부 장관 , 형사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낸 뒤 경북고 선배 노태우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습니다 . 노태우 정부에서는 경북고를 나온 검사 출신들이 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 노태우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이었던 박철언 전 의원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 정해창 비서실장과 서동권 안기부장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
김영삼 정부
김용태 (1997년 2월 ~1998년 2월 )
경북 안동 출신으로 대구 계성고 ,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정치부장 ,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 대구에서 11·12·13·14대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 민정당 출신이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민자당 원내총무와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 19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김영삼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을 했습니다 .
김대중 정부
박지원 (2002년 4월 ~2003년 2월 )
전남 진도 출신으로 목포 문태고 , 단국대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은 물론이고 퇴임 이후까지 곁을 지킨 ‘디제이맨 ’입니다 . 2000년 문화부 장관 때는 남북정상회담 밀사로 활약했습니다 .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송금사건으로 구속됐지만,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국회의원 , 당대표 , 원내대표 등을 두루 지냈습니다 . 지금 국정원장입니다 .
노무현 정부
문재인 (2007년 3월 ~2008년 2월 )
경남고 , 경희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부산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를 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에 들어와 거의 5년 내내 대통령 참모를 했습니다 .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통령 비서실을 잘 아는 대통령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역사의 무대로 불려 나와 대선에 출마했고 재수 끝에 당선됐습니다 .
이명박 정부
하금열 (2011년 12월 ~2013년 2월 )
경남 거제 출신으로 동래고 , 고려대를 나왔습니다 . 동아방송 , 문화방송을 거쳐 에스비에스 보도본부장 , 사장을 지냈습니다 .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하며 정치인들과 인맥을 쌓았습니다. 고려대 출신을 유난히 챙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깜짝 발탁된 사례입니다 .
박근혜 정부
한광옥 (2016년 11월 ~2017년 5월 )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 중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영문과를 중퇴했습니다 . 1981년 민한당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뒤 , 민추협 대변인 , 평민당 국회의원을 하고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냈습니다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뒤 국민 대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를 앞두고 민심 수습을 위해 비서실장으로 발탁했습니다 .
자 어떻습니까? 탄핵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최측근’ 인사였다는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김윤환 비서실장은 지연과 학연 이외에도 신군부와 조선일보의 유착, 국보위 참여, 민정당 국회의원 등 여러 개의 고리로 얽힌 인물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해창 비서실장은 경북고 후배이면서 유능한 검사 출신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박지원 비서실장, 노무현 대통령에게 문재인 비서실장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금열 비서실장을 깜짝 발탁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고대 사랑’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비서실장의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정무 감각이 뛰어난 ‘정치의 달인’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김윤환 비서실장, 김영삼 대통령의 김용태 비서실장, 김대중 대통령의 박지원 비서실장, 이명박 대통령의 하금열 비서실장, 박근혜 대통령의 한광옥 비서실장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김윤환 비서실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동생 전경환 씨를 1988년 총선에 출마시키려 하자 민심에 어긋난다며 만류한 일이 있습니다. 13대 국회 민정당 원내총무를 할 때는 평민당의 김원기 원내총무와 대통령 중간평가 유보 및 정호용 씨 공직 사퇴 합의를 끌어낸 일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유형의 사람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선택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보는 눈이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많이 다른 편입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린 임기 5년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의 임무와, 전직 대통령 마지막 비서실장들의 특징,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 및 국정 경험 등을 참고해서 비서실장 후보 명단을 추려보았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수현 전 국회의원, 신현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우윤근 전 러시아 대사,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정해구 전 정책기획위원장, 최재성 전 국회의원(가나다순) 등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인물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알고 임기 말에 대통령 비서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전혀 의외의 인물을 문재인 대통령이 전격 발탁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은 과연 누가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